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

포토그래퍼 _ 고영관(phos studio)

이외수 작가의 집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와 풀이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두 갈래의 길. 그 순간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렸고, 반듯한 길 대신 어느 모양새인지 가늠할 길 없는 오솔길을 밟았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자갈, 코 끝을 스치는 나무 냄새, 그리고 속삭이듯 흐르는 개울••• 그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비석 위의 글은 마치 한 권의 책을 보듯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속계와 선계의 중간쯤이라는 감성마을에서 보냈던 기묘한 하루가.

“선생님께서 잠깐 부르시는데요.”
앞서 예정되었던 다른 팀의 촬영은 기약 없이 늦어졌고, 그 때문에 주변의 풍경이 고향 집처럼 익숙해졌을 즈음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았다. 자리 한 켠을 내어 받은 곳은 바로 이외수 작가와 정태련 화백, 그리고 인디밴드 갤러시 익스프레스의 촬영 현장. 그곳에서 취재는커녕 구경꾼으로서의 지지부진한 기다림이 지속되었고, 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천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기다린 대신 마음껏 질문하라.’라는 작가의 호탕한 넉살과 더불어 저녁을 함께 나누는 행운까지 함께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저••• 하루에 컴퓨터는 얼마나 하세요?”
따끈한 쌀밥과 된장국. 갖가지 반찬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저녁상을 마주한 자리. 사실은 제일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을 그제야 꺼내본다. “글쎄, 한 여덟 시간 정도?”라는 대답에 입이 떡 벌어졌는데, 웃음을 참는 주변의 반응이 어쩐지 미덥잖다. 귀띔하자면 사실 “시간 날 때, 거의 하루 종일”이라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죠. 보통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시간 반, 내 멋대로 생활하는 시간 반 정도로 하루를 쪼개 생활합니다. 또 ‘주침야활’이 몸에 배어 있어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해요. 새벽 2시쯤 기상해서 6시쯤부터는 사람들을 만나고, 후에는 집필활동에 들어갑니다. 취침은 뭐, 지쳐 쓰러질 때가 타이밍이죠.

이런 걸 물어도 될까 하는 생각에 한결 유해진 분위기 속에서도 네댓 번을 삼켰다가 어렵게 꺼낸 질문이 있다. 언젠가 이슈가 되었던 그의 대마초 사건. 한참을 머뭇거린 다음에야 화두를 꺼냈다. 20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건 더 나이 먹어서였지.”라고 말문을 열었고, 그 시절의 고집스러운 집필습관부터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어요. 엎드려서 원고지 한 장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집필했지요. 점점 앞에 원고지가 쌓일 때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글을 썼는데, 마음에 들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계속 엎드려서 글을 쓰다 보니 일어설 수조차 없을 정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글을 쓰기 위해서 임시방편이자 통증완화책으로 대마를 피우게 되었죠. 그러나 일시적인 진통 효과뿐이어서 시는 쓸 수 있어도 소설은 쓸 수 없었어요.

최근의 그와 트위터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찰떡궁합이다. 책 <아불류 시불류>만 해도 그가 트위터에 아로새긴 2천여 개의 글 중 호응이 좋았던 3백23개의 꼭지를 모아 출간된 것. 두문불출하던 과거와는 달리 언제부턴가 거침없는 입담과 특유의 재치로 온라인을 섭렵하더니 이제는 수십만의 팔로워들과 수시로 소통한다. 극과 극을 달리는 행보,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예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CF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웃음) 유명해진 만큼 불러주는 데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CF를 많이 찍는 만큼 기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지난번에는 트위터를 통해 치킨 기부 이벤트를 하기도 했고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버는 만큼 주변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트위터 20만 팔로워를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적어도 이 팔로워를 통해서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거죠. 이 자리를 빌려 말하건대 김주하 아나운서 사건처럼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맞팔’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다고 상대를 비하하는 행동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뜻이 통해야 소통이지 말이 통한다고 소통은 아닌 법이죠.

스마트폰도 아닌, 오로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왕성한 트위터 활동을 할 만큼 사람 냄새를 좇는 그에게 주변인들은 최고의 소재이자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그가 보통 시나 에세이를 쓸 때는 자연의 모습에서 시상을 얻는 편이지만, 소설은 사람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한 사람이 있는 한, 그의 글은 계속될 것이다.

모두가 물러난 저녁상 자리. 꼬리 끝이 꺾여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는 고양이 ‘꺽꼬’가 남아 있던 생선을 차지하고 앉은 한갓진 시간, 문득 그의 꿈이 궁금해진다. 신나는 일이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도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빅뱅에 이어 2PM에 도전하지는 않을까? 또 다른 시트콤에 출연하지는 않을까? 기대감에 벅차 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보다 더 큰 그림이었다.

무엇보다 이곳, 감성마을을 세계적인 예술체험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을 말이에요.

종잡을 수 없는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작업실을 보고 싶다는 요청에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갔더니 노래방 기계를 켜고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종종 손님이 찾아오면 마이크를 잡는다는 소문을 확인하던 순간이다. 갑작스런 행동에 ‘역시 이외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중후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상상 이상이라 귀가 즐거웠다. 이어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말없이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터뷰는 ‘끝!’이라는 명쾌함 없이 ‘안녕히 계세요.’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천둥번개 치던 빗길을 뚫고 돌아오는 내내 그날을 되새김질했다. 취재였는지, 여행이었는지 혹은 꿈이었는지 그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서울로 돌아가는 이 마음이 이토록 가볍고 따스한 것을.

그리고 만난 또 한 사람의 리더.
“이쪽은 엘리트야 엘리트. 나는 자퇴인데 서울대까지 나오고.”
이외수 작가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리킨 이는 다름 아닌 정태련 화백이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하악하악>, <청춘불패>, <아불류 시불류>에서 함께 작업하며 따뜻한 그림을 선보였던 세밀화가가 바로 그다. 오랜 친구 사이답게 아니 가족이라도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그는 작가의 집 구석구석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직접 요리했다는 참치전 역시 일품이었다. 인터뷰와 저녁식사가 모두 끝난 까마득한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에게 염치 불고하고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짜증이 날 법한 상황에서 그는 나른한 얼굴을 보이는 것도 잠시, 꽃 한 송이를 멋들어지게 그려나갔다.
정태련이 청춘에 전하는 한 마디.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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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부럽습니다!!!!! 저도 이외수 선생님 뵙고 싶었는데.. 저했을때는 실 패 했는데.... 전경미 기자님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느끼고 오셨을 것 같네요~
  • 키맹

    정태련 화백님도 만나봐주세요~ 하고 떼쓰면 안되나요?ㅎㅎㅎ
  • 야구박사신박사

    정말이지 부럽단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군여...ㅎㅎ
  • 으헣

    아 진짜 왠지 유쾌해집니다 ! U+ 광고도 생각나구요 ㅎㅎ
    멋진 글, 감사합니다. ^^
  • 천혜진

    부러워요~ 실제로 뵈면 어떨지 궁금해요 ㅋㅋ 마지막에 저 싸인 멋있어요
  • 박보람

    와,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아마도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아시는 분을 봐서 그런가봐요 ^.^ 으히히.
  • 조세퐁

    꽃 위에 해마라. 멋집니다 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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