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파티기획 마인드]제1강 축제

   
     
 
1990년대는 놀이, 축제와 같은 말이 유달리 많이 쓰였다. 왜 그럴까.
그 이전까지는 산업화에 바쁜 한국인들이 근면을 미덕으로 생각할 줄 알았을 뿐, 우리 주변에 점점
많아지는 소비나 여가, 휴식 등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 했다. 생산적으로 이 시간들을 활용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가 다가오자 어떻게 하면 놀이와 소비, 축제 같은
행위들을 잘하고, 거기에서도 이득을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발전된 사회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들이나 문화계에서 축제와 파티는, 많이 생각해볼 것이면서도 깊이
알기 힘든 것, 주변에 붙여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은 한국 사회에서
문화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경제적 풍요, 소비문화, 문화생산 등이 활발했다. 1990년대 후반에
아이엠에프 사태가 벌어지고 산업과 소비가 다같이 위축되자 사람들은 다시, 어떻게 하면 제한된 상황에서
여가와 소비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힘든 삶을 뚫고 나갈 출구로서 놀이,
소비 같은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파티와 축제다. 그런 말은 1990년대 이후에
문화적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 ‘잔치’, ‘난장’ 같은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입에 붙어 있었다.
먹을 것을 만들고 대문을 열고 함께 뒹구는 잔치나 난장은 장터, 저자거리 관념과 연결짓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즉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기 전에 시장의 성격은, 교환가치 같은 영리성 외에도
공동체에 개방된 소통의 장으로 공공성을 함께 갖는 것이었다.
 
전통사회의 잔치, 난장 같은 것이 현대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개인화된
사회에서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주체적인 현대 시민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현대사회의 획일성과 순응주의에 물들지 않고 자발적인 삶을
택하는 기운이, 파티, 축제와 같은 일상을 벗어나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잔치, 난장, 축제, 파티 등은 모두 수평적 네트워크와 비슷한 속성이
있다. 무대와 객석, 마루와 마당을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참여자가 곧 제작자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놀랍게도 앨빈 토플러가 미래사회의 ‘생산하는 소비자’라고 말한 것이,
원시적인 이상공동체의 축제 만들기에 딱 드러맞는다. 생산자가 관객의 대부분인 것이 소박하지만 결속력
있고 좋은 잔치다. 소비자였던 존재가 곧 생산자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누구나 축제주의자가 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좋은 잔치와 난장은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으며, 정체성을 바탕으로
뭉친다. 따라서 아무리 놀고 마시는 것으로 여겨져도 소통과정이다. 예술이나 제의만이 아니라 먹거리가
매개물로 강조되는 것은 바로 친교를 맺기 위함이다. 그것은 잔치와 행사장에서 텔레비전보다, 인터넷보다
더 큰 미디어의 힘을 발휘한다. 결과보다는 즐겁게 만드는 과정이나 인간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다 보니, 축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축제는 상대적으로
공연이나 전시보다 더 놀이의 약속이 강조된다. 수평적인 운동장에서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인드가
없다면 좋은 난장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성공하는 축제의 대부분은 그곳에 가면 ‘이렇게 놀아야 한다’는
식의 공유하는 활동상을 지니고 있으며 참가자들이 그런 이미지에 따라 행동한다. 전문적인 축제 제작에
있어서도 사전에 그런 행동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 성공적인 축제마케팅이 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상시에, 항상, 자연스러운 축제인의 소양을
가졌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 ‘축제 마인드’을 지니지 않는다면 좋은 축제를 만들기는커녕 축제를
어떻게 즐길 것인지 감도 잡기 힘들겠다. 이제 축제 마인드를 하나씩 잡아보자.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축제 마인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것을
‘최소-최적주의’라고 부르자. ‘작지만 큰 힘’이라는 구호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지역자치와 주민자치에
대해 생각해볼 것 : 지방화를 통해서만 지구화가 가능해진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그리고 최소가 곧 최적인 시대다.
 
지방자치단체가 수백억원을 들여 제작하는 최근의 대규모 지역축제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지역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만드는 작고 소중한 행사들을 생각해보라. 벼룩시장이라도
주민들이 100% 자치할 의지과 있고 능력이 있다면, 바자회 하나라도 주민들이 100% 참여하고
자치하면서 꾸릴 여건이 된다면, 이보다 힘있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그 축제를 보고, 예술성이나
연출부터 판단하고 평점 매기는 전문가가 있다면 이는 모두 가짜다.
   
두 번째 축제 마인드는, ‘무엇이나-누구나’ 원칙이다. ‘무엇이나’
원칙은 삶 속에서 실마리를 보는 힘이다. 우리 주변의 행위 중 무엇이나 축제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원칙은 누구라도 쉽게, 편하게, 즐겁게 축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 살리기에 해당한다. 새로운
기준, 새로운 눈높이를 갖는 것이다.
 
마법사와도 같이 무엇이나 축제가 되도록 만들려면 보는 눈이 필요할
것이다. 일상 속에서 신비를 찾는 힘, 바로 탐험하는 눈동자다. 많은 것을 축제로 해석하고 축제로
만들려고 하는 의미부여의 감수성 역시 필요하겠다. 애니미스트처럼 사물에 생명을 넣는 훈련이 기획자의
아이디어 발상법에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누구나 축제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중요하다. 스스로
즐겁게 만드는 정신은 우리 존재를 재고하게 만든다. 엄격한 예술혼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기분 좋게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배설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럴 때 아마추어 문화가 번성하고
새로운 예술이 꽃이 핀다. 기분좋게 즐기는 행위는 관계를 만들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인 동시에,
잦고 경쾌하면서도 넉넉한 생산 활동이다.
   
나머지 두 마인드는 두 번째 마인드를 부연설명한 것이다. 세 번째
마인드는 ‘일상 더하기 일탈’이라고 부르자. 축제는 일상이다. 어디에나 축제가 깔려 있다. 흔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축제를 찾아라. 틈새를 공략하라! 하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축제가 터질 수
있다. 축제는 일탈이다. 당신이 마음 먹으면 언제라도 독특하고 참신한 삶의 의미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머리 속에 그려진다.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아이디어, 의외성, 새로움 등 문화적 탈출, 정신적
파격이 바로 축제의 묘미다. 바로 이전에 없었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이러한 일탈을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경쾌하고도 경이로운 것
아닌가. 그런데, 축제가 일상이라는 생각이 뿌리가 되지 않는다면 일탈은 큰 의미를 못 갖는 값비싸고
환상적인 일회성 우주여행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일상 위에 일탈’이다.
 
네 번째 마인드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 대한 철저한 확신이다. ‘권리-능력’
원칙이라고 부르자. 21세기에 어울리는 문화창조권으로서 ‘누구나 축제를 만들 수 있다’는 권리의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말을 되뇌이면서도 전문가만이 축제를 만들 수 있다고 굴복하지 않는가.
다음으로 잠재력과 능력에 대한 인식이다. 기술은 시간을 투자하면 쉽게 습득할 수 있지만, 소양과
마인드는 아무나 갖지 못 한다. 그렇다면 마인드만 갖고 있는 ‘당신도 축제를 만들 수 있다’.
   
축제 마인드에 대한 강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축제를 현대적 삶의
조건과 관련지어서 이해할 것! 축제는 이상적 원시공동체를 그리고, 근대 이전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축제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성을 철저히 담고 있다.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현대성의 취지를
동시에 알지 못 한다면,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건강한 축제의 모형을 잡을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축제를 영화만큼 재미있는 거창한 엔터테인먼트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사회에 태어나서 우리가 본 축제란, 디즈니랜드와 같은 하이테크 놀이동산의 화려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축제는 우리의 꿈이지만 동시에 수동성을 강요하는 인상이다. 축제가
커다란 스펙타클(볼거리)이 되면서 극장 객석 같은 것을 우리 스스로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사회의 출현이 인간의 자율성과 성찰하는 힘을 증대시켰다면, 건강한
축제의 모형은 인간이 성장하고 자아가 발달할 수 있는 생활 속의 학습이나 능동적으로 즐기는 체험이
되어야 옳다. 우리 머리 속의 축제상은 이렇지만, 실제 오늘 당장 우리 눈이 보고 싶은 축제는 화려한
이미지들 아닐까? 현대인은 딜레마 속에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현대 축제는 기분 좋은 풍향을 맞이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대안문화 바람이 불면서, 냉전이후 1990년대 지방화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면서,
작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증가하기도 했다. 축제 역시 그런 발전이 있지만, 획일적인 세계화로
상징되는 거대한 자본과 화려한 환타지 역시 증대일로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축제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상충 가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 축제는 아주 커지거나 아주 작아졌다. 비용은 아주 많아지거나 아주 적어졌다. 제작은 아주 전문적이거나
아주 아마추어적이다. 첨단지식과 기술로 기획되거나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놓아둔다. 대세에 지배되지
않는 삶 속의 파격과 ‘점프’를 바란다면, 건강한 축제의 모형은 상충가치 중 어느 것일까?
   
우리가 축제주의자를 꿈꾸어도 현대사회는 우리를 그렇게만 놓아두지 않는다.
좋은 축제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대사회의 어떤 면을 역시 점프할 수 있는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현대성은 두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은, 근대사회에 자율적인
주체가 탄생한 것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 되면서 ‘개인’과 ‘자유’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생각은 이성적 능력에 따른 자주적 판단과 반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우리를 국가나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시민권을 가진 당당한 존재로서 자발적이게끔 하는 것이다.
 
현대성의 뒷면은, 합리성과 효율성의 사고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우리의
이성이 만들어낸 근대적 문명은 시스템에 따라 사고하고 기술과 계산과 도구적인 지식에 의지한다. 현대적인
축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비자에게 판타지를 정교하게 제공하기 위한 기능적인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러지
역시 이것에 다름 아니다.
 
현대성의 어두운 뒷면이 지금의 축제와 이벤트에도 만연했다. 우리가
축제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축제이벤트다. 축제의 판타지를 주는 이벤트라는 것이다. 축제와 달리
이벤트는 현대성의 산물이며 근대적 기획이다. 전문화와 분화의 공정체계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사회에 늘어난 대규모 지역관광축제 역시
이런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 외관 보여주기와 관료적 전시행정이 결합한 것은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요식성과 상투성이라 치자. 상업적 이익을 중심으로 정해진 공정에 따라 만들어내는, 지역마다
대동소이한 이벤트의 양상들은 반드시 현대기술이 풍요롭기만 한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건강한 현대적 축제는 현대성의 앞면을 바탕으로 한다. 볼거리 축제가
아니라 삶의 축제가 되려면, 우리는 작고 소박하게, 그리고 자율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축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축제는 획일적인 행사가 아니고 그 외연 역시 넓어질 것이다. 자신을 피동형으로
만드는 도시화된 환경에서 순응주의자가 되길 거부하는 것은 현대인의 이상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근대적 주체의 비유로서의 자연환경을 정복해나가는 오딧세이를 인용한 것과 같다.
 
오늘날은 개인화된 현대적 삶인 동시에, 자유롭지만 익명적 대중, 고독하게
군중 속에 소외된 존재로서의 모습이다. 표준화된 체계에 대한 도전은 현대인이 당연히 갖는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기획이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충분히 자발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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