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마! ‘헤딩라인 9시 뉴스’로 다시 돌아온 이명선 앵커














은어와 비속어가 밥 먹듯 자연스럽게 쓰이고 새 나라의 누리꾼에게 주침야활(晝寢夜活)을 선동하는 희한한 뉴스가 있다.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을 통해 방송되는 시사패러디 뉴스,’헤딩라인 9시 뉴스’가 그 주인공. 축구 용어인’헤딩’이 손이나 발을 쓰지 않고 머리를 이용하는 기술을 뜻하므로 ‘골 때리는 패러디뉴스’정도로 소개된다.

이 특이한 뉴스의 인기비결을 꼽는데 있어, 이명선 앵커를 빼놓을 수 없다. 누리꾼들은 동그란 눈의 겁 많게 생긴 그가 딱 부러지는 말투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꼴 때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소재로 한 패러디가 논란이 되어 1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자, “축하인사는 처음이에요. 무엇보다 어깨가 무거워요. 방송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요”라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이어 자막 방송, 시보 광고 등 기존 방송 3사 뉴스와 거의 흡사해진 <헤딩라인 9시 뉴스>를 설명하는 모습에선 설렘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명선 씨는 <헤딩라인 9시 뉴스>의 성공요인으로 유일한 ‘영상 패러디’라는 점을 꼽았다. “인터넷을 통해서 가장 흔한 형태의 패러디가 영화포스터를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노래 개사를 통한 패러디 등이지만, 영상을 통한 패러디는 <헤딩라인 9시 뉴스>가 유일하죠.”
2001년 딴지일보’오바라인 뉴스’진행을 시작으로 5년 남짓한 시간을 패러디 뉴스 앵커를 맡아온 그가 생각하는 패러디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람과 자동차, 배 모두 뒤집히기만 하면 큰일 나지요. 패러디의 맛은 아무래도 ‘재미’인 것 같아요. 재미있게 웃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패러디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라며 패러디에 대한 그의 주관을 피력했다.




책 읽는 것이 마냥 좋았다는 국문학도 이명선 씨는 대학교 2학년 시절, 8개월간의 호주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통해 ‘가치관의 전복’이라는 귀중한 경험했다고 한다. “호주에서 하루는 별이 많은 밤하늘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북두칠성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헤맨 후에야 남반구에 와있는 것을 알았죠. 그때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시야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말이에요. 그때부터 나 스스로를 깨는 작업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규격화된 공간에서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는 아나운서를 동경하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던 그는 어학연수 후,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꿈을 구체화해 나갔다.
하지만 여러 차례 공중파 방송사 아나운서의 문을 두드렸지만 실패하고 기업체 사내 아나운서로 일하던 중, 딴지일보 <오바라인 뉴스> 앵커를 시작으로 인터넷 아나운서와 인연을 맺은 것이 지금의 <헤딩라인 9시 뉴스>로 이어졌다.





뉴스 게시판에 간간히 올라오는 악플을 보고도 자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받아넘길 만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그는 스스로를 ‘마이너’라고 당당하게 말한다.”제가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이기 때문에 삶에 대해 좀더 고민하게 되고, 삶이 치열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메이저의 위치에 섰다면 큰 무대의 맛을 알 수는 있었겠지만, 시민단체를 만나고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는 못했겠죠.”
<헤딩라인 9시 뉴스> 앵커를 언제까지 맡을 예정이냐고 묻자, “<헤딩라인 9시 뉴스>를 이명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진행하면 계속 보실래요?”라며 되묻는다. 역시나 그가 빠진 <헤딩라인 9시 뉴스>는 상상만 해도 허전하다. 이어 공중파 방송으로 옮길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다른 곳에서는 불러주지도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인터넷을 버리고 공중파로 가면 사람들은 이명선을 기억하지 못 할거예요. 근본을 외면하면서까지 성격을 지우기는 싫어요.”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 전, 인터넷 뉴스 프레임 속에서 입을 실룩거리고 조소를 보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선 ‘연기하기 참 힘들겠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묻어나온 사회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폭넓은 식견을 보니 그것은 대본을 줄줄 읽으며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임을 짐작하게 했다. 비록 ‘마이너’에서 뉴스를 진행하지만, 그 마인드만큼은 당당한 ‘메이저’인 그였다.

글,사진_이상훈 / 12기 학생기자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02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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