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영|식상食傷 의 상쇄 본능

사진 박상영/제17기 학생 기자(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

그녀가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소품으로 불쑥 내민 것은 긴 가죽 수첩이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튀어나올 듯한 아이디어의 산물.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은 그녀의 흥미를 가장 사로잡는 순간이다. 그 넘치는 아이디어는 곧 그녀의 힘이자, 자신이 만드는 만화의 힘이기에.

자신을 배반한 굴복은 후회로 돌아온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인생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부모님과 끊임없이 갈등했다. 그를 못 견뎌
세 번의 가출 경험이 있었을 정도. 자연히 대입 진로문제에서도 견해차가 발생했다. 패션을 공부하고 싶어 의상학과를 고려한 그녀를 부모님은 현실을 생각하라며 뜯어말렸다. 주변 친척들까지 동원된 설득에 힘입어 그녀는 결국 부모님의 뜻에 굴복해 단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이화여대 법학과에 덜컥 입학하게 되었다. 명문대에다가 법대라••• 어떤 이는 남보다 유리한 출발이라고 판단하겠지만, 그녀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법학은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어요. 대학 4년간 학점이 1.8, 1.7 정도였으니까. 정말 간신히 ‘학고’만 면할 정도였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됐어요. 결국,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관심사인 영화나 패션관련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죠.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과감한 포기, 스스로 개척자가 되라

결국,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정도(正道)’에 생각 없이 들어왔던 것을 후회하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녀의 첫 번째 도전은 대학 졸업 당시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되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화계와 맞닿은 끈이 없었기에 일단 일하면서 제작을 공부할 수 있는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클라이언트의 구미에 맞는 것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창작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 이때 그녀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것은 ‘만화’였다. 하지만•••

만화는 학창시절 취미로 그렸던 경험이 전부였어요. 그래도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죠. 자신감 하나로 아예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고, 회사에 다니면서 삽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이를 통해 그림 연습을 하면서 돈벌이도 병행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10개월의 시간을 노력한 끝에 윙크 신인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꿈을 이룰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자기 확신이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본인이 진짜 가야 할 길은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이 있는 바로 그 길일 수도 있다고.

한 계단씩 정해진 길을 걸어서 대학교까지 진학한 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특히 더 힘들 거에요. 섣불리 도전했다가 사회의 주변부를 맴돌게 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직접 도전하지 않고, 주변 사람의 말만 듣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만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해 보이는 만화가라는 직업을 택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진짜 하고 싶고 잘 할거라는 확신만 든다면 직접 부딪히면 좋겠어요.

늘 새롭자. 식상은 자신을 괴롭게 한다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클럽을 마흔 살이 넘어서 처음 가봤어요. 네일 아트도 얼마 전에 처음 받아봤고요. 20대 때 해야 한 건데••• 지금 와서 하는 게 조금 뒤늦은 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늘 즐거워요. 노는 것도, 일도, 모든 면이 다요.

그녀는 어떤 분야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했다. 만화든 생활이든 ‘식상은 자신을 괴롭게 한다.’라는 어록을 남기면서. 이런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친구들은 만화도 금방 질려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벌써 10년 넘게 만화를 그릴 수 있던 원동력은 새로운 소재와 캐릭터, 제작방식 등의 시도였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면 ‘만화’일지라도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는 천계영 작가.

기회가 되면 캐스팅 디렉터도 해보고 싶어요. ‘아이돌’ 그룹을 제작했어도 정말 잘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룹 이름도 기발한 걸로 짓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입지를 가졌으면서도, 언제든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이 정녕 ‘대인배’였다. 우린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마저 잃어버릴까 얼마나 전전긍긍해 왔던가. 아직 도전이 끝나지 않은 듯 신나게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그녀로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을 보았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는 길@KyeYoungChon

인터뷰 안 하기로 소문난 천계영 작가와의 끈을 이번 한 번만으로 만족할 리 없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리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만화 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 및 미국 유학을 후회하는 이유, 그리고 ‘아이돌’ 그룹과 관련한 비장한(!) 기획 등을 아낌없이 공개하겠습니다. ‘커밍쑨!’ – 편집자 주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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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계영 작가님 기사에 달렸던 많은 댓글들이 다 날아갔군요. ㅜㅜ
  • 천계영 작가님 오디션 DVD 하이힐을 신은 소녀 등등 완전 팬인데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
    뚜렷한 가치관 존경스럽습니당..♡
    잘 읽고가요~^^
  • 으헣

    조심스럽게 고백할 것까지야 ㅋㅋ 감수성 충만한 10대치고 오디션팬 아닌 분도 있나요? ㅎㅎㅎ 여튼 재밋는 글 잘 읽었어요!!!
  • 이주현

    저도.. 오디션.. 팬이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하고 갑니다ㅋ
    다음에 천계영 작가와의 만남 에피소드 오프더레코드로 부탁해요 윤애기자님ㅋ
    사진기자로 참가한 상영기자님도ㅋ
  • 박상영

    천작가님과 즐거웠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용 ㅠ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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