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예술대학 경비원 | 그림까지 경비합니다

난 그림을 그려. 경기대학교 예술대학의 경비원이지. 어디 한번 나의 이야기를 들어볼래?

*편집자 주 : 그와 면전에서 대화하는 스킨십을 느껴보세요. 이상학 경비원의 모놀로그 속으로 슬그머니, 촉촉이 빠져듭니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열에 공격받았다. 짜증 묻은 자화상 by 이상학.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학교의 종합강의동에서 24시간 근무할 때부터였을 거야. 낮에는 바쁜데, 저녁이 되면 시간이 너무 남아돌더군. 그때 고독 같은 걸 느꼈어. 글을 쓰곤 했는데, 그게 뭐 맘대로 써지나? 그래서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미술엔 관심이 많았거든, 중학교 때부터. 배웠냐고? 아니. 가족들이 다 예술 쪽에 감각은 있었어. 큰 누나는 미술 선생님이었고, 둘째 누나는 글을 써서 전시를 열기도 하고. 큰 형님은 예술 방면으로 유학도 갔다 왔어. 나도 미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어. 나도 명지대 응용미술학과에 합격은 했는데••• 큰 누나가 미대를 다니며 금전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보고 말았지. 입학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했어.
그러다가 IMF가 온 거야. 큰 손실을 봤지. 그래서 한양대 앞에서 ‘한솥 도시락’ 운영을 시작했어. 그때 학생들과는 참 친해졌지. 자취생에게는 반찬도 무료로 주고. 그거 알아? 그 학생들과는 아직도 연락 중이야. 지난 전시에도 방문해주었고. 참 고맙지.


수시로 그를 찾는 학생들. 늘 대화로 이어져 웃음으로 끝맺는다.

경비를 맡게 된 계기는 말이야. 내가 하던 가게를 접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누가 경기대학교 경비 자리를 추천하는 거야. 별생각 없이 갔지. 의외로 면접 경쟁률이 세더라고! 은근히 욕심이 생겨 열심히 면접도 준비하고 결국 합격했지. 그때가 2010년도였어. 벌써 햇수로 8년째 근무 중이네.
학교 종합강의동에서 오래 근무했어. 아침에 문 앞에서 학생들과 인사도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정리하기도 하고. 다들 좀 더 아침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거든. 그게 좋았던지 예대로 옮겼을 때는 종합강의동 교수님들이 다시 와달라고 부탁하더라니까? 경비실에도 한 번씩 들르시고.

그때 교수님이 내 그림을 보셨나 봐. 이거 누가 그린 거냐고 묻더라고. 내가 그렸다고 하니, 전시를 한 번 해보는 게 좋겠다 하더라고. 진짜? 정말이었어. 전시를 열 기회를 만들어주셨지. 그 교수님이 바로 경기대학교 박물관장님이거든. 전시를 준비할 때 정작 난 경비 업무 때문에 전시관엔 자주 못 갔어. 오히려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지. 힘든 일은 없었어. 오히려 그분들께 죄송하고도 고마웠어.


지난해 말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경비와 그림 그리는 일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도 있었지. 한번은 회사에서 근무는 안하고 그림이나 그린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야. 그림을 그만 그릴까, 생각도 했지. 이게 슬럼프가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분의 도움으로 전시를 연 뒤엔 그 이야기가 쑥 들어갔어. 근무에 지장이 없으면 그려도 된다는 거였지. 마음은 아팠지만,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응원으로 달래었어. 사사로운 것에는 신경 끄기로 했지. 해외여행에서 사 온 미술도구를 선물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할만한 미술관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사람도 많아. 미술을 매개로 내 생각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참 든든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야.


(좌)든든한 그의 편이 적힌 전시 방명록. (우)학생들이 손수 쓴 정성 가득 편지까지!
내가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의 속 이야기야.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거지. 사람들이 내 그림을 봤을 때, 외롭고 슬퍼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해줬어. 내가 고독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그림을 그린다고 했잖아? 그런 우울한 감정이 그림에 묻어날 수밖에 없지. 보통 땐 사색을 하다가 손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일화를 그림으로 각색해서 그리기도 하고. 예대 경비를 맡으면서는, 도예과 학생들이 버린 작품들을 가져와서 다시 만들기도 했어.
그림 그릴 때 특별한 도구도 없어. A4 용지를 잘라서 펜이나 색연필로 그리지. 지금 보유한 그림은 60여 작이 되는데, 버린 것과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들까지 합하면 더 많을 거야. 나도 가끔 멋진 도구를 사용하고 싶어서 그림을 배워볼까도 생각했지. 그런데 교수님들이 반대하더라고. 오히려 못 그리게 될 거라고,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까 그걸 지켜야 한다고. 맞는 말 같아. 배우지 않아서 마음대로 내 생각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도예과에서 버린 ‘쓰레기’가 아저씨의 개성 깃든 글씨에 의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전시 작품.
아저씨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 사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 언젠가 한 번은 해봐야겠다는 생각? 호연관 갤러리(학교 예술대학 부속 전시갤러리)에서 전시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열망을, 여러분 덕분에 이루게 되었지. 또 전시를 열라는 제의를 해오는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쓴 글이나 캘리그라피도 전시하고 싶어. 봐봐. 나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시간을 짬짬이 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우리 학생들이 나로 인해 자극을 받으면 좋겠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

LG Social Challenger 150944
LG Social Challenger 김은지 보고 듣고 그려내는 디자이너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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