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방내┃Since 1983, 시간도 쉬어 가다

당신은 시간 여행자. 빨간 벽돌의 아치형 문을 지나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조심스럽게 밟고 내려간다.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무수한 손길이 온기를 더했을 반질반질한 문고리를 살며시 당긴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옛 것의 풍경, 아득한 시공간. 어쩌면 수줍은 소녀 시절의 엄마와 청춘의 모습을 하는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터방내는 그렇게 시작된다.

흑석동 중앙대학교 근처의 한 골목. 1983년에 문을 열었다는 커피 전문점 ‘터방내’는 이곳을 찾는 대학생보다도 더 나이를 먹었다. 빛바랜 갓 등, 영화에서나 보았을법한 적갈색 소파, 설탕과 프림이 놓여 있는 낡은 테이블. 붉은 조명에 너울거리는 실내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80년대의 어느 한 부분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방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발 빠르게 변모하는 트렌드를 따라야만 살아남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본연의 스타일을 지켜 온 터방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제발 이곳만은 변하지 말아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곤 한다.

이곳에서는 황금빛 크레마를 자랑하는 에스프레소도, 부드러운 거품이 올려진 마키아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 무슨 커피 전문점이냐는 의문이 생길 터. 터방내의 모든 커피는 증기의 압력으로 커피를 뽑아내는 사이폰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알코올램프로 플라스크를 가열하면 수증기압이 형성되어 물을 밀어올리고, 이 때 알코올램프를 끄고 잠시 놔두면 곧 진하고 부드러운 커피가 추출된다. 사이폰 커피는 80년대 각지의 다방에서 인기 있었던 방식이라고 하는데, 마치 과학 실험을 지켜보는 것 같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벽면 가득한 낙서들. 30여 년 전 한 소녀가 남겼을 낙서 위에는 이제 그녀의 딸 혹은 아들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젊은 낙서가 더해져 있다. 그렇게 겹겹이 더해지는 세월과 추억 속에서 엄마와 딸이, 교수님의 청춘과 제자의 청춘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체인점 커피를 즐겨 찾는 요즘의 젊은이들도 이곳에서는 친구와 함께, 때로는 교수님과 동행하여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음 직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한 잔의 커피만큼이나 향긋하고 달곰한 수다가 그리운 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아치형의 문을 지나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가 보자. 빛바랜 테이블에 앉는 순간 반짝이는 추억 하나를 갖게 될 것이니.

99% 만족률 메뉴 4

사이폰으로 뽑아진 커피는 사장님의 손길을 거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메뉴로 거듭난다. 진저 커피, 카페 깔루아, 카페 로얄, 커피 펀치 등 중년의 어른에게는 추억을, 20대의 젊은이에게는 이색적인 매력을 선사할 여러 가지 커피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찻잔보다는 일회용 컵이, 다방보다는 스타벅스가 익숙한 청춘들을 위해 이곳의 대표 커피들을 추천해본다.

1. 트로피칼 커피

레몬을 올린 커피에 화이트럼을 첨가한 커피이다. 주문을 하면 사장님께서 손수 자리로 오셔서 즉석에서 럼을 첨가하고, 조명을 끄고 성냥불을 붙여준다. 어둠이 싫다며 조명을 켜고자 하는 행동은 금물. 사장님의 따끔한 훈계가 뒤따를 것이니!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일렁이는 파란 불꽃을 감상하자. 연인과 함께 자리했다면 핑크빛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될 테니 말이다. 불빛이 사그라졌다면 레몬을 빼지 않은 상태에서 두어 번 스푼으로 저어준 다음 커피를 즐기면 된다. 커피 본연의 맛에 은은한 럼향과 레몬의 풍미가 더해져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 알렉산더 커피

카카오, 브랜디를 섞은 아이스커피. 알렉산더라는 칵테일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주로 남성들이 즐기는 커피라고 한다. 카카오의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커피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카페모카와는 조금 다른 알싸한 맛과 향을 선사한다. 남성적인 커피라는 설명이 곁들어 있으나 카카오의 향긋함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즐겨도 무방하다.

3. 스트림 오브 라인

무더운 여름, 상큼하고 청량한 커피를 즐기고픈 이들에게 추천한다. 고요히 흐르는 라인강의 모습을 뜻하는 이 커피에는 소량의 진과 레몬즙이 들어간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숨을 내쉬면 코끝과 입안에 감도는 레몬의 풍미에 기분까지 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재료가 잘 섞일 수 있게 밑부터 저어 마시는 것이 포인트.

4. 콜드 모카 자와

달콤함의 절정,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줄 음료다. 냉커피에 커피젤리, 우유, 초코시럽 등을 첨가한 다음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은 커피로 평소 카페모카나 초콜릿 음료를 자주 마시는 이들에게 권한다. 여름에는 콜드 모카 자와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핫 모카 자와를 즐기는 것이 좋다.

 
Location 중앙대학교 병원 앞에서 병원을 등지고 좌측을 바라보자. 왼편으로 보이는 신중앙약국과 흑석동 돈가스 사이의 골목으로 건너가면 콩불, 세계 오락실이 나온다. 골목길을 따라 몇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터방내 간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Open 오전 11시 30분 ~ 밤 12시
Price 모든 메뉴 3천 원~4천 원대
Info 02-813-4434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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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멋진대요!
    99퍼센트 만족률이라~
    1퍼센트는 뭘까요 ㅎㅎ
    4가지 메뉴중 전 네번째 콜드 모카 자와가 확 끌립니다.
    서울에 들리면 가봐야겠어요~
    참고로, 부산에는 광안리에
    "인피니"라는 곳이 있어요.
    핸드드립 커피맛이 예술인 곳인데요,
    바닷가도 한눈에 보이기때문에 경치도 좋고,
    커피맛도 예술이고 하죠.
    전 그곳에서 탄자니아 블랙번을 즐겨마신답니다.
    언제 한번 들러보세요 :)
  • 구식 스타일의 간판, 적갈색의 쇼파가 참 맘에 드네요.
    시끄러운 커피 전문점보다 저렇게 조용한 다방 스타일이 좋던데...
    다른 테이블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려서
    대화하기가 참 편안한 그런 공간.. 까페... 터방내가 그런 곳인거 같아요.
    가격대도 요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구.. 늦은 시간까지 해서 식사 후에 가서
    한참을 얘기하고 와도 좋은 그런 곳이네요.
    99%만족할 메뉴 4가지 중에 저는 콜드모카자와가 제일 먹고 싶네요^^
    이렇게 더운 날씨 속에서는 한잔 딱 마시면 더위가 물러갈거 같은데요? 달콤시원한 맛^^
    증기의 압력으로 커피를 뽑아내는 사이폰 방식을 눈 앞에서 보고 싶은데... 중앙대학교 병원...
    거리의 압박이 상당하네요~ 그곳에 갈일이 생겼으면 정말 좋겠지만, 당분간은 못 갈 듯 싶군요..
    눈 앞에서 커피 추출하는 거 보게 되면.. 정말 과학실험같은 기분 들겠어요..^^
    트로피칼 커피의 푸른 불빛도 보고 싶구.... 입맛만 다시게 됩니당..ㅠㅠ
    전경미 기자님 수고했어요.
  • 분위기도 가격도 너무 착한 곳 같아요..한번쯤 가서 수다떨고 싶은 곳이네요
  • 저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어서, 반자동 커피머신밖에 다룰 줄 모르는지라 이런 오리지날 방식으로 갓 뽑아낸 아메리카노의 크레마를 보고싶어요~~ 우왕 ㅠ.ㅠ 가격도 착하네요!
  • 신나리

    오 여기 언니랑 저번에 갔었던 그곳!!!
  • 전경미

    어서들 오셔오 롸잇 나우!!! 방해받지 않고 수다떨기에 최고입니다요ㅎㅎ
  • 박보람

    그렇게 나를 데려가달라고 했던 곳이야 ! -_ㅠ 으잉잉 좋댜 !
  • 뿌리다

    아 어떤 시간을 잡고 있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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