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홍 l 한계를 셈하지 않고, 정면돌파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사나이도 아닌 ‘싸나이’라 걸쭉하게 부르고 싶은 불혹의 남자. 몸에 박은 철심만 열두 개에다가 온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끝에 그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스포츠도 꽤 많더라”라고 했다. 일평생 멈추지 않을 듯한 그 뜀박질의 결의에, 고작 뛰기만 하는 20대의 심장이 부끄럽게 저릿했다.

밟으면 더 악착같이, 젊음의 까칠함으로

태권도장 사부가 열정에 탄복해 공짜로 가르침을 선사할 만큼, 정두홍은 꼬마 시절부터 이미 무인의 싹이었다. 그러나 머리도 채 다 크기 전에 앞길이 정해지는 다른 체육인들과 달리 그의 앞날은 체대를 졸업하던 그 순간까지 여전히 미정이었다. 그를 표류하게 만든 것은 ‘메이저’로 살고 싶다는 다짐 때문이었고, 뿌듯한 성취감과 포만감을 안겨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어릴 적부터 해 왔던 태권도를 그만둔 이유도 ‘국가대표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경호원도 잠깐 했지만 대통령 경호원이 아니라서 종국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방황하던 그때 한 선배가 “스턴트 해볼래?” 물어 왔다.

인터넷도, 액션 스쿨도 없던 시절이라 처음엔 스턴트가 뭔지도 몰랐어요. 다만, 이소룡을 보면서 액션배우를 꿈꾼 적은 있었죠. TV나 영화를 보다가도 싸움하는 장면을 보면 넋 놓고 흉내 내고 그랬거든요. 처음에 스턴트를 하러 촬영장에 갔을 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아, 이렇게 막내부터 시작해서 주인공 배우가 되는 건가 보다.’했어요. 근데 막상 일하면서 깨달은 건 스턴트랑 액션 배우는 아예 갈라진 길이었다는 사실이었죠.

그가 실제 자신의 모습과 흡사한 스턴트맨 겸 감독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나오는 이들마다 스턴트맨을 ‘야, 엑스트라!’라 불렀다. 이것이 TV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좋으련만 실제로도 스턴트맨은 지극히 마이너리티의 세계였다. 촬영장의 비주류 딱지를 단 스턴트맨으로 살며, 그는 천시받는 순간도 설움을 억눌러야 하는 순간도 수없이 겪었다.

그런 대접이 너무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제 양자 간에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죠. 여기서 그만두느냐 계속하느냐? 고민하다가 계속하는 걸로 정했어요. 나한테 설움을 준 사람들한테 반드시 뭔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왜, 굼벵이도 밟히면 꿈틀하게 되잖아요. 다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죠. 그땐 정말 사방이 사면초가 같았고 늘 전시 상태였어요.

여차하면 목숨도 버릴 각오 덕택에 그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열심히 했으면 사람도 호인 같아 보이고 좋을 텐데‘ 하며 멋쩍게 웃어 보이는 그였지만, 그의 깊은 눈웃음은 이 이야기 끝이라 한층 더 멋졌다. 그의 눈가에 묻은 여유는 격전의 20대가 남긴 빛나는 전리품이었다.

안주하는 순간 인생은 암전이다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던 그가 무술감독 직무를 처음 맡은 것은 스물일곱, 어린 나이였다. 스턴트를 시작할 때도 그러했듯이, 무술감독 또한 처음엔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몰랐다.

무술감독은 그냥 ‘선배님, 형님들’이었어요. 가만히 지켜보니까 감독이란 게 참 편해 보이는 거예요. 말로만 하고 별로 일은 안 하고•••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 ‘에이, 무술감독이나 해야 하겠다!’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무술감독을 하게 되면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펼쳐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막상 무술 감독이 되고 나니까 더 답답하더라고요. 감독하고도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하고, 작품에 맞는 것을 찾아내려다 보니까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크단 걸 깨닫게 됐죠.


한 파트를 전담해 결과물을 일궈내야 하는 무술감독의 역할이 그에게 제공한 건 ‘책임감’이었다. 책임자다운 연륜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남들이 평생 머무르고 싶어하는 꽃다운 나이에 ‘얼른 나이를 먹었으면’하고 바라보기도 했다. 그토록 어려운 과제였음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덩달아 감독이 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대역을 뛰고 스턴트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그에게 좀 더 편하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없었을까. 그도 사람인데, 더 배부르고 등 따신 현실 쪽에 안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역시 ‘정두홍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안주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할 것 같아요. 저도 사실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에요. 그런데 내가 이 삶을 정말 게으르게만 산다면 나중에 남을 게 하나도 없지 않겠어요?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요. 움직이지 않으면 퇴화하니까요. 운동 안 하면 근육 굳잖아요. 정체되는 순간, 그건 바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젊음을 온몸으로 누리며 살아가라

그는 나이를 먹는 것에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인물 중 하나다. 떨어지는 체력에 나이 핑계를 대는 게 싫어 프로복싱계에 데뷔했을 정도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저는 타성에 젖는 걸 되게 싫어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나이를 먹으면 보수적이게 되잖아요. 저는 젊은 사람들한테 ‘야, 너도 나이 먹어보면 알아.’ 이런 얘기하는 게 제일 싫어요. 지팡이 짚고 다녀도 운동하고 싶고요. 허리가 꼬부라져도 발차기 한번 해 보고 싶고, 그런 맘이에요. 젊은 친구들의 모든 건방진 부분까지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렇게 젊음의 모든 걸 감싸 안을 자세가 되어 있다는 그가 현재의 20대에 불만이 하나 있다면 ‘생각이 너무 많다.’라는 것. 스턴트를 하러 온 젊은이들마저 두려움이 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구르면 화면은 좀 덜 좋게 나오겠지만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쌩쌩 날아도 모자랄 혈기왕성한 20대에게 들려오는 건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뿐이란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뭐든 두렵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냈을 때 성취감이 배가 되는 법이에요. 스턴트도 ‘이건 정말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했을 때 화면에 멋있게 잡힐 때가 있거든요. 그 희열은 정말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죠.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고 앞으로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싸나이’ 정두홍. 그의 앞에서 ‘망설임’이란 단어는 무색해졌다. 자신의 의지에 단 한 점의 의심조차 없이 확신을 할 수 있는 인생이란 이 얼마나 멋진가. 정두홍의 인생은 정면돌파의 미학을 몸소 말한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한 점 깃털처럼 인정사정없이 뛰어내리는 그 스턴트맨의 전경이 기가 막히듯,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는 젊음이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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