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서점> 정지혜 ㅣ 책과 사람, 그 들여다보기

풍경이 한산하다. 사방을 가득 메운 높은 책꽂이 대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이 가득한 곳. 벽면엔 신간을 홍보하는 포스터 대신 예쁜 엽서가 사랑스러운 곳. 서점이다. 책을 고르는 사람도, 계산하는 점원도 없이 오로지 책방 주인이 홀로 있다. 그 날도 <사적인 서점> 정지혜 씨는 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차 한 잔과 함께 단 한 명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편집자 주 _ 글을 쓴 주보배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1인칭 화자인 ‘나’로 통일합니다. 그 느낌이 더 좋으니까요. <사적인 서점>에 어울리는 ‘사적인 인터뷰’에 맞게.

붐비지 않는 서점. 볕이 좋은 다락방 같은 <사적인 서점>의 풍경.

‘나’에 대한 사적인 고민에서 탄생한 <사적인 서점>

그녀가 직접 고안한 <사적인 서점>은 책을 ‘추천’한다는 말보다 ‘처방’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손님과 책이나 독서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삶과 고민, 불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여기서 책을 처방한다는 것은 곧 손님이 가진 고민이나 궁금증에 ‘힌트’가 될 수 있는 책을 드린다는 의미다. 책이 삶의 힌트가 되는 이유는 뭘까.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바로 그 사람의 관심사나 생각에 대해 들여다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혜 씨는 단순히 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덴마크에는 국민 모두에게 주치의가 있대요. 아주 오랫동안 같은 마을에 머물면서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고 해요. 저도 주치의가 되고 싶었어요. 책으로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는 독서 주치의요.(웃음)”

지혜 씨는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다. 책을 사랑하던 소녀는 계속해서 책과 가까이 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에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곳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일을 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해서 사회생활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녹록지 않은 삶을 버티는 동안 온갖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부유했다. 이직, 퇴사, 휴식… 어느 날이었을까, 마음속엔 뚜렷한 목소리가 은밀하게 찾아왔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그 책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엔 새로운 길을 찾기로 결심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니, 책을 판매하는 일에 도전하면 어떨까 했죠. 그렇게 서점원으로 약 3년쯤 일했어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스멀스멀 다른 욕심이 생겨났다. 책에 관한 흥미를 좀더 직접적으로 전할 순 없을까. 사람을 직접 만나 책을 추천하고, 출판사 편집자였을 때처럼 책과 관련한 기획도 하고 싶었다. 결국, 완벽한 독립을 택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향한 치열한 고민의 끝, <사적인 서점>의 시작이었다.


책꽂이에 꽂힌 ‘서점’에 관한 책들. <사적인 서점>을 향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독서는 수준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다

<사적인 서점>의 독서 주치의로서, 지혜 씨가 자주 진단하는 독서 질병은 무엇일까. 바로 ‘매너리즘’이다. 독서 매너리즘의 첫 증상은 ‘교양 있고, 수준 높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타난다. 나 역시 그랬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요?”란 그녀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나마 읽었던 책 중 그럴듯해 보이는 책만 골라 대답하려는데, 문득 스무 살 무렵 친구와 나눴던 한 대화가 떠올랐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에 대학 동기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너, 상실의 시대는 읽었지?”

“<사적인 서점>에 찾아오는 여러 손님이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늘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죠. 그러다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읽어야 하는 책’에 묶여서 결국 책과 멀어지기도 해요.”

이처럼 책은 흔히 교양과 지식수준을 판단하는 척도처럼 여겨진다. 특정한 책을 읽은 사람이어야만 소위 ‘책 좀 읽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한다면 <상실의 시대>쯤은 읽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친구의 말처럼,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한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처럼.

“그런데 그거 아세요? <상실의 시대>, 사실 저도 안 읽었어요.”

그녀는 책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책의 분야가 명확했다. 커가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저변을 넓히고 있다. 그러기에 <사적인 서점>을 막 열었을 때, 한 가지 고민과 마주했다. 책을 처방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양의, 동시에 수준이 높(다고 생각되는)은 책을 읽었는지 걱정됐던 것. 책을 처방할 생각에 기대되는 한편, ‘네가 뭔데 책을 추천해?’라는 시선이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한 책꽂이에 꽤 어려워 보이는 책들을 선보여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도 들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우연히 만난 한 문장으로 해소되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제게 친구가 해 준 말이 가슴 깊이 남아 있어요. ‘독서는 수준이 아닌 취향의 문제다.’라는 말이었죠.”


사람의 사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는 주인.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하다.

친구가 던진 말은 책 처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사적인 서점>을 찾아온 손님과 만날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책과 가장 실망스러운 책’에 대해 질문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 하나. 누군가에겐 가장 좋아하는 책이, 다른 누군가에겐 가장 실망스러운 책으로 꼽혔다.

“<데미안>이 가장 극심하게 호불호가 갈려요. 어떤 이에겐 지나치게 철학적이라는 이유로 기피하는 책으로, 누군가에겐 자신의 인생을 흔들어놓은 ‘인생책’이 되기도 하죠.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웃음)”

지혜 씨는 책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소개했다. 바로 절대적으로 좋은 책, 절대적으로 나쁜 책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거다.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읽어요. 따라서 책에 대한 가치는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어요.”

책의 가치는 ‘나’에게 달려 있기에, ‘독서 매너리즘’에 걸린 당신에게 수준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평가할 때 재미와 감동, 교훈 모두 있었는지 따지지는 않잖아요? 유독 책에 대한 평가가 엄격한 편이죠. 책도 마찬가지예요. 다 읽고 재미있었다면, 그걸로 그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책장 사이에서 발견한 북극성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늘 다른 사람의 ‘인생책’을 묻는 그녀에게 질문 화살을 돌린다면? 주저함 없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꼽았다. ‘인생의 북극성’과 같은 책이라고 덧붙이면서.

“소설을 쓰는 과정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음을 묘사한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이 문장을 만나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사적인 서점>의 손님은 독서 주치의인 그녀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삼십 초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쓸 때 우리는 삶의 아주 작은 순간까지도 떠올린다. 이 순간이 모여 소설을 이루는 문장이 된다. 소설이 인생을 세세히 묘사하는 여러 문장으로 완성되듯 인생도 작은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다. 책을 통해 그녀는 깨달았다. 삶은 작은 행복이 넘쳐나는 축복이라는 것을.

“<소설가의 일>을 읽고 제가 느낀 것을 압축한 말은 ‘오늘의 소확행’예요. 이 말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하루키가 산문집에서 처음 쓴 말이죠. 행운같이 큰 행복을 바라기보단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실제로 삶은 그 작은 행복들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은 내가 보지 못했던 삶의 태도를 알게 하는 책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책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루를 기록한 책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책은 몰랐던 것을 보게 하고, 알고 있었던 것도 일깨워준다. 사람은 책의 구절을 음미하고, 좋은 책은 삶을 음미하게 한다. 이것이 지혜 씨가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이자 행복이다.

간단한 <사적인 서점> 이용법

  • STEP 1

    사적인 서점 홈페이지(www.sajeokinbookshop.com)에서 책 처방 프로그램을 예약한다.

    step 1
  • STEP 2

    서점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여러 책 중
    읽고 싶은 책 3권을 고른다.

    step 2
  • STEP 3

    주인장과 대화를 나눈다.
    대화 중엔 나만의 ‘독서 차트’가 작성된다.
    사진: 사적인 서점 홈페이지

    step 3
  • STEP 4

    약 열흘 뒤 처방책이 배송된다.
    주인장이 첨부해준 복용법을 참고해 책을 음미한다.

    step 4

<사적인 서점>으로 걸어가기

Address 서울 마포구 서강로9길 60 4층
Tel 사적인 서점 사이트(www.sajeokinbookshop.com)
Time 매일 13:00~22:00 (예약제), 토요일 13:00~20:00 (오픈데이)
LG Social Challenger 15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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