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과학의 역사를 통해 본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식들

   

지난 달 글에서 나는 서로 다른 사고(thoughts)가 만나서 새로운 연관을
만들 때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사상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과학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고 연관을
만드는지 살펴보자.
조금 도식적으로 얘기해서 이러한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가지 유형이 있다.
  학생 혹은 젊은 연구자 시절에 다른 학풍에 접하고 이것이 나중에 그 과학자의 창조성의 토대가
된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독일 최고의 물리학자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이다. 그는 젊었을
때 생리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점차 수학과 물리학 분야로 전공을 바꾸었는데, 그가 이 상이한 두 분야를 다 공부했기 때문에
생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던 생체 에너지의 문제를 물리학에서의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정형화시켰으며 이후에도 소리의 물리학과
생리학, 시각과 관련된 연구 등에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19세기 영국 물리학자들 중에 스코틀랜드 출신 물리학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맥스웰, 켈빈 경, 전자를 발견한 J.J. 톰슨 등), 이들의 공통점은 스코틀랜드에서
실험물리학을 공부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깊이 공부함으로써 이론과 실험에 모두 정통했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기가 번역되어 출판된 유전학자 바버러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 역시 학생시절 세포유전학 전통과 관찰
자연사적 접근을 잘 융합시켜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한 전문 분야와 다른 전문 분야를 넘나들면서 서로 다른 학문적 성과와 방법을 자신의 창조성을
위해 사용한 예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보아지에(Lavoisier)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는 18세기 후반에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라플라스(Laplace)와 같은 수리물리학자와 교류하고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수리물리학의 엄밀성에 깊게 감복했고, 이런
영향하에 정성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화학을 정밀과학의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서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론을
대체한 산소(oxygen)이론이 나왔으며, 화학 반응이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기초를 놓았던 물리학자 슈뢰딩어(Schroedinger)는 2차대전 무렵에 관심을 생물학으로 바꾸었고, 물리학과
전기공학의 개념을 사용해서 생명체의 유전의 메커니즘을 유전 암호의 전달과 해독으로 이해하는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슈뢰딩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는 20세기 분자생물학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로 다른 생각들은 연구자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김으로써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등 예술, 철학, 과학, 사상에서 20세기의 큰 흐름을 형성한
일곱명의 천재를 연구한 심리학자 가드너는 이들이 모두 태어난 나라와는 다른 나라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서로 다른 문화적·사상적 환경을 가진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이런 갈등이
창조적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와는 조금 달리 한 지역에 서로 다른 두가지 생각이 융합함으로써 창조적인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과학사학자들은 20세기 후반 미국과학(특히 물리학)의 창조성의 근원이 파시즘의 박해를 피해서
1920-30년대에 미국으로 피난했던 유럽의 이론 물리학자들의 전통이 미국에 고유했던 실험 물리학의 전통과 결합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이룬다.
중심(center)의 학풍이 경직되리만큼 강고할 때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오히려 주변(periphery)에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학을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베른이라는 작은 도시의 특허국에서 일하면서 19세기 전자기학이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과 씨름했다.
그는 당시 베를린이나 라이든(Leiden)과 같은 물리학 연구의 ‘중심’에서 (지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중심의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던 ‘전자 이론’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결국 그는 1905년에 운동하는 좌표계들 간에 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급진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특수
상대성이론을 제시했는데, 최근의 연구는 그가 시간에 주목했던 이유가 특허국에서 전신을 이용해서 각 도시들의 시계를 표준
시각에 맞추는 특허들을 다루면서 시간의 동시성(synchronization)이란 문제에 주목할 수 있었기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초엽, 파리 라플라스 학파의 빛의 입자론에 대항해서 빛의 파동론을 주장했던 프레넬(Fresnel)은 에꼴
폴리테크니끄(Ecole Polytechnique)을 졸업하고 지방에서 도로 공사를 감독하던 현장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막강한 라플라스의 과학 연구 패러다임에서 비슷하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상이한 요소들의 연관능력이 탁월한 경우는 수많은 창조적인 과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지만,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뉴튼이다. 흔히 뉴튼의 만유인력은 대학생이었던 그가 흑사병을
피해서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뉴튼은 대학생 시절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 운동의 제 3법칙에서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유도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뉴튼은 세상을
물질과 운동으로만 설명하는 데카르트의 기계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었고, 따라서 ‘인력’이란 개념은 그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점차 케임브리지 신플라톤주의와 연금술의 영향으로 우주가 물질과 운동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물질을 지배하는 ‘활동적인 원리’ 역시 우주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1679년에, 뉴튼과
앙숙이었던 로버트 후크(Robert Hooke)가 행성의 타원 운동을 직선운동과 중심으로의 구심력(centripetal
force)로 나누어 이해하는 방식을 뉴튼에게 알려준 것 또한 그가 운동의 비밀을 해결할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1687년
출판된 뉴튼의 불후의 명저 『principia』는 20여년에 걸쳐 등장한 이러한 상이한 요소들을 하나로 융합해서 지구상의,
그리고 우주 행성의 운동의 문제를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학적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과학이 세분화되고 한 사람이 두개 이상의 학문을 넘나들기가 쉽지 않은 형편에서 서로 다른
영역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공동연구는 한 사람이 하기 힘든 업적을 낳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세기 과학의 최고의
개가로 꼽히는 DNA 구조의 발견인데, 여기에는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캐븐디쉬 연구소에서
결정학을 연구하고 있었던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의 공동연구가 결정적이었다.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지만,
물리학과 수학을 잘 몰랐던 에디슨이 전력 송전 시스템을 건설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고용한 물리학자 웁턴(Upton)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에디슨의 발명가적 재질과 웁턴의 과학자로서의 재능이 결합해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2차 대전 중에 레이더를 만들어 연합군의 승리를 크게 앞당긴 미국 래드랩(Rad-Lab)에는 물리학자들과
전기공학자들이 실용적인 레이더를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한 지붕아래서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서로가 사용하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곧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서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레이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간학문(interdisciplinary studies) 연구는 학문과 학문 사이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기존 학문이 자신의 틀 속에 갇혀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연구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폭발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20세기 자연과학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간학문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수학과 물리학
사이의 물리수학이나 수리물리학, 화학과 물리학 사이에서 만들어진 물리화학, 생물학과 물리학의 잡종인 생물물리학과 분자생물학,
화학과 생물학의 간학문인 생화학 등이 이러한 예이다. 내가 작년에 <미래의 얼굴>에 쓴 컬럼에서 지적했지만,
서양 지성사에서 수학과 철학이 만났던 17세기와 19세기 후반에 혁신적인 지적 혁명이 있었다는 사회학자 콜린스(R. Collins)의
지적도 간학문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경우이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 사회이다. 전문가 사회는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조적인 전문 지식은 하나의 좁은 분야에 얽매여서는 만들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양한 학풍을 거치고,
학부를 마친 대학과는 다른 대학원에서 후속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은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하고,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를 옮겨다니고, 자신이 가진 다양한 재원(resource)를 결합시켜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학문의 전공자와 열린 대화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학문과 학문 사이의 간학문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것 모두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전문 지식을 만들어 내는 데 필수적인 조건들이다. 한국 사회가,
한국의 대학이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가? 대학인 모두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