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살기의 민낯 – 3탄 포르투에서 김가람

내 집이 아닌 타지에서 ‘한 달’이란 시간을 허하는 것. 그곳에서 투명하게 나를 마주하는 것. 일생에서 어찌 보면 이 짧은 기간을, 모두 방점으로 기억했다.

기획 1_ 발리에서 김정영 | “미뤄둔 행복을 ‘지금’으로 당겨와 보길.”
기획 2_ 제주에서 박지원 | “언제든 돌아와도 좋으니까.”
기획 3_ 포르투에서 김가람 | “어쩌면 발견하지 못했을 순간들이 있어요.”
기획 4_ 치앙마이에서 신혜원 | “또 다른 도전에 덜 망설여져요.”

김가람의 한 달 살기
MAJOR_ 한서대학교 무인항공기학과
PLACE_ 포르투갈 포르투
TIME_ 2018년 6월 26일~2018년 7월 24일

지난 여행 뒤 느낀 갈증 작년 겨울, 약 3주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여행했지만, 한 곳에서의 일정이 3일뿐이라 주요 관광지만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정작 그 나라를 온전히 느끼기엔 부족했죠. 다시 유럽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한 도시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그곳의 분위기나 정취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올해 휴학이 마무리될 무렵, 포르투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했죠. 함께 여러 번 여행했던 7~8년된 친구들과 떠나기로 했습니다.

홀로 vs 동반 여행의 선택 각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혼자 타지를 돌아다니며 사색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좋아하죠. 한 달 살기
내내 사소한 많은 일이 생길 텐데, 그 모든 기억을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추억으로 쌓고 싶었어요.

왜 포르투여야만 했을까 저는 질리지 않고 적당히 아쉬울 정도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한 달 정도가 알맞겠다 싶었죠. 한 달 살기 도시를 선정할 시, 세 가지를 고려했어요. 치안, 물가, 그리고 유럽 국가 간의 접근성이죠. 포르투갈의 포르투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답니다. 일단 포르투가 최근 관광지로 뜨기 시작하면서 소매치기가 생기긴 했지만, 조심하면 되었어요. 물가는 체감상 동유럽보다 약간 비싸거나 비슷한 정도였고요. 마지막으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짧게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다녀올 수 있었답니다. 무거운 캐리어는 숙소에 두고 배낭 하나만 메고 유럽을 돌아다니니, 이게 가장 매력적인 점이었어요.


매일 저녁이면 레몬 맥주 한 병과 함께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포르투의 야경.

유명 관광지가 되어있으면 어떡하지? 겨울에 포르투갈행 항공권을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JTBC <비긴어게인2>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어요. 포르투를 방문해 버스킹하는 모습이 비쳤죠. 혹 우리가 갔을 때 핫플레이스가 되었을까 우려했답니다. 이런 걱정을 안고 도착한 포르투에선 한국 사람은커녕 동양인은 찾아보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물론 피크닉 장소로 유명한 힐가든은 제외하고요.

이겨라, 힘내라 호날두! 우리가 포르투를 방문했을 때, 월드컵 경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어요. 운 좋게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경기를 볼 기회가 생긴 거죠. 도시락과 피크닉 매트를 들고 근처 잔디밭에 앉아 스크린으로 실시간 응원을 했어요. 현지인과 섞여 호날두를 응원하며 축구를 보니, 새삼 제가 포르투에 살고 있다는 감흥에 빠져 너무 행복했어요. 그날 포르투갈이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조용히 숙소로 돌아왔지만요.


대성당 밑 골목길. 사진을 위한 포즈를 취하는 중 슬쩍 앵글에 들어온 포르투 미남(!)이다. 촬영 후 쿨하게 떠난 그대여.


여행객들이 여유롭게 햇살을 즐길 수 있도록 날씨마저 완벽했던 어느 낮.

낯선 도시에서 이어진 사람이란 끈 포르투에서 만난 특별한 분들이 있어요. 일단 ‘플랜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님이에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자주 올리는데, 우연히 작가님과 연락이 닿아 저녁을 같이했어요. 생각보다 얘기가 잘 통하더라고요. 그날 함께 노을 사진도 찍고, 추후 스냅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자주 연락했고, 다음 여행을 같이 기획하고 있어요.
다음은 현지에서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예요. 포르투 대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면서 먼저 말을 걸어 주셨죠. 할머니가 사용하는 한국 화장품을 칭찬해서 편히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포르투 현지인은 참 친절한 편이에요. 당황한 관광객을 보면 흔쾌히 나서 도와주려고 하죠.


‘아, 내가 포르투에 왔구나!’하는 생각에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동 루이스 다리.

나만의 한 달 살기 버킷리스트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포르투란 도시를 누리고 다녔어요. 이의 힘은 바로 버킷리스트 작성이었죠. 소소하든 거창하든 상관없어요. 납작 복숭아 먹어 보기부터 원데이 클래스 참석하기, 트램 타고 목적지 없이 여행하기 등 여러 리스트를 마련하고 하나씩 이루어 갔어요. 하나씩 그어지는 리스트 속에서 무언가 이뤄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어요. 후회할 겨를이 없었죠.

나타(Nata)를 만들어보겠습니까? 제일 보람찼던 건 쿠킹 클래스였어요. 포르투갈 스타일의 에그타르트인 나타 만들기 수업이었죠. 다양한 출신의 여행자와 함께 반죽부터 커스타드 크림까지 직접 만들었습니다. 클래스 후 나타와 따뜻한 카페라테를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충만한 기분이 들었죠.


우연히 발견한 문어요리 맛집 . 3코스 요리가 20유로도 안된다. 문어가 스테이크만큼 부드럽고 맛있는데, 조금 짤 수 있으니 “Um pouco sal(움 보꾸 쌀, 소금은 조금만 넣어주세요)”을 외쳐보길.


베이킹 클래스와 포르투 전통 아줄레주를 그려보는 타일 아트 수업도 수강했다.

매일 달라, 매일 새로워! 매일 제가 직접 설계하는 하루였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들과 과일로 아침을 때운 후 가고 싶은 곳을 여유롭게 방문했어요. 시에스타 시간을 즐긴 다음엔 현지 식당에서 문어와 스테이크를 먹었죠. 해가 질 즈음엔 피크닉 매트와 맥주를 챙겨 힐가든에서 노을과 야경도 봤고요. 어느 날은 관광으로 하루를 다 써버리고, 다른 날은 늦잠을 자다가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브런치를 먹었어요. 카페에 앉아 온종일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날도 있었죠. 빡빡한 계획 없이 하고 싶은 일에 절 던져두었습니다.
꿈같은 한 달이었어요. 한국에 와서도 그 순간을 수없이 추억하고 있죠. 제 경우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이 늘더라고요. 이런 저의 취향을 알게 되어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포르투에서 핫한 포토 스폿, 상 벤투 역 내 아줄레주 벽화 앞. 여러분도 여기서 인생 샷 꼭 남기길!

학교 밖에서 하는 공부의 그다음 저는 크게 스펙에 연연한 편은 아니에요. 주변에서 스펙을 쌓느라 한 달 살기를 망설이는 친구도 자주 보았고요. 저는 사실 취업 전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서 이미 1년을 휴학한 상태였어요. 휴학을 선택하자마자 <대2뚜>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함께 운영하는 친구와 여행을 다니며 사진과 영상 작업에 몰두했답니다. 이렇게 꾸준한 작업으로 제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달 살기는 열심히 살았던 저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했죠.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둘 이루다 보니, 한 달간 많은 공부를 하고 온 기분입니다. 또 한 달 살기를 도모한다면, 스페인의 세비야나 남부 지방 쪽에서 하고 싶어요.

한 달 살기, 할까 말까? 한 달 살기라고 하면 거창하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저 좋아하는 도시에 조금 더 오래 머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은 생각보다 짧고, 그동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은 참 많답니다. 실제로 저는 포르투에서 단기간 여행으론 발견하지 못했을 순간을 수없이 마주했거든요.

* 본 기사에 사용된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김가람에게 있으며, 무단 도용은 할 수 없습니다.

LG Social Challenger 168277
LG Social Challenger 윤지원 세계를 나만의 시선으로 엮어내다.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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