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뜨겁디 뜨거운 열정의 꽃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그녀와의 인터뷰는 예정일보다 한참 늦은 후에 성사되었다. 작년에 시작한 ‘이은미 데뷔 20주년 콘서트’가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 해외 공연까지 진행하면서 나빠진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병원 신세까지 진 그녀를 보자마자 지금의 건강상태부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대신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뮤지션과 프로의 의미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직업이 되면, 그 직업에 대한 애정도에 대한 판단보다 책임감을 더 우선시하게 돼요. 특히 저는 프로음악가니까, 무조건 아프면 안 되고 무대에 나서기 전에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죠. 그건 무조건이에요.(웃음) 변명이 소용없는 곳이 무대이거든요.

프로이기 때문에 몸 상태까지도 컨트롤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 갓 성인의 길에 입문한 20대에게 찌르는 따끔한 바늘과 같은 이야기다. 요즘 누구나 화려한 무대 위의 삶을 꿈꾸지만, 그 어느 인생이든 치열하다. 손으로 뜨면 삶이 들릴 것 같지만 삶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거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다.

20대, 인연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강한 집념과 열정을 가진 그녀는 우리나라에선 단연 손꼽히는 가수다. 이은미가 지금의 ‘맨발의 디바’가 되기까지는 남다른 재능과 더불어 인연을 무시할 수 없다. 중학교 때부터 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몸이 좋지 않아 재수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뮤지션으로서 그녀의 길을 열어준 황금 열쇠였다.

우연히 라이브 카페를 갔는데, 그때 만난 선후배들과 친해졌어요. 수다도 떨고 밤에는 서로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죠. 당시 한 선배가 제가 부른 노래를 듣고는 ‘너 보컬로서 재능이 있다.’ 라고 하셨어요. 난 그때 이 선배가 나한테 작업 걸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진짜 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선배가 2년을 따라다니며 얘기하더라고요.

그녀는 ‘너 진짜 재능 있다니까. 이걸로 연습해.’ 하면서 그녀의 손에 앨범 한 장을 쥐여준 선배를 따라 이대와 신촌 로터리 길에 자리한 허름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했다. 선배의 기타에 맞춰 카페 안에 울려 퍼지던 그녀의 목소리는 손님의 수다를 일시에 멈추게 하다가 기어이 기립 박수까지 얻었다. 곧 이은미란 이름은 입소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20대의 인연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녀에게 사람은 운이었고, 삶의 버팀목이었다.

그때는 정말 기어들어가고 나오는 허름한 곳에 음악가들이 많이 모였었어요. 한동준 씨, 박학기 씨, 김광섭 씨, 김현철 씨, 이문세 씨, 강산에 씨••• 뭐 많죠.(웃음) 들국화, 신촌블루스도 있었어요. 무명가수들까지 합하면 셀 수 없죠. 그때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라고 불렸던 이중산 씨가 엄인호 씨한테 ‘야, 신촌에 괴물 같은 애가 하나 나왔어.’라고 했대요.(웃음)

어려울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미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두려웠을 법도 한데 그녀는 완강히 부인했다. 그 무엇보다 본인의 위대한 자산은 자신감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자신감이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스펙’이라는 듯.

정말 춥고 배고팠던 그때 제 별명이 공포의 지갑이었어요.(웃음) 테이블 위에 지갑을 거꾸로 탁 뒤집어 털었거든요. 집에 갈 차비만 빼놓고 다른 친구들의 지갑도 털어 모은 돈으로 밥을 먹거나 소주 한잔하고 그랬죠. 어렵긴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어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내가 세상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자신감, 내 음악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으니까.(웃음)

신촌블루스의 객원 보컬이 되면서 터닝 포인트를 맞은 그녀는 프로 가수로서 많이 느끼고 몸소 배웠다. 그저 어영부영 음악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 후 그녀는 3년 만에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선배의 도움으로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15여 군데의 음반기획사에 데모테이프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래도 그녀에겐 자신감은 살아 있었다.

선배가 제게 ‘음악가가 음반을 낸다는 것은 네가 지금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지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네 자신을 들여다봐라. 그래야 네가 지금 잘할 수 있는 것, 혹은 부족한 것,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겠느냐, 그것이 음반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소리를 들으니까 머리에 뭔가 쾅! 부딪히는 것 같았죠.(웃음)

어찌 보면 자신감이 안내한 운명의 탄탄대로를 걸은 듯하지만, 그녀에게도 프로 세계에 입문한 뒤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배신과 비합리적인 구조 등 스스로 음악을 놓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작년에 데뷔 20주년이 됐을 때 생각해봤어요. 실제로 음악을 안 했던 시간도 있었거든요. 그런 큰 고비들을 무사히 잘 넘겼고 그리고 다시 돌아왔어요. 많은 분들이 제 음악을 믿어 주셨던 덕에 ‘아, 나는 음악을 하는 게 운명인가보다’라고 생각했죠. 자신감이 있고 주위에 좋은 인연들이 있으면 어렵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어요.

직접 말하고 치열하게 부딪치며 서로 감응하라
그녀가 20대를 보면서 아쉬운 건 오로지 기계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다. 친구와 함께 카페를 와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부모님께도 문자로 통보하는 것을 볼 때 무섭다고 했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을 즐기는 모든 세대는 그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에요. 풍요로운 정보만을 줄 뿐이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아닌데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나이엔 알지 못할 거예요.(웃음)

또 하나, 그녀가 우려하는 것은 본인을 자극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20대다. 무감해지는 것은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곳인데, 자기 생각만 하게 되면 세상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라는 것.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둘 때 인간답고 풍요로운 삶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공연장에 커플이 오잖아요. 아무리 여자친구가 좋아서 온 공연이라도 남자친구도 함께 즐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감흥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어요. 이게 20대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답게 사는 법과 사람의 가치는 알았으면 해요. 실제로 사람과 접촉해서는 보여주지 않고, 미니홈피 같은 온라인상의 공간만을 통해 보여주고, 또 보려는 건 변태적인 관음증이에요. 이건 기술의 발전 문제가 아니에요. 인간적인 것은 결국 30대, 그리고 그 이상의 나이가 됐을 때 풍요를 느끼게 하는 거거든요.

그녀는 조바심이 나듯 20대에게 열정을 가지고 더 맹목적으로 치열하게 부딪치라고도 조언했다. 더불어 관심 없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신촌블루스가 그녀에겐 첫사랑이었고, 그녀가 20대에 했던 사랑은 ‘별 거’ 없지만 그건 그때만 할 수 있던 사랑이었다.

그때의 나이에서 두 배를 살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두서없고 맹목적이고 저돌적이고 뭐든 휙 한방에, 한 큐에!(웃음) 그리고 운동이든 섹스든 노동이든 뭐든 직접 몸을 써 봐야 해요. 본인의 육체적인 한계와 그 때문에 오는 정신적인 고단함도 느껴볼 필요가 있고요. 이건 결국 본인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봉착할 때 해결하는 힘을 주거든요. 그러면 적어도 내가 어디 가서 이 일이라도 하면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겠어요? 이런 일조차 해보지 않으면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돼요.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면 가수를 하지 않고 금속공예나 특수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음악과 아직 완전한 친구가 되지 않았다며 미소 짓는 그녀. 사람을 사람답게, 음악을 음악 그대로 대하는 그녀의 진정성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마치 고장난 테이프처럼 그녀의 주옥같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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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미씨의 글에서 깊은 도전정신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요즘 20대는 80년대의 나라를 지키던 그 20대의 정신과는 다르게 참 자신의 몸을 사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 물론 나라를 지키라는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까지 사리게 되는 것 말이죠... 하지만 열정적이게 된다는 것과 도전해본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 같습니다.
  • 으헣

    왠지 세상과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 드네요 ~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방식이 맞는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
  • 박보람

    이야기 하는 내내, 정말 그 자신감만큼은 닮고 싶었답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는 자신감밖에 없는 것 같아요. 타고난 '끼'도 무척 부러웠구요. ㅎㅎ
  • 주전자안의녹차

    사진에서 포스가 딱 느껴집니다~!
  • salcho

    정말 멋있는 거 같네요!!
  • 전경미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멋지고 부럽고 울렁울렁하네요
  • 이주현

    멋있는 그녀,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그 깊은 사랑을 간직해주길!
  • 조세퐁

    도구를 도구로써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 공감가는 부분이네요. 심플의 극치를 보여주시는 사인도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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