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 아티스트

영화 <장화, 홍련>의 한 장면. 장롱 밑에 깔린 문근영은 구해달라는 절박함으로 장롱을 두드리며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 그 드르륵 거리는 소리는 한 순간 관객의 심장을 멎게 한다.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장면에 어울리는 효과음이 아닐까. 배우의 감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스크린 밖에서 열연을 펼치는 음향의 마술사, 폴리 아티스트. 이 관객이 모르는 소리 연기자는 온갖 효과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관객이 배우와 함께 호흡하게 한다.

스크린 뒤 숨은 아티스트

영화의 효과음 작업은 얼핏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분야와 역할이 존재한다. 먼저 빗소리, 도시 소음 등 영화의 배경음을 담당하는 앰비언스(ambiance) 파트가 있고, 하드 이펙트(hard effect) 파트는 물질이 움직이는 소리를 수집, 응용하여 믹싱한다. 그리고 효과음의 꽃은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다. 폴리 아티스트는 사람이 움직여서 소리 낼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데, 걸음걸이나 옷깃 스치는 소리, 결투장면의 효과음 등을 창조한다. 영화 사운드 분야에서 유일하게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따르는 직업인만큼 아이디어와 창작 활동이 기본이 된다.


이름도 생소한 ‘폴리(Foley)’라는 말은 1900년대 초중반 헐리우드에서 활약한 효과음계의 대부 잭 폴리(Jack Foley)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스턴트맨이었던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각종 결투씬 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직접 효과음을 제작하게 되었고, 그 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의 감흥을 이끌어내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실제로 걷는 소리 하나만 해도 마찰하는 재질의 종류, 리듬감, 볼륨의 정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기에, 폴리 작업은 배우의 연기를 지원하는 또 다른 연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장면엔 이런 음향을, 그 수천만의 고뇌

뼈가 부러지는 장면이 나왔다고 실제로 뼈를 부러뜨릴 수는 없는 법. 항상 장면과 똑같은 본래의 소리만 녹음했다면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도구를 어떻게 믹싱하여 장면에 적합한 소리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것이 폴리 아티스트의 세계다. 때로는 북어에서 돼지고기까지 실제 소리와 전혀 상관없는 기상천외한 재료가 사용되기도 한다.

뼈를 부러뜨리는 소리만 하더라도 샐러리를 빨래 짜듯 비틀어 낸다거나 얇은 대나무 살을 이용, 때론 공중전화카드나 관절 꺾는 소리를 여러 번 겹쳐서 녹음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그 중 장면과 어울리는 소리를 골라내고 사운드의 크기나 믹싱의 정도를 결정하는 작업까지 합치면 수십 수백 개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 폴리 아티스트는 일상의 작은 소리에서 상상 속의 소리까지 모든 효과음에 자신의 감각과 고뇌와 경험을 녹여내야 한다.

폴리 아티스트, 그들이 사는 세상

한국에서 ‘폴리’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겨우 10년 남짓. 이전에는 ‘생 효과’등으로 불리었으며 생 효과를 담당하는 이들은 ‘효과맨’이라 불리었다. 영화과 학생들도 2, 3학년 정도 되어야 ‘폴리 아티스트’란 분야를 알 만큼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이며, 폴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3~4명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반면 할리우드에서는 창작에 대한 예술성을 인정해 폴리 아티스트가 특대우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폴리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예민한 귀, 그리고 순발력. 보통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소리도 모두 기억해 놓았다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소리를 조합해볼 수 있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또, 악기 한두 개 정도는 다룰 수 있는 리듬감도 필요하다. 호주 등 외국에는 폴리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으나 국내에는 현 폴리 아티스트가 제자를 키워나가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아쉽게도 전문적인 양성기관이 없어 영화 현장에 입문하여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배워 나가는 것이 빠르다. 그들은 회사에 소속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한다. 최근 방송국에도 ‘폴리’라는 개념을 도입해 아직은 영화보다 미비한 수준이기는 하나 발전의 가능성은 보인다.

이름만큼이나 생소하면서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폴리 아티스트의 세계. 이제 영화를 보게 된다면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그 뒤에는 당신이 상상 못할 마술 같은 비법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

폴리 아티스트의 작업 사이클
시나리오 검토 > 스텝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연출자와 함께 영화 시사, 논의 > 내부 논의(hard effect 담당자와 작업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 > pre mixing에서 final mixing까지 실 녹음 작업 > 감독의 의견 수렴, 수정 작업
Mini Interview 양대호의 폴리 아티스트 탐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서편제>에서 <밀양>, <짝패>에 이르기까지, 무려 1천6백여 편의 영화 속 효과음을 작업했던 폴리 아티스트 양대호. 충무로에 그를 거치지 않은 영화인이 없을 정도로, 1980~90년대 제작된 거의 모든 영화 속 음향을 담당했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한때 대종상 음향효과상에 노미네이트된 모든 영화가 그의 작품이어서 급기야 음향효과상을 폐지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정도. 20세 때부터 일을 시작해 ‘효과맨’에서 ‘폴리아티스트’라 불리기까지, 한국 효과음계의 신화인 그는 우리나라 ‘폴리;의 역사를 풀어냈다.
럽젠Q : 여러 소리를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창작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평소에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여 기억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소리라도 몇 번 겹치게 녹음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죠. 항상 효과음을 탐색하고 여러 방법으로 믹싱해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영화 사운드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에 최신 해외 영화도 많이 접해서 트렌드를 탐색하기도 하고요.

럽젠Q : 폴리 아티스트의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폴리 아티스트는 장면에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면에 보이지 않는 소리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강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작업할 때, 넓은 들에서 주인공이 소달구지를 몰고 들어오는 씬이 있었어요. 그때 앞으로 벌어질 슬픈 이야기를 암시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화면에는 없는 까마귀의 울음 소리를 삽입했죠. 이처럼 연출자의 의도와 영화의 분위기에 100% 감응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효과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럽젠Q :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웃지 못할 일이 많았지요. 아날로그 시대에는 더빙을 담당하는 성우와 효과음, 배경음 스태프가 모두 한 공간에서 동시에 녹음해야 했어요. 한 번은 연탄 부서지는 소리를 녹음하는데, 수십 번씩 연탄을 던지니까 성우들은 목이 망가지고, 앞은 보이지도 않아 순간 엉망이 되었던 일도 있었죠. 영화 <변강쇠>를 녹음할 때는 과장된 씬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답니다. 변강쇠가 소변을 보면 홍수가 나는 장면이었는데, 실제 폭포수 소리를 편집해서 사용하기도 했어요. 하하.

럽젠Q : 30년 이상 일하면서 느낀 직업의 매력과 고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단점이 있다면 우리는 무대 뒤의 삶이란 거예요. 열심히 만든 소리도 관객은 쉽게 지나칠 수 있죠.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만요. 그리고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작업을 마치면 항상 남는 아쉬움이 있어요. 의도와는 달리 반응하는 관객을 볼 때 ‘아직 갈 길이 멀구나.’하고 느낍니다.
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아요. 무엇보다 매일 영화와 함께한다니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죠.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접하면서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떨림을 느낀답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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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쓴 공중전화카드가 어딨더라...?
    근데, 뼈 부러지는 소리..ㅋ
    전기자 취향아니죠? 일부러 저런소리 부탁한것도 같은데..?ㅋㅋ
    암튼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네요 소리를 만들어내는 그들,
    앞으로는 영화를 볼때 효과음에도 살짝 귀기울여 봐야겠네요!
  • 우와! 쓰고난 영화할인카드를 저도 똑같이해봤는데 와 리얼한걸요!!
    영화를 하나 만들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이 필요하군요.
    이런 효과음만 담당하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게 효과음인데말이죠.
    새로운것을 시작하는 것에 떨림을 느끼는 폴리아티스트들의 세계!
    재미있게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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