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일하는 자ㅣ 깡 하나로 해외 취업까지, 김도희

혈혈단신 해외에서 일하는 20대들의 고군분투기. 한국을 넘어 홍콩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20대들, 홍콩에서 일해보니 어때요?

기획1 홍콩에서 일하는 자ㅣ깡 하나로 해외 취업까지, 김도희
기획2 홍콩에서 일하는 자ㅣ워홀러 생존법, 강소연
기획3 홍콩에서 일하는 자ㅣ‘덕업일치’의 길을 걷는 인턴, 은재

Who’s 김도희? 한 줄 프로필
호남대학교 중국어학과 4학년, 24살로 홍콩 한인상공회에서의 인턴을 마치고 현재 선전 물류 회사 ‘솔트’에서 근무 중.

Q. 홍콩 인턴,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했나요?
2018년 12월 18일부터 2019년 6월 29일까지 홍콩한인상공회에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선전 ‘솔트’라는 물류회사에서 근무 중입니다.

Q. 왜 홍콩이었나요?
저는 사실 ‘도망’이었어요. 중국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했는데, 그 2년간 한국을 떠나 자유를 맛보고 나니 다시 또 떠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교수님께서 학교에서 홍콩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 ‘홍콩으로 도망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죠(웃음).
저는 한국에서 1년 반의 학교 생활을 하며 두 번 학사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공부를 잘한 학생이 아니었어요. 그냥 시도해보자,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4학년이었기에 처음 도입되는 프로그램을 잘 해내 후배들을 위한 길을 터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Q.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학교에서도 처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혼자 많이 준비했어요. 비자 같은 것도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대학교들은 홍콩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업 선정 관련 수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저는 일단은 비자부터 급하게 해결해야 했어요(웃음). 홍콩 비자 발급은 까다로운 편이거든요. 통장에 돈이 얼마 이상 있어야 하고, 여행자 보험도 들어야 하고… 이 부분을 정리하느라 좀 정신없는 준비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그러고 나니 어느새 홍콩에 있더라고요.


무작정 떠난 홍콩. 그곳에서 새로운 ‘김도희’를 찾아 나섰다.

Q. 그렇게 도착한 홍콩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제가 근무한 홍콩한인상공회는 홍콩에서 일하는 한국 기업들을 관리합니다. 기업이 진행 예정인 행사를 저희에게 알려주면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거죠. 예를 들어 농수산 관련 기업 연결을 원하면 저희가 연결을 시켜 드리기도 하고, 한국에서 온 기업들이 투어 등을 요청하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투어 연결을 시켜 드리기도 해요. 허브 같은 곳이었죠.


한국의 굵직한 기업들의 홍콩 진출을 돕는 홍콩한인상공회

Q. 급하게 떠난 홍콩, 문화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홍콩에서 정말 힘들었던 건, 모든 게 집약적인 도시답게 사람들이 1분 1초를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산다는 점이었어요.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고요. 지금 일하고 있는 선전은 저녁에 광장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혁신적인 스마트 도시지만 오히려 조금은 느긋한 면모를 볼 수 있는데 홍콩은 아니에요. 저는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고 싶었는데 홍콩에서는 있는 시간을 다 쪼개서 일해야 하니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워커홀릭인 느낌이었달까요.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면 그냥 나도 ‘일에 미쳐보자’고 생각한 이후에는 조금 극복할 수 있었어요.

Q. 사회 생활을 해외에서 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갈 곳이 없었어요. 여기서의 일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해야 한다는 게 은근한 압박이었어요. 또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는 그 책임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6개월을 미쳐 일했죠. 휴대폰에 웬만한 업무 파일을 다 깔아 두고 퇴근 후에 집에 가서도 일을 할 정도였어요. ‘주말까지 일을 꼭 해야 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안 하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그만큼 홍콩에 적응한 거죠.


정말 일에 ‘미쳐’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달력들. 여러가지 색의 형광펜은 필수품이었다.

Q. 홍콩에서의 일상은 어땠나요?
일터와 집을 오가는 게 다였어요. 할 게 없더라고요. 저도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데 그걸 하면서 일을 할 자신이 없었어요. 일을 위해 포기한 거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룸메이트 언니와 헬스장을 등록했어요.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했죠.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운동이 끝나면 그 앞 맥도날드에서 치킨을 사서 집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게 유일한 힐링이었던 것 같아요.


바쁜 와중에도 일상 속 아주 작은 것에서 본인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도희 씨.

Q. 홍콩VS심천! 홍콩에서의 생활과 심천에서의 생활을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우선 업무의 경우, 홍콩에서는 저를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됐어요. 제가 주도하고, 리드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제가 상공회에 들어간 시점에 10년 정도 일하신 과장님이 일을 그만둔 거예요. 그 책임이 제게도 주어졌죠. 그래서 상공회에서 일할 때는 심리적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첫 직장생활인데 책임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홍콩을 떠나려는 제게 여섯 개의 회사에서 러브콜이 왔어요.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서 회장님께서도 언제든 상공회는 너의 자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제 6개월이 인정받은 느낌이어서 짜릿했죠.


책상 앞에서 떠나는 일이 없었던 인턴의 삶. 그만큼 치열했고, 열심히 했다.

선전의 경우 이제 새로운 일을 배우는 단계다 보니 아직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홍콩에서는 한국인들과의 업무라 영어도 쓰고 한국어, 광둥어, 북경어 등 다양하게 사용을 했는데, 지금은 무조건 정통 중국어로만 업무를 해야 하니까 막막하죠. 특히 물류는 수학 같은 개념도 다 중국어로 배우니까 어렵더라고요. 선전에서 근무 시작 후 딱 3일은 집 가는 길 내내 울었어요. 제가 일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첫 일주일은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야근을 9시까지 꼬박꼬박했어요.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선 선전이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매일이 기대된다.

Q. 출퇴근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선전에선 걸어 다니고 있고, 홍콩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어요. 홍콩은 지하철이 잘 돼 있고, 땅이 넓지 않아 금방 가서 15~20분이면 도착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홍콩은 정말 ‘지옥철’ 그 자체예요. 5분만 늦게 출근 준비를 해도 지하철 여섯 대를 놓치게 됩니다. 제가 있던 광주에는 지하철 노선이 하나밖에 없었는데(웃음).

Q. 해외에서 지낸다면 주거비를 무시할 수 없는데요. 특히 홍콩의 임대료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잖아요.
홍콩은 물가도 집값도 다 정말 비싸요. 홍콩에서 저는 2층 침대만 간신히 들어가는 곳에서 룸메이트들과 살았는데, 머리맡이 바로 화장실일 정도로 좁았어요. 그런 집이 한 달에 홍콩달러로 6,800달러, 한국 돈으로 120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었어요. 세 명이 같이 지냈는데, 저와 룸메이트 동생이 둘이서 한 침대에서 잤거든요. 1인 침대에서 둘이 부둥켜안고 지냈어요(웃음). 월급 6,500달러에서 반이 집값으로 빠져나가고 나면 나머지 3,000달러로 한 달을 살아야 했죠. 저는 셩완이라는 홍콩의 중심부에서 지내서, 침사추이에서는 HKD50이면 될 식비를 HKD80가까이 사용해야 했어요. 정말 닭장 같은 곳에서 산 거죠. 환기도 잘 안 되다 보니 피부도 계속 안 좋아졌어요. 지금 선전에서는 혼자 지내고 물가가 홍콩 정도는 아니다 보니 조금은 더 여유로운데, 아직도 그때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몸을 웅크리고 자요(웃음).


다른 건 몰라도 야경 하나는 끝내 준다는 홍콩. 꾸준한 야근 덕분에(?) 본의 아니게 자주 야경을 볼 수 있었다고(!).

Q. 중국의 곳곳에서 생활했는데, 특별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너무 사전 지식 없이 중국에 온 것 같아요. 알고 보니까 한 달 안에 전입신고를 해야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걸 몰라서, 결국 한 달 후에 가게 됐습니다, 경찰서로(웃음). 경찰이 영화처럼 책을 탕! 하고 내려치면서 당장 교수님께 전화 하라는데, 전 중국 사람들이 원래 말할 때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왜 저러지?’ 하며 웃으며 앉아 있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통역해주더라고요. 상황이 안 좋아졌고, 벌금도 내야할 수 있다고. 교수님이 경찰서로 땀을 흘리며 들어오셨는데 그때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됐어요. 이후 피검사도 하고, 범죄자처럼 사진 찍고, 지문도 채취 당하고…

Q. 중국의 분위기를 그때 제대로 알게 됐군요.
중국은 지하철을 타더라도 신분을 다 노출한 채로 타야 할 정도로 철저하거든요. 경찰 담당관이 의자도 못 움직이게 고정되어 있는 독방에서 저를 조사하셨는데, 3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났어요. 핸드폰도 시계도 심지어는 귀걸이까지 다 못 들고 들어갔어요. 언어가 안 되니 그 안에서 제가 한 첫 마디가 ‘배고프다’였어요(웃음). 다행히 경찰분이 잘 해결해 주셨고, 저를 데리고 한국식당에 가서 한식도 사 주셨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겁먹은 저를 보며 딸 생각이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저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과일이 생기면 나눠 주기도 하시고. ‘웃픈’ 기억이지만, 그렇게 사람들과 쌓은 추억들이 중국에 대한 기억을 더 좋게 만들어줬습니다.


사람이 좋아 중국이라는 나라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Q. 예비 인턴러,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전 성적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어요. 우수한 학생도 아니었고요. 그렇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도전 안 하는 것보다는, 일단 부딪혀 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나서서 상공회에 전화도 하고, 회장님과 통화도 했어요. 정말 간절하면 다 되는 것 같아요. 무서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도 해줬거든요. 그 후배가 지금 홍콩 한인상공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과 성적이 낮은 게 도전을 아예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겁먹지 말고 일단은 부딪혀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람이 좋아 중국이라는 나라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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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Social Challenger 황윤선 일상 속 이상을 꿈꾸다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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