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봄으로 가는 흐름의 미학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기자의 고등학생 시절, 학교로 향하는 길목에 그의 집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개집에서 잔다고도 했고, 감옥 철창을 달고 두문불출한다고 수군댔다. 누구는 괴짜라 불렀고, 더러는 거지라고 치부됐던 작가 이외수. 그런데 지금, 트위터를 즐기고 미디어와 친숙한 그의 행보는 과거의 괴상한 소문과 조금도 맞물리지 않았다. 지도에도 없는 깊은 산 속으로 향하는 길, 이전의 그에 대한 기억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거실로 내디딘 두 발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이전의 인터뷰 선약 때문에 주변은 어수선했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겁을 두어 번 먹은 후에야 하늘색 셔츠에 분홍 넥타이를 맨 노인이 나타났고, ‘이외수다!’ 하는 순간에는 이미 악수를 청하는 그의 작은 손이 보였다.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잘 마른 햇빛만큼이나 따사로운 그의 손은. 혼란도 선입견도 모두 내어버린 순간이었으며 그제야 진짜 이외수를 기억할 백지가 보였다. 한참을 기다리고, 어둠의 자락이 들여진 후에야 인터뷰는 시작됐다. 그의 20대를 물었더니 이내 습관처럼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문을 연다. 고배를 마신 그의 인생은 L세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바이블처럼 풀어냈다.
‘존버정신’, 아직도 모르는가

그 당시엔 라면 한 개로 일주일을 버텼어요. 면을 4등분 해서 나흘 동안 끼니를 대신하고, 수프를 물에 탄 다음 3등분 해서 3일을 버티며 처절하게 지냈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입니다.”로 시작된 그의 20대는 지독한 가난 그 자체였다.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부모님은 자립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한 뒤 돈을 벌어 한 학기를 다시 등록하는 삶이 반복됐다. 그렇게 7년간 학교에 다니다 보니, 어느새 생활은 저만치 사라지고 생존만 남아 있었다. 연애한다는 것조차 사치라 여겨졌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성을 만나도 ‘다방’에 갈 돈이 없어서 하릴없이 몇 바퀴 산책만 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에게 20대란 가장 힘들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자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로 남았다.

춘천 거지’라는 별명도 그 시절에 붙여졌지요. 한때 DJ를 하던 가게가 망해서 당장 먹을 것조차 없는 상황이 왔어요. 그래서, 그 가게 앞에 자리 잡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20원만 꾸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시 20원이면 감자 4알을 살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감자로 며칠을 버티다 또 거리에 나와서 20원을 꾸어 번데기를 사 먹고, 그렇게 4년을 연명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웬만한 춘천 사람들은 ‘내가 그 시절 이외수를 먹여 살렸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하곤 하지요.

그는 이토록 힘든 20대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대답은 실로 명쾌했다. “조낸 버텨라!” 자신의 지난 시절을 회상하던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조낸 버틸 줄 아는’, 이른바 ‘존버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은 입맛 따라 고를 수 없는 문제이거늘, 요즘 청춘은 편하고 좋고 상처받지 않는 것만을 하다 보니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무너진다며 안타까워했다. 당장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와도, 근성으로 버티다 보면 언젠가 힘든 시기도 지나가기 마련이라고 전심을 다해 열변했다. 본인이 그러했듯이.

성공을 준비하라,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서두르지 마세요. 20대는 성공을 하는 나이가 아니라 성공을 준비하는 나이입니다.

사실 그의 꿈은 작가가 아니었다. 청춘의 시작은 엉뚱하게도 춘천교육대학교였고, 그의 꿈은 작가도 선생님도 아닌 화가였다. 가난과 싸우느라 휴학이 익숙했고 술에 찌들어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생계를 위해 글을 썼다가 등단하게 된다. 시작은 우연일지언정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사투는 계속되었으며, 3년 후 중편소설 <훈장>으로 신인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20대는 가난으로 처절했던 순간인 동시에,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매진해 행복이란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아니라면 20대에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그저 그 나이에는 앞으로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만한 직업이나 목표를 찾아내기만 해도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겨우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성공인 듯 여겨서 안타까울 뿐이죠. 수십 년을 열심히 공부해서 기껏 이룬다는 꿈이 오로지 회사원이라면, 공부한 세월도 한 번뿐인 인생도 아깝지 않을까요?

 
습관처럼 책을 가까이하기

젊은 시절, 그는 매일 습관처럼 서점을 찾았다. 그리고는 온종일 서점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는 바람에, 급기야는 점원이 그를 위해 자리 한 켠을 내어주었을 정도였다. ‘책 좀 읽어라.’는 서두를 꺼낸 그는 대학생이라 하면 자고로 술집보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지 않냐며 반문했다. 또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보다는 소설이나 시 같은 창작물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자기계발서는 순간의 위로는 될지 몰라도 인성의 깊이나 감성의 고양을 경험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씀.

창작물을 많이 읽으세요. 요즘 젊은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지 몰라도 정서는 빈곤해요. 시나 소설은 현실적으로 살아볼 수 없는 인생을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해 봄으로써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 편식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읽으세요. 간혹 한국 소설은 읽을 게 없고 외국 소설이 깊이 있다는 등 지적 허영심이 가득 찬 경우도 있는데,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단편소설만 섭렵해보면 자신의 시야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소통이 없으면 인생이 곤하다

한 때 세상과 담을 쌓고 기이한 행동을 일삼았던 괴짜 예술가는 이제 트위터 2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소통의 대가로 통한다. 과거의 행위가 다소 불편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면, 빅뱅의 옷을 입고 화보를 찍는 요즘의 활동은 주변인들도 즐거워지는 유쾌한 괴짜의 모습이다. 술에 찌들고 고집스러운 집필환경이 단절시킨 세상과의 끈을 다시금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가족이었다. 가족에서부터 시작한 교감과 소통은 현재 수십, 수백만의 독자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죠. 한집안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강해졌다고 할까. 무엇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알코올중독도 극복하게 되었답니다.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려면 여러 방면에서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술에 찌들어 있으면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되거든요.

지구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우주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물론 사람들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인생 전체가 봄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이외수, <아불류 시불류> 中

자그마한 찻잔이 여러 번 채워졌다가 비워졌고, 한참 늦은 저녁상이 내어지면서 인터뷰는 끝을 맺었다. 차 한 모금 흘려 넘기듯, 담담하게 발음된 굴곡진 과거들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 버렸다. 지독한 가난과 특유의 괴벽. 고독한 겨울 속에 청춘을 보냈던 그는 지금 온화하고 따사로운 봄의 가운데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본인의 인생이 봄이기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고초를 겪고 난 뒤 자연스레 온 봄. 바로 ‘흐름’의 인생이다.

‘기사 작성’을 목적으로 한 보통의 인터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후 1시 반에 이외수 작가의 감성 마을에 도착한 기자와 포토그래퍼는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캄캄한 첩첩산중을 해적처럼 헤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노고, 그리고 주옥같지만 미처 풀지 못한 작가의 뒷이야기가 못내 아쉬워 <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편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너무 사적이어서 조금은 민감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대화의 현장, 기대해주세요. – 편집자 주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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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가 아름답네요:)
  • kimee

    트위터로 항상 만나뵙고 있습니다~
  • N

    좋다.
    글도 좋고 사진도 좋고 이외수선생님의 이야기도 좋고
    잘 보고 갑니다~
  • N

    이외수님 한마디에 회원가입하게 되네요~
    20대 분이 취재가셔서, 20대가 성공을 준비하는 단계라 말씀하셨지만,
    분명 이외수님은 인생 자체를 성공을 준비하는 단계로 생각하고 계실거예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전경미

    강원도의 힘!...이랄까요ㅎ 하루 종일을 그 곳에 있다보니 감성마을도 둘러보고, 다른 인터뷰도 구경하고, 오랫동안 좋은말씀도 들은데다 저녁 대접까지 받은 잊지못할 하루였답니다
    이외수님 말씀처럼 저도 방학동안 가리지 않고 책 좀 읽어보려구요!
  • N

    헐... 전경미 기자 ... 정말 대단하군요..
    섭외능력이 정말 우수한듯...
    3달에 걸쳐.. 시도 했으나..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하셨던.. 이외수 선생님을.. 단번에 이렇게 섭외해내다니요~ 정말 대단합니다!!
  • 야구박사신박사

    전경미기자 너무 부럽습니다~
  • 으헣

    저도 못다한 이야기 편이 기대가 되네요 ㅎㅎ
    진짜 소탈하신듯 !
  • 조세퐁

    반나절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해서 과연 어떤 대담을 나누었길래 그리도 오래걸렸을까 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wow
    요즘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는데,
    기사를 보고 나니 갑자기 독서에 대한 폭풍욕구가 솟구치네요!
  • 평소에 트위터로 이외수 선생님과 소통했었는데요.
    20대는 성공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말이 인상깊군요 ~
    <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편이 무척 기대되네요~ㅎㅎ
  • 한종혁

    20대는 성공을 이루는 시기가 아닌 성공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회사원을 꿈꾸는 사람들을 아쉬워한다는 말에 가슴이 찔리기도 합니다.
    시나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시는 정서가 요즘 아이들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에 100% 동감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 열심히 살고 싶어 지네요 ^^

    아직 못 다한 이야기에 트위터 전에 이미 DC 인사이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이외수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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