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플린┃깊고 진한 ‘한식’다운 통찰력

한식 블로그 ‘팻맨서울’을 운영하며 세계인에게 한식의 맛을 톡톡히 알리고 있는 제니퍼 플린. ‘한식 굿이에요!’를 외치는 외국인들이야 많지만, 그녀가 한식을 다루는 태도는 한 수 위다. 미각의 만족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숨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파헤쳐내는 그 통찰력을 어찌 감당할까. 그녀로부터 우리도 몰랐던 한식의 신세계는 펼쳐진다.

넘치는 학구열로 한식을 포착하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미국인 제니퍼가 신세계와도 같은 아시아의 문화에 이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1999년,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제니퍼는 본래 관심을 두었던 일본보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한국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한 제니퍼는 졸업 직후 미국과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또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대학 졸업 후 2002년에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원어민 교사가 없는 한국의 시골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전 남자 고등학교에 배정됐죠. 힘든 것도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너무 귀여웠거든요. 1년을 안동에서, 2년을 경주에서 머무르며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렇게 경상도에서 3년을 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UCLA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대학원에서는 아예 한국학을 전공했죠.

대학원을 마친 제니퍼는 곧바로 한국에 돌아와 정착을 준비한다. 그리고 몇 군데의 직장을 거친 끝에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에서 editing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인류학 전공자가 어디 가겠는가. 도처에 널려 있는 한식이 제니퍼에게는 도통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았다. 쌀밥 한술을 떠도 그녀의 눈에는 그 속에 숨은 문화와 역사가 펼쳐졌던 것. ‘한식 블로그’를 열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뚜렷한 계기가 있어서 블로그를 열게 된 것은 아니에요. 항상 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온 처음부터요.(웃음) 사실 음식을 공부하는 것이 그 나라를 아는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가령 김치를 보세요. 한국은 식물을 재배할 수 없을 만큼 유독 겨울이 추운 나라죠. 그래서 겨우내 영양을 줄 수 있는 야채를 김치와 같이 숙성시켜 먹게 된 거에요. 이렇듯 한 국가의 전통음식 하나만 봐도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이 모두 녹아 있어요. 이래서 음식을 공부하는 게 참 재미있는 거에요.

한식, 이 매력적인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이유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된 ‘한식 세계화’. 지금 한식은 정부의 주도하에 세계 시장 진출에 한창이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제니퍼의 의견은 어떨까? 그녀는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행하고 있는 여러 홍보활동에 다소 부정적이었다.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비빔밥 광고가 그녀에게는 다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동안 스시, 파스타 등 미국 시장에 진출한 어떤 외국 음식도 광고를 시도하지는 않았거든요. <뉴욕 타임즈>의 비빔밥 광고는 한식이 건강에 좋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는데, 미국 사람들 생각은 달라요.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있어야 먹거든요. 가끔 한식을 소개하는 어조는 마치 이걸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냥 외국에 최대한 다양한 한식을 소개하고, 소개를 받는 외국사람들이 직접 자기 입맛에 맞는 한식을 고르도록 돕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봐요.

그녀는 정부가 해외에서 한국 이미지의 고급화를 위해 궁중요리를 주로 프로모션하고 있는 것도 지적한다. 궁중요리는 맛도 영 싱거운데다 일반 한국사람들이 매일매일 먹는 요리도 아니라는 것. 비빔밥, 불고기 등의 뻔하디뻔한 메뉴만을 권하는 것도 지겹다고 호소한다. 몇몇 음식만이 ‘외국인에게 소개하기에 어울리는 한식’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조금 전환해보면 어떨까? 조갯국, 추어탕과 같이 외국인이 꺼릴 것 같은 메뉴, 곁들이 반찬일 듯한 메뉴가 의외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근과 들깨를 특히 좋아해요. 외국인 친구에게 한번 권해 보세요. 전 처음에 먹고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오리 불고기도요! 정말 새로운 맛인데 반해 버릴 정도였어요.

지극히 한국적인 시선으로 폭이 좁은 사고를 했던 것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대화였다. 하기야 무엇이든 재미있게, 색다르게 접근해야 귀에 들리는 법. 제니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물놀이, 고층 건물, 청계천, 자동차, 궁중요리, 산’ 위주인 우리나라의 국가광고도 이제 싹 바꾸어 버릴 시기가 온 것 같다.

외국’ 아닌 ‘사는 나라’가 된 한국

제니퍼에게 훗날 한국이 그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더니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사실 저는 한국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 이제는 그냥 생활 그 자체가 되어버렸어요. 왜, 처음에 타국에 와서 그 나라 음식을 먹을 때는 어떤 게 잘 만든 건지, 아닌지 잘 모르잖아요.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와서 학생식당에서 김치를 먹었을 때 김치가 진짜 맛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홈스테이하는 집의 어머니나 친구가 만들어준 김치 등 다양하게 먹어보니 어느 순간 맛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맛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이제는 어떤 김치가 잘 담근 맛인지, 어떤 김치가 맛없는지 차츰 알아 가고 있어요.

한국사람도 구분하기 어렵다는 잘 담근 김치 알아내기에 성공했다니, 그녀도 이제 한국인이 다 된 게 아닌지. 내년이면 어느덧 제니퍼가 한국에 온 지 12년 째이다. 그녀의 미래는 또 어떤 빛깔일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원하는 일을 하고 살려면 학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음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요. 학부 때 인류학을 배웠으니까 다른 나라에도 관심이 생기네요. 일본이나 중국, 몽골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럴 수가. 그녀는 아직도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손에 닿는 것에서부터 차근차근 의미를 찾아가는 그녀의 소리 없는 열정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면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한 식당 ‘에코 밥상’은 100% 친환경 국산 재료를 사용하는 한식집이다.
집과도, 직장과도 가까워서 제니퍼가 남자친구와 함께 종종 즐겨 찾는 곳이라고.
주 메뉴는 된장 소스가 일품인 생채비빔밥(1만원).
Info www.ecotable.co.kr, 02-736-9136(경복궁역 4번 출구)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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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들은 비빔밥을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억지로 먹는 사람들이 많던데 제니퍼는 비빔밥을 즐긴다고 하니 참 반갑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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