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글, 고전 산문에 관하여

강의명 고전 산문의 이해
강사명 신연우 교수
강의 일시 수요일 6,7교시, 금요일 4교시
강의 장소 서울산업대학교 어의관 612호
참고 2010년 1학기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수업

고전 산문이라고 하면 대개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어려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입시를 치른 학생들은 언어영역 문제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전 문학도 현대 문학도, 다 우리의 문학이 아닌가. 원래대로라면 국사처럼 시간순으로 고전문학을 배우며 차차 현대문학으로 접어드는 게 맞는 것일 텐데, 우리는 너무도 고전과 현대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로 말미암아 전통이 단절되고 통째로 외국의 근대화가 이식된 결과다. 이것을 늘 안타까워하시는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의 신연우 교수님은 고전문학이 담은 당대의 사랑, 가난, 세태 등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 삶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은 고전문학의 의미가 현대문학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글이란 은은한 향기를 낼 때 그 매력을 드러난다. 이 말은 글로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서경의 묘사를 통해 글쓴이의 서정성이 드러날 때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전문학이 그렇다. 특유의 절제와 자연 묘사로 감정을 드러내는 탁월한 글들이 많다. 이런 은은한 글들은 매화 향기 같아서 질리지 않는 법이다. 기존의 묘비명과는 확연히 다른 연암 박지원의 <큰 누님을 보내고>라는 작품을 보고 그 향기를 느끼길 바란다.

큰누님을 보내고, 연암 박지원

유인의 이름은 아무개로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 중미가 묘지명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유인은 나이 열여섯에 덕수 이씨 택모 백규에게 시집을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다. 신묘년(7111) 9월 1일에 돌아가 43세를 살았다. 남편의 선산이 아곡이라 그곳의 경좌 방향 자리에 장사를 지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은데다 가난하여 생계를 꾸릴 방도가 없는지라, 아예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데리고 솥과 그릇가지, 옷상자와 짐보따리를 챙겨서 배에 타고 그 골짜기로 들어가버렸다. 상여와 함께 일제히 떠나는 새벽, 중미는 두모포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몸단장하던 모습이 흡사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겨우 여덟 살이라, 벌렁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면서 말을 더듬으며 점잔 빼는 새신랑의 말투를 흉내 냈다. 누님은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분가루에 먹을 뒤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문질러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든 벌 노리개를 꺼내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나를 달랬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일이다.

강가에 마을 세우고 저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는 비스듬히 미끄러지는데,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를 돌고난 뒤에는 모습을 감추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강가의 멀리 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진 머리처럼 검푸르고, 강물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 빗을 떨어뜨리던 그날의 일을 눈물 속에서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만이 또렷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또 그렇게도 즐거운 일이 많았고, 세월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 사이에는 늘 이별과 환난에 시달려야 했고, 빈궁에 시름 겨워했다. 그런 이들이 꿈속인 양 황홀하게 스쳐 지나간다. 형제로 지낸 날들은 어찌도 그렇게 짧았단 말인가?

떠나는 이 간곡하게 뒷기약을 님기기에

보내는 이 도리어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조각배는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까?

보내는 이 쓸쓸히 강길 따라 돌아서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글에서 향기가 난다는 표현!
    뭔가 은은한 감동이 잔잔하게 오래 지속되는 것을 글에서 향기가 난다고 표현하는건가요?^^
    하고싶은 말을 직접 대놓고 하는게 아니고 묘사를 통해 글쓴이의 마음이 들어나는때.
    그때의 감동을 은은하다고 표현하는것같아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아~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라는 생각과 여운이 돌면
    그 짠~한 마음이 지속되는데..그런 글의 향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라니, 우아한 수업이네요^^
  • 고전문학을 통해서,
    고전산문을 통해서 많은 정서를 느끼고,
    실력을 쌓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소챌 스토리 더보기

나의 라임 단골집 2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나의 라임 단골집 1탄 (feat. 동네 맛집 털기)

<카일루아> 윤정욱 작가ㅣ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것

가성비 좋은 푸드트럭 삼만리

서울의 심야식당 3

졸업전시 – 전시 / 공연 / 쇼

집밥 “서선생” – 남은 추석 음식 활용편 –

가을이니까, 소채리가 추천하는 10월 나들이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