박미정┃0원으로 유럽에서 살아남은 악바리

0원으로 1년간 유럽 땅에서 살아남았다. 박미정 씨는 살아 남는 것도 모자라 인생의 고진감래를 깨우치기까지 했다.

프랑스에서 삶의 방점을 찍다

박미정 씨의 유럽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전공인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가게 된 것. 프랑스의 라호쉘이라는 지방에서 두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며 그녀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 평범한 대학생으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어요. 밥 먹고 학교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던 프랑스의 삶에서 난생처음 온전한 자유를 느낀 거죠.

점심이나 저녁 메뉴 말고는 고민할 게 없었던 프랑스의 생활. 모두가 여유에 젖어 느릿느릿 살아가는 모습에 그녀는 어느새 동화돼버렸다. 몸에 꼭 맞은 옷을 입은 듯 편안함을 느꼈던 그곳이었기에, 그녀는 과감히 학교를 옮겨 프랑스에서 살기로 했다. 그러나 이 높은 현실의 벽을 어찌할까. 딸의 부재를 용납할 수 없던 부모님은 아예 원조를 끊어버렸고, 그녀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치열한 갈등 끝에 그녀는 결국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유럽에서 살아남으리라 결심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지 모르겠어요. 다만 이 삶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언어는 살아 숨 쉬는 것, 호스텔 스태프

박미정 씨는 약 6개월 동안 스페인 그나라다 지방의 한 호스텔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배낭여행으로 머물게 된 호스텔에서 스카우트되었기 때문. 스페인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그녀였지만, 단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잘 웃는 성격 때문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었다.

소통할 때, 언어는 부차적인 것인 것 같아요. 전 스페인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고 영어도 잘하지 못했지만,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과 노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거든요. 호스텔에서 일하다 보면 특히 소극적인 한국인을 자주 보게 되는데, 우선 활짝 웃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리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그녀가 제의받은 직종은 호스텔 안에 있는 바에서 샹그리아를 만드는 바텐더 직이었다. 무급이었지만 숙식이 제공되었고, 무엇보다 스페인어를 교육받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1:1 스페인어 교습을 받았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호스텔 내부의 스페인 친구에게 언제나 물을 수 있으니, 그 어떤 어학연수보다 언어를 배우기 좋은 환경이었죠.

그녀는 스페인에서 인생을 축제처럼 즐기는 법을 배웠다. 그라나다 지방에서 호스텔 스태프로 일한 직후, 스페인의 란하론Lanjaron 지방으로 옮겨, 승마장의 헬퍼로 일하게 된 것. 말을 돌보고, 승마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캠핑카에서 생활하며, 종일 비키니를 입은 채로 말과 동고동락했어요. 한국에서는 상류층만 즐길 수 있는 승마를 배울 좋은 기회였습니다.

마침 그 지방에선 ‘산 후안 페스티벌’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국의 축제와는 달리 그곳의 축제는 조금 더 일상적이었다. 소도시의 마을 사람 모두가 밖으로 나와 각자가 정한 테마에 맞춰 퍼레이드를 하고, 남녀노소가 어울려 즐기는 방식의 축제였다. 자정이 되면 모두 물을 뿌리며 노는 ‘워터 페스티벌’ 역시 열렸다.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흠뻑 젖으며 더위를 식히고, 새벽 2시면 모두 합심해 뒷정리를 하는 식이었다. 정리조차도 축제의 과정이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또 함께 춤을 추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연대감이랄까, 따뜻함을 느꼈어요. 또한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있는 축제문화를 보며 저도 삶을 축제처럼 즐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영원한 청춘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다

프랑스 낭뜨 지방에서 만났던, 50대 후반의 도미니끄를 잊을 수 없어요. 그녀는 프랑스에 있는 집을 정리해서 죽을 때까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싶은 꿈을 가진 여성이었죠.


박미정 씨는 헬퍼로서 도미니끄의 집에 머물며, 집안에 있는 세간들을 정리해 벼룩시장에 내다파는 일을 했다. 3번에 걸친 이혼과 사별을 겪은 도미니끄의 집엔, 온갖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했다. 도미니끄는 이 물건을 보며,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나이테처럼 한 사람의 내면에 남아 있기 마련이며, 헤어짐은 성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도미니끄에게서 박미정 씨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고백하건대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어요. 혼자 남는 기분을 몹시 두려워했죠. 그런데 그 헤어짐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도미니끄와 많은 친구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꺼이 아플 준비가 된 것, 그것이 유럽에서 겪은 가장 큰 변화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박미정 씨가 도미니끄에게서 배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노년이 다된 나이에도 ‘세계 일주’라는 꿈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청춘’의 도전의식을 느꼈다.

한국의 청춘은 젊은 날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프랑스의 도미니끄는 노년이 다된 나이에도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어요. 한없이 젊은 그 용기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돈 주고도 못살 갚진 경험을 아로새긴 박미정 씨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본인을 한없이 옭아매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이 땅이 ‘자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회계 시험에 골머리를 앓고, 통금시간에 늦어 부모님께 혼나는 과정이 언젠가 스스로를 더욱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너무나 버리고 싶었던 이 ‘현실’ 역시 지나고 나면 스스로를 구성하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이라는 것은 좋은 추억들로 구성되는 것 아닐까요?

바람처럼 웃는 그녀의 모습은, 자유를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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