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졸업생인터뷰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







1993 가을, 대법원의 지원으로 하버드 법과대학원으로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버드 유학을 마친 홍일표 판사를 비롯한 유학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조언으로 입학허가 준비를 시작하였다. 입학허가를 위한 심사에는 토플, 대학성적표,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추천서 등이 필요하였다. LLM 입학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연구계획서로 과거의 학업성취나 직업적 성공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공부가 자신의 미래나 직업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지, 구체적인 관심분야와 연구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마침내 1995년 봄, 입학허가서를 받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외국에서 공부하는 기회였기에 걱정도 많았다.


나는 하버드에만 원서를 냈다. 하버드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인 독점금지법과 법 경제학 분야에 하버드가 최고의 커리큘럼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밀접한 분야의 세부전공인 만큼 아카데미즘이 강한 예일 로스쿨보다는 실용적인 하버드의 학풍을 접하고 싶었고, 보스턴에 최고의 로펌들이 모여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실제로 접해본 하버드는 전통과 경륜을 중시하면서도, 노학자라 하여 반드시 많은 지식을 갖추었다거나 모든 일에 정통하지는 않다는 자기고백을 할 정도로 자유롭고 진지한 분위기였다.


법경제학을 전공한 나에게 미국 반독점법(Anti Trust)의 대부라 할 수 있는 필립 어리다(Philip Areeda)의 강의는 놓칠 수 없는 필수과정이었다. 그는 일찍이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드라마 킹스필드 교수의 모델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혹독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학생들을 곤경에 빠뜨리곤 하였다. 어리다 교수는 수업시간에 포드 자동차회사 고문으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생생하게 재현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독신인 그는 가족과 친척이 없었는데,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나를 키운 것은 하버드고, 하버드를 빼면 나의 인생에 아무것도 없다”며 저작료, 강의료, 상담료로 모은 전재산을 하버드에 기부했다. 어리다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없었던 점은 정말 아쉬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준 가르침은 내가 교단에 서게 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나의 경우 미국 기본법 12학점을 포함, 총 24학점을 이수해 LLM을 마치고, LLM학위로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주인 뉴욕주의 변호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정착해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97년 경제위기 후 우리나라의 외채 협상을 모두 외국인 변호사들이 다루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내가 배운 소중한 경험들을 학생들에게 직접 전해주고도 싶었다.
최근 불고 있는 로스쿨 유학 열풍은 다양한 인재육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졸업 후 직장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장래를 결정할 때 금전적 보상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로스쿨 과정은 이제 전세계 표준(global standard)이 된 미국의 정치와 제도의 핵심을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의 법률 서비스는 변화해야만 한다. 변호사의 문턱이 너무 높아 내부적인 정체가 심하고 일반인들의 불편이 지대하기에, 젊은 변호사들의 대규모 유입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자격증으로서 ‘변호사’가 되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며, 그 학교가 학부과정인지 대학원 과정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률서비스 시장이 개방된 이후, 외국 변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려면 한국 법과대학에서 설득력, 논리력을 키우는 수업을 지향하고 상아탑에서도 실무적인 학습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진이 필수적인데, 미국 로스쿨의 경우 대부분의 교수들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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