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최근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통번역의 중요성. 영화를 보는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자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강민하 일본어 번역가를 만나 ‘번역가의 일’을 물었다.

하루에도 수천명의 발걸음이 향하는 영화관. 러닝타임이 끝난 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시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나 관객들이 떠난 자리, 15분가량 더 이어지는 엔딩크레딧은 한 편의 작품 뒤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증명한다. 그중에도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소중함을 잊어버린 자막 번역가들이 있다. 장면과 함께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 한 줄에는 생각보다 훨씬 큰 노력과 고민이 담겨있다.

CHAPTER 1. 번역가 강민하, 그 필연적 시작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강민하 번역가(이하 KANG) 저는 20년째 일본 영화를 한국어 자막으로 번역하며, 언어로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는 강민하라고 합니다.

Q. 1999년 <우나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300여 편의 일본 영화 자막 번역을 담당해오고 계신데,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시나요?
KANG 요즘에도 번역일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오늘까지도 굉장히 바빴어요. <페이블>이라는 영화의 자막 번역을 맡아서 오늘 새벽 2시 넘어서까지 마감을 하고 왔거든요. 그래도 마감을 한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인터뷰에 왔습니다.

Q. 어떤 계기로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KANG 저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어요. 그때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의 통신원 일을 하면서 영화와 관련된 뉴스들을 한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영화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번역이라는 일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알린다는 점에서 기자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원래 기자를 하고 싶어서 경청하거나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 덕분에 언어와 표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자연스레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것 같습니다.

Q. 특별히 ‘일본어 번역’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KANG 일본어 번역가가 된 데에는 전공도 아니었던 일본어를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던 게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일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듯해요. 이 길은 제가 의도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시작점에 있어서 우연인지 필연이지 알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있어서는 일단 열심히 임했던 것 같아요.

Q. 번역가가 되고자 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번역가가 될 수 있나요?
KANG 글을 쓰는 연습과 적절한 표현을 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아요. 번역이라는 일이 언제 어디서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연습해 둬야해요. 그러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고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번역가는 다양한 일을 하는데, 특히 영상 번역을 하기 위해 도움되는 활동 같은 게 있을까요?
KANG 영상 번역을 하고 싶다면 개인적인 연습 뿐만 아니라 방송사에서 모집하는 자료화면 번역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또 영화제에서 모집하는 자막 자원봉사 혹은 스텝으로 일 해보는 것도 추천하고요. 이렇게 실무를 해보는 것이 누군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번역하는 것보다는 작은 지방의 영화제에서라도 영화를 번역해 본 경험이 있으면 훨씬 설득력이 있겠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 실전 연습을 해 볼 수 있는 곳을 계속 찾아보는 노력과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번역가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작업 과정이나 그 이외의 것들이 많이 노출되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작업의 시작부터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나요?
KANG 영화사에서 번역 의뢰가 오면 먼저 영화를 쭉 보고 어떤 영화인지 파악하죠. 제가 번역을 하는데 특별히 큰 문제가 없다면 합의를 진행하고 대본을 받아봅니다. 예전에는 비디오테이프와 종이 대본을 받고 완성본을 팩스로 보냈었는데, 지금은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자막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영상에 자막을 얹고, 그 이후에는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수정해요. 그 과정에서 전문 용어나 익숙하지 않은 말들은 따로 조사하거나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등의 공부 과정이 필요하기도 해요. 그렇게 납품을 하면 영화사에서 자막을 영상에 올려서 다시 보내주는데, 영상을 최종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면 최종으로 스크린에 올라가게 되는 거죠.

Q. 번역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KANG 실무로서 번역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노력과 공부와 반성과 실수와 또 그것에 대한 극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습득한 언어는 그 언어를 공부해온 기간만큼 보다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번역도 마찬가지로 혼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수많은 책을 거쳐 오기도 해요. 공부하고, 되돌아보고, 어떤 영화인지, 감독님은 어떤 분인지, 영화에 나오는 용어가 어떤 용어인지, 이러한 공부와 조사가 이 길에 연속적으로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Q. 번역가의 성향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하나요?
KANG 사람들이 모두 실력과 생각과 스타일이 다르듯, 같은 자료를 받아도 각자 다른 결과물을 내기 마련이에요. 단순한 공부만으로도 일본어를 어떻게든 한국어로 바꿀 수는 있지만,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본어를 잘하는 것보다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지, 언어의 기본이 잘되어 있는지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많은 사람이 번역이라는 것은 언어와 언어를 교환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강민하 번역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요?
KANG ‘누군가의 마음에 무언가를 넣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언어의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면 영화의 내용이 온전하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잖아요. 하지만 번역을 통해 그 언어를 한국어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그 콘텐츠가 상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번역은 단순히 영화 속의 말을 관객들의 머리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막 작업을 하는 강민하 번역가. ‘영화에 맞는 번역을 하자!’가 그만의 번역 철칙이다.

CHAPTER 2. 매일 언어와의 고군분투

Q. 언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KANG 모든 언어에는 다른 언어로는 바꿀 수 없는 단어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는 욕이 다채롭지만, 일본에서는 욕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을 하면 밋밋한 표현이 돼요. 이렇게 언어를 다채롭게 바꿀 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전통문화를 지칭하는 일본어는 한국어에 없는 경우가 많아요.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런 언어가 많았어요. 물론 일본어 그대로 쓰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가능하면 지양하려는 편이에요. 그래서 최대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주되, 짧게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단순히 언어를 넘어서서 서로 다른 문화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Q. 가장 번역이 어려웠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KANG 번역은 항상 어려운 작업이에요. 다만 작품의 장르적 특성이나 제 언어적 성향과 감성 등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작업이기도 하죠. 작품을 선택하기 어려웠지만,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공각기동대>는 SF용어가 많아서 번역할 때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일본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이라는 기본 철칙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 작품이 특히나 번역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Q. <공각기동대>라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요, 한국판 번역을 담당하셨다니 새삼 반갑습니다. 최근 작품 중에도 예가 있을까요?
KANG 비교적 최근 작업 중에서 힘들었던 작품으로는 <너의 이름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쿠치카미자케噛み’(씹어서 만든 술)’나 ‘무스비び(맺음, 이음, 매듭)’ 등처럼 한국어로 전달하기 난해한 용어도 많았고, ‘카타와레도키かたわれ(황혼, 해질 녘)’처럼 특별하고도 중요한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요. 일어 발음 그대로를 살리고 싶을 때는 자막 속에 짧은 설명을 녹여 넣는 일도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 보니 정답은 ‘지금 번역하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머릿속에는 현재 번역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고민뿐이니까요(웃음).

Q. 번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강민하 번역가님의 철칙이 있다면요?KANG첫 번째는 ‘영화에 맞는 번역을 하자’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어떤 영화이든 간에 저만의 문장 번역 스타일을 고집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저만의 스타일보다는 해당 영화에 맞는 스타일의 자막을 쓰려고 해요.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도 다르고 원작자도 다르고, 각본가도 다른데, 번역한 사람이 같다고 문장이 유사하면 안 되잖아요.
두 번째는 ‘자막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2시간 기준의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자막 개수는 700개에서 많은 경우는 2,000개 정도예요. 우리 눈이 영상과 자막 사이를 천 번 넘게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죠. 그러다 보니 자막이 지나치게 길면 자막을 보느라 영상을 놓치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영화 자체를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길이의 자막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도 지양합니다. 자막을 1, 2초 만에 읽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는데 이러한 단어 때문에 영상을 보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번역일을 하시면서 했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인가요?
KANG 어렵고도 아픈 질문이네요. 하나를 꼽아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20대에 번역일을 시작해서 4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여러 편의 영화들을 번역해오면서 실수도, 실패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20대부터 큰 작품을 맡다 보니 때로는 의욕이 넘쳐서 표현을 과하게 번역할 때도 있었고, 관객의 피드백이나 홍보에 쓰일 문장을 의식한 적도 있었어요. 언어 표현도, 감성도, 해석도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다르게 번역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번역을 할 때마다 사전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관객이 어떻게 볼지, 이 번역이 작품에 잘 스며들었는지에 대해 자막을 납품하는 순간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에 완전히 차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 괴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CHAPTER 3. 번역의 기초는 체력 다지기

Q. 번역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KANG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번역은 누군가의 마음에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라고 믿어요. 비록 제가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중간 과정에 참여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특히 관람객 분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때, 자막을 보고 피드백을 줄 때도 이 일에 매력을 느끼는데요, 저는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번역의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Q. 번역가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KANG 음… 아무래도 소중한 작품들을 맡겨 주시는 영화사들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말하고 나니 사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멈추지 않고 노력하고 공부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번역일을 할 수 있는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끝으로 제 인생의 모토인 ‘열심히 즐겁게 살기’를 따라오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일을 해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Q. 미래의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KANG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연습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체력을 기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화나 책을 번역하는 것이 정말 방대한 작업이거든요. 영화 러닝타임의 십 분을 번역하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려요. 번역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수 없이 보고, 수많은 판단을 거치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돼요. 그 때문에 체력은 정말 중요하죠!(웃음)


<날씨의 아이> 개봉 기념 무대인사 현장에서도 통역을 담당한 강민하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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