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파티기획 마인드]제2강 기획자

   
 
 
     
 
  지난 강의에서 축제 마인드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성은 합리성과 자율성이라는 두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합리적인
동시에 기술적인 이성에 의거한 체계적 사고가 현대의 축제 이벤트를 지배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축제
마인드란 개인의 주체성이 지닌 자율적인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축제 마인드는 ‘현대적인 욕구’이다.
축제 마인드는 곧 자발성이다.

자발성은 근대적 시민의식으로부터 나온 개념이다. 시민사회에서의 책임뿐 아니라 권리의 기초를 이루며,
현대인이 기대하는 사항이다.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라는 뜻에서 현대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발성을
요구한다.

자발성이 극대화한 모습이 바로 기획자다. 기획자는 축제 마인드를 기본소양으로 갖춘 사람이다. 우리는
기획자가 샘솟듯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존재,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다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활발하게 일을 만들어내는 행동가이며, 실천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지도력의 모습을
갖는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기획자 상은 아이디어맨이나 적극적인 액티비스트 이상을 요구받는다. 바로 만들어낸
일을 관리하는 계획가, 목적의식에 따라 사건을 만들어내는 전략가의 모습이다. 아이템을 발상하고 일을
벌이는 적극성뿐 아니라, 만들어진 일을 체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기획자의 몫이다.

이렇게 볼 때 현대사회의 전문기능으로 발전하는 기획자는, 현대성의 두 측면 중에서 근대시민의 자발성보다는
기술적이고 효율적인 사고와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오늘날 전문 기획자들에게는 자발성보다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공정을 강조하는 체계적 지식이 더욱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기획자 상은 자발성과 체계적 사고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에 달려있다.
또, 기술적 지식은 의당 지녀야 할 것이 되다보니 어떤 자발성을 지녔는가 하는 점이 기획자의 질과
철학을 결정하게 된다. 결국 자발성이 극대화될 뿐 아니라 자발성을 자신의 행동습성과 지식패턴으로
잘 관리하고 조직하는 것이 기획자의 첫걸음이다.

 
 
 
  자발성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개인의 삶에 대해 갖게 되는 자발성이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힘,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관리하는 에너지다. 이것을 ‘자기 삶의 기획’이라고 부른다. 볼룬티어나 아마추어
활동을 하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자발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다른 사람보다 시간관리 능력이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생활을 자가발전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종류의 자발성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기획이 근본적으로 지녀야 할 긍정적인 사유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자신의 삶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보는 눈으로 바꿀 때, 평범한 생활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그것을 참신한 이벤트로 끌어낼 수 있다.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즉흥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보이는 해프닝을 터뜨리는 힘이 바로 이것이다. 죽은 것을 살리고 물질에 생명을 부여하는 애니미스트의
소양, 남들이 보지 않는 시민사회의 문제를 찾아 민간운동을 창출하는 프로그래머의 시각이 이에 해당한다.
앞의 것이 자기 삶의 축제를 의미하는 능동성이라면, 이것은 일상에서 실제 축제를 이끌어내는 힘,
생활에서 가능성을 보고 찾아내는 힘이다.

두 가지 자발성은 축제 마인드뿐 아니라 기획가 마인드에 꼭 필요한 것이다. 기획자는 합리적인 공정지식과
연관되고 또 그러길 기대하는 것이 현대사회이지만, 기획자의 모습은 무엇보다 주체성과 자발성이 확장된
존재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일상성이 증대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새로운 정신과 기쁨을 끄집어내는
자발성 말이다.

 
 
 
  축제 마인드의 기초가 되는 자발성으로부터 기획가
마인드의 제일요소가 나온다. 기획자에게도 생활 속에서 에너지를 끄집어내고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힘으로서의
자발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기획자는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할까.

기획이 비평과 다른 점은 부정성을 인식하는 것보다 가능성을 인식하려는 힘에 있다. 기획은 문제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기보다 새로운 틈새를 찾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식법이다. 기획이
운동과 공통적인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실천적으로 출구를 찾기 위해 부정에 기초한 비판적 인식을
행한다. 문화운동,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기획자는 제한조건을 따져 행동 여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인식함으로써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를 조건절(if) 사고와 양보절(though) 사고라고 부르자. 기획자는 ‘만약 그렇다면’ 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획가
마인드의 첫 번째는 바로 ‘조건절보다 양보절’
이라고 하겠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발성은 일상에서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사전에 이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것까지 따져보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수준의 자발성을 가질 때 실질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힘을 지닌 지식이 된다.

실질적인 지식은, 상황파악과 환경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사실 유능한 기획자는 ‘조건절
이후에 양보절’로 사고하는 존재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기획자는 양보절을 얻기 위해 조건절을
쓰되, 조건절과 양보절의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기획가 마인드의 두 번째 요소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
이라고 해야겠다. 냉철한 이성을 버리지 않고, 적절하게 쓰는 것이다. 능률적으로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축제 뿐 아니라 복잡한 현대적 산물들을 만들어내는 행위인 기획은,
소규모의 이상적인 놀이와 축제에서 기대하던 즉흥성과 우연성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합리적인 생각의 도구들에 의지한다.

 
 
 
  기획가
마인드의 세 번째 요소는 이 지식이 어디에서나 쓰일 수 있다는 의식
을 갖는 것이다.
실제 오늘날 기획의 지식은 어디서나 쓰인다. 기획은 사물을 체계적으로 바라보는 전략적 사고로, 제품의
계획에서 제작, 그에 대한 반응에 이르기까지의 공정을 단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경영
비즈니스, 20세기 중반에 마케팅이 그러했던 것처럼 20세기 후반에 기획은 시장뿐 아니라 사회조직에
적용되는 아이디어, 정보와 지식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기획의 기술이 어디서나 쓰인다기보다는 기획가 마인드가 어디서나 적용가능하다고 보는 게 옳다.
21세기는 기획의 시대다. 시장세계화와 다국적독점자본주의, 기술관료제로 둘러싸인 오늘날, 어느 집단이건
간에 뻔하게 보이는 획일적인 표준화로부터 벗어날 기획력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성을 새롭게 바라보고
설계할 기획가 마인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사회집단이 실제 기획기술을 활용하는가와 별개로 말이다.

당연히 기획가 마인드는 기획기술보다 중요하다. 기획기술이 제작의 노하우인 반면, 기획가 마인드는
구체적인 실천을 이끄는 원리를 가르치늰 선지식을 의미한다. 테크닉 전에 가져야 할 것, 즉 포괄적으로
인간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가져야만 비로소 테크놀로지가 될 수 있다. 당장 앞에 있는 공연이벤트나
문화상품, 인터넷 사이트나 광고를 기획 입안하는 일이 아니다. 대학축제를 비롯해 이 같은 현대적
기획은 모두 시장원리에만 바탕을 두는 것이 되어버렸다. 교환가치를 넘어 호혜적 원리를 생각하는 기획은
없을까. 간단한 예로 공공성이 요구되는 정책이나 주민자치 운동, 민간단체의 조직 역시 기획이 필요한데,
이처럼 시민사회의 원리에 따라 사고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상업적인 기획지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좋은 테크놀로지는 특정분야에 전적으로 국한되는 직업적 지식이 아니라 의당, 사회 전체의 원리를 바라봄으로써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다. 목적지향적인 도구적 기술 뿐 아니라 가치지향적인 정신활동을 위해 선용될
수 있는 지식이 ‘합리적인’ 것이며, 기획 역시 그런 포괄적인 쓰임새를 가져야 한다. 좋은 기획자는
자신의 관심거리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에 기획의 힘을 적용하려는 가상의 연습문제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획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획은 엄청한 지식이 축적된 정보의 체계이며, 많은 자료를 공부해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 옳은 말이지만, 기획을 전문직능이나 지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의 전문화와 분화가 결코 우리의 삶에 용기를 주었던 것만은 아니다. 전문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막연한 공포가 권위에 굴종하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 세상과 자기의 삶을 만들기보다는 ‘심리적인’
의사와 판사들에게 맡기도록 만들고 있다.

기획에 대한 공포를 버릴 것. 이것이 기획가 마인드의 네 번째 요소다. 모든
사물을 대하는 원리에는 기획이 있다. 기획은 쉬운 것이다. 원리를 생각하는 순연한 사고다. 우리가
유치원 때 이미 배운 논리와 상대주의적 관점들, 문화 다원주의적 소양에 성실한 자료조사를 기본으로
버무린 후 소박한 아이디어를 드레싱으로 얹으면 기획이 된다. 기획자의 테크닉은 분야마다 다르지만
기획가 마인드는 다 같다. 이치에 따른 순연한 사고에 따라 원리를 정리하는 훈련법은 모든 사회집단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발상법보다 더 중요하다.

기획에 대한 공포를 버렸다면 이번에는 기획에 대한 환상도 버려라. 다섯
번째 요소는, 기획을 네 번째 요소보다 더욱 소박하게 바라보는 태도
라고 하겠다.
물론 기획은 구상에서 구성까지를 포함한다. 즉 발상에서 계획, 입안과 진행을 포함한 공정을 다 포괄한다.
기획자는 아이디어도 좋아야 하고, 예술적 디자이너 감수성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획자는
의사소통에 능하다. 현대사회의 기획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획안 같은 페이퍼를 잘 쓰는 힘과 회의를
조직하고 발표를 잘 하는 힘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예술가이고 조직과 업무, 사람을 관리하는 힘이 요구되는
것이다. 차라리 현대적 기획자는 코디네이터, 조직가, 프로그래머, 네트워커의 모습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자, 기획자는 앞에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고 연출하는 작가가 아니라, 관계와 과정을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미덕의 존재다.

넓은 의미의 기획 개념을 떠나 편의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구분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첫째,
발상과 기획은 다르다. 기획은 발상이 아니라 발상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을 실현시키는 작업이다. 둘째,
연출과 기획은 다르다. 연출은 작품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작가의식을 필요로 하는 반면, 기획은 객석과
무대 뒤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전지적 관점의 존재’인 동시에 서비스맨이다. 셋째, 기획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현장을 진행하는 일꾼이며, 고급 디자이너라기 보다 이들을 지원하는 도우미다. 영화,
방송, 음반이 각각 프로듀서를 다른 의미로 쓰지만,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의미로서의 제작 개념이고,
라인프로듀서의 역할이라고 하겠다. 연출가와 예술감독이 저작권을 갖는 존재라면 좋은 제작자는 판권을
갖기 위해 기획을 한다. 이렇게 그늘진 곳에 있지만 크게 장악하고, 뒤에 서 있지만 이끌고 나가는
것이 기획가 마인드라고 하겠다.

 
 
 
  기획가
마인드의 여섯 번째 요소는 목적의식적 사고
다. 좋은 기획자는 취지를 생각하며
기획한다. 하지만 더 좋은 기획자는 취지보다는 그 일의 기대효과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이것은 기획이라는
지식의 ‘게임룰’이다. 기획자들은 일을 시작할 때 복잡한 변수들을 없애고 사건을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계처럼 사고할 때가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예상하는 결과에 맞추어 시간의
역순으로 할 행동을 정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바보스러워 보이는 이 행동은 전략적인 기획게임의
법리다.

하나의 일을 놓고 목적의식에 따른 사고를 할 때, 기획자는 제한된 물질적, 금전적, 인적 자원을
놓고 판단하게 된다. 효율을 추구할 것인가, 효과를 추구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경제의 측면에서 효율은 시간대비 산출, 효과는 투자대비 산출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기획에 있어서는 효율 가치가 과정의 에너지를 줄이는 반면 효과 가치는 에너지의 결과를 넓게 얻는
방향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때로는 기획자가 효율과 효과 사이의 선택보다는 그 균형과 안배를 잘 하는 것을 관건으로 삼게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작업의 능률을 추구하느라고 더 많은 파급효과를 얻지 못하도록 목표를 한정하거나,
높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시간과 금전, 인력의 투자를 비롯하여 공정의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능한 기획자에게는 제작과정에서의 효율을 잘 추구할수록 그 기획의 파급효과가 커질 것이 분명하다.

현대적 문화산업 기획은 합리성과 효율성에 바탕을 두고, 일정한 표준공정에 의해 이벤트와 문화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한다. 물론 표준공정은 축적된 사례자료를 바탕으로 한 확률에 의지할 것이다. 물론 이
공정이 동시에 효과를 높이는 지식도구이기도 하지만, 효율공정만으로는 기획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기획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소통과 사회관계, 삶의 질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그것은 해당 기획에 가치관이나 취지의 형태로 들어간다. 따라서 효과는 양 뿐 아니라
질적이고 정신적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행정구역에 10명 ‘밖에’ 안 되는 시각장애우
주민을 위해 횡단보도와 소공원 테마가 기획될 수도 있고, 관객만이 아니라 제작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공정을 목표로 한 마을축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전혀 대중적이지 못한 소수자 인권을 위한
행사나 매니아들의 문화모임이 높은 정신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가진 문화기획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효율을 추구할 것인가, 효과를 추구할 것인가는 해당 기획을 함에 있어서 전략적 목표 선택이나 균형의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단순히 표준공정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도구 사이의 구분만도 아니다.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놀이나 사건에 기획을 집어넣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획자는 효율과 효과를 반드시
자신의 삶의 가치와 결부해서 음미해보아야 하며, 그런 방식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획가 마인드의 마지막 요소는 최근에 나타난
동향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기획들은 시장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대규모 거대독점자본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문화상품만이 좋은 기획을 대변하는 듯 이야기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보면 작은 틈새에서, 혹은 아마추어에 의해, 또 시장교환과 거리를 두고 이루어지는 참신한 기획들이
많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이미 있는 것을 잘 쓰는 것,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잘 연결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재활용, 소규모, 저예산 이벤트의 증가는 오늘날의 추세를 반영한다. 국제사회에 전례가
드문 한국 사회의 인터넷동호회와 매니아집단 역시 스스로 소박하고 힘있게 기획하는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변화하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다. 문화이 시대에는 자신이
직접 만드는 데에 의미를 두므로, 아마추어 이벤트들이 번성할 뿐 아니라 그 내용적 가치를 인정받기
쉽다. 적게 쓰면서 많이 얻는 것을 바라는 불황기의 경제심리, 거대한 도시와 대중소외가 증가하는
시대에 작은 것에 의미를 두면서 친밀한 소통을 원하는 사회적 욕구가 형성되었다. ‘적게’ 쓰고 ‘작게’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게-작게 기획을 할 수 있는
소양과 관점은 기획가 마인드의 기본
이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작고 별난 문화축제 중에는
기획가 마인드가 요구하는 요소들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서울 중심으로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자.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발은 이 사회에서 어느 집단도 만들지 못 했던 독보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였다. 안티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가장 큰 재산은 매끈한 운영방식이나 이색적인 볼거리가 아니다. 많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인 미의 상품화에 반기를 드는 방식으로,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저항적이 패러디를
구사한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 전략 속에는 인간 육체와 아름다움을 획일화하는 세태고발 뿐 아니라
노인, 성적 소수자의 권리선언, 페미니즘의 이슈 등이 무리없이 즐겁고 자극적으로 녹아있음을 보게된다.
좋은 축제는 그 사회에 전례없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캠페인이 되고, 이를 통해 결속이나 설득을
끌어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사람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철저한 아마추어리즘의 잔치라는 점,
크고 심각한 담론이 아니라 작은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작년까지 10여회 이상을 진행했던 10만원 비디오페스티발 역시 철저하게 아마추어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초저예산비디오 작품으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며, 주변의 동료들로부터 이해받고 얻어낸 저렴한
제작비를 통해 관객과 축제참가자를 확보하는 공동체적 원리가 이 문화행사의 핵심 아이템이다. 이 행사는
‘파티’의 개념을 지니고 있는데, 먹고 마시거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또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영상물을 보면서 서로 교감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파티에 적용할 수 있다는 10여회의 운영 속에서
잘 보여주었다. 비록 대중적이지는 못 하였지만 매니아집단을 확보하면서 이들이 보인 기획가 마인드는
탁월한 것이었다. 국내에서 드물게 전문가의 권위에 좌우되지 않고 영상 아마추어리즘의 가치를 표방한
문화적, 미학적 탁견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축제의 기획에 있어서도 누구나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달려라 홍대앞, 땅밑달리기, 홍대앞 클럽데이 등도 아마추어 이벤트의 좋은 사례다. 이들은 운영상의
무리도 있었지만 여러 그룹이 함께 기획과 운영을 맡고 색라이브클럽과 같은 기존의 인프라를 잘 묶고
저예산 장비를 활용한 분권적인 네트워크 행사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

이 외에 독립예술제나 지하철 예술무대와 같은 행사는 기획을 단순한 아이디어에 환원하지 않고, 충분한
연구, 토의, 합리적 운영공정과 조직을 관리해가면서 성장한 경우다. 각각 자발적인 청년문화권과 젊은
공연예술기획자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로, 연출보다 네트워크를 묶고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합리적인
기획력이 돋보인다.

이제는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퀴어영화제()는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실현하기 힘든 정신적 가치를 주장한 경우다. 한국에서는 도외시되는 성적소수자
문제를 인권운동인 동시에 문화운동의 테마로 확대한 기획이라고 하겠다. 기존에 없었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설득하는 힘이 좋은 기획이라면 퀴어영화제의 초기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타파하는
양보절을 잘 보여준 캠페인 사례로 기록할 수 있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가 문화행동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기획자들을 모아 진행하는 작은 행사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작게-적게 원리를 잘 드러내는 의전형적인 시도들이다. 예를 들어
납세자의 날, 국세청 앞에서 인디-언더 밴드들을 모아 벌인 깜짝 거리콘서트는 보기에 따라서는 상식적인
이벤트로 보일 수 있지만, 뜻을 동감한는 젊은 문화권의 가수들이 참여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큰 소통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기획가 마인드는 바로 우리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마지막
지점에서 소통을 통한 기쁨을 확인하고자 하는 소양을 뜻한다.

각 지역의 작은 축제들 중에는 작게-적게 원리를 실현하는 경우들이 있다. 외형이 조촐하고 초라한
소규모 행사 중에는 주민자치의 정도, 민간참여의 정도가 높은 행사들은 있다. 예를 들어 2000년도에
제1회가 진행된 봉평의 메밀꽃축제는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취지가 잘 산 사례다.

10년전과 다름없이 지금의 대학축제는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대학축제에 대한 대학인들의 비판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하나는, 상업성 이벤트와 매스 미디어의 관행을 따르는 엔터테인먼트
지향에 대해 사회비판적인 대학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다. 내용은 캠퍼스
밖의 이벤트와 차이가 없고, 도우미가 나오는 행사를 대학인이 바란다 하여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축제를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대학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다.
즉 대학축제의 문제는 시민사회의 기능을 잃은 캠퍼스와 공동체정서를 거부하는 대학생 풍토에 있지,
축제제작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어느 경우라도 대학축제는 시각과 방향성, 기획의 철학부터 다시 생각하고 고민할 때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기획가 마인드를 고민해보지 않은 운영자들이, 단 한번도 기획이나 축제에 대해 토론하지
않고, 암묵적인 합의 아래 시장논리와 기성세대를 답습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이런
대학축제가 정체성은 고사하고, 기성 사회와 매스미디어의 작품수준을 따라가기 힘든 졸작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대학인들은 축제의 원리와 본질, 축제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특혜의 조건
아래 있다. 이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학의 축제를 책임지는 것은 학생회비를 낭비하는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대동단결과 같은 대의명분에서 만들어지는 축제는 정치적 목적이나 큰 규모와 전통적인 형식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누가 이것을 실질적으로 즐길 것인가 하는 관객 눈높이는 잊게 된다.,
만드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갈등하면서 운영해나가는 공정을 성찰하고 기록하고 축적하고 또 즐기려는 인식은
부재하다. 기성 문화판의 답습이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학은 대학인의 건강한 놀이문화와 대학축제의
관계를 고민하기 이전에 합리성의 원리부터 차근차근 곱씹어, 관습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기획가 마인드에 충실한 원리 학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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