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루아> 윤정욱 작가ㅣ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것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정의다. 과연 기시감이 주는 환상만 존재하는 걸까. 윤정욱 작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24시간을 내가 온전히 계획하는 생활’이라고 써 내려 갔다.

제주에서 시작된 디지털 노마드의 삶

Q.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카일루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년 반가량 평범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근무지가 광화문이었는데, 대학생 때도 인천에서 신촌까지 통학했던 터라 출퇴근 역시 쉬울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지치고 힘든 일이더라. 그러던 차에 아는 후배가 <카일루아>의 팀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제주도에 쉬러 갔을 때 회사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팀원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내 취미를 살려 사진과 글에 관련된 협업을 진행하다가 이 팀의 일하는 방식과 사람들에 끌려서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옛날부터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화된 직업보다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같은 직업을 막연히 가지고 싶었는데, 그 바람과 <카일루아>라는 회사의 환경이 잘 맞았다. 때마침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연재하던 글이 인기를 얻고 상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붙었던 때였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Q. <카일루아>는 제주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라고 알고 있다. 이곳은 어떤 근무 형태를 가졌는지?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보다는 리모트 근무를 차용한 회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아사나(Asana)나 슬랙(slack) 같은 협업 툴을 이용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출퇴근이 없는 것이 <카일루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 없고 본인이 맡은 콘텐츠만 제작하면 되는 구조다. 디자이너는 서울에 있고, 개발자는 회사가 있는 서귀포시가 아닌 제주시에 있는 등 사는 지역은 제각각 다 다르다. 그래서 <카일루아>에서는 회의도 주로 화상으로 진행된다.


<카일루아> 팀원과 윤정욱 작가, 제주에서 찰칵.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

Q. 브런치에 연재한 글에서 ‘디지털 노마드 = 여행하는 삶’이란 상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환상이라고 말한 건 ‘디지털 노마드로 살면 오늘은 서울, 내일은 파리, 모레는 도쿄 이렇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종종 보여서 했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다닐 수야 있겠지만 일단 돈이 많아야 할 테고, 돈이 그 정도로 많다면 굳이 디지털 노마드가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그렇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노마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모호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아침마다 출근해야 하는 고정된 일터가 없는 사람이다. 흔히 생각하는 여행하는 삶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Q.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때의 일과가 궁금하다. 하루를 사용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지?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특히 아침잠도 많고, 취침하고 기상하는 시간이 워낙 뒤죽박죽이다 보니 더 힘들었다. 그런데 <카일루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침 시간에는 잠을 좀 더 자고, 오전 10시쯤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으면 바로 일터이기 때문에, 딱히 준비할 필요도 없다. 어디선가 봤던 글인데,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가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더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거나 하는 본인만의 의식 말이다. 우리 팀 개발자는 아침에 드립 커피를 한잔 내리면서 잠을 깨고 시작한다고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딱히 정해진 의식 같은 건 없다. 물을 한잔 따라오는 것 정도? 어쨌거나 일반적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생활패턴이기는 하다. 일단 정해진 시간에 꼭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기 때문에 일이 안 된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책을 읽는다거나 딴짓을 하는 식으로 머리를 식힌다. 어차피 맡은 일만 끝마치면 되는 거니까.

Q. 물론 매력이 있겠지만,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삶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무언가 해야 하는 것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초, 중, 고, 대학교에서 직장까지 이어지는 시간 동안 하루를 온전히 내가 계획해서 사용하는 경험이란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24시간의 자유가 주어지면 사람이 자유롭고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나는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카일루아>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이 조금 더 굳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강명 작가가 하듯 엑셀에 오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책상에 앉아있었고, 얼마나 일을 했다는 내용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뜻대로 잘 안되더라. 일단 귀찮아서 엑셀에 자주 안 쓰게 되기도 했지만,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결국은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만의 패턴을 찾게 되는 것 같다.

Q.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시작한 후 겪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번 해 6월에 떠났던 몽골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24시간 전체를 오롯이 나의 결정으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디지털 노마드의 여행은 그렇지 않다. 일단 그곳이 어디든 인터넷이 터져야 하고, 일정하게 업무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몽골여행 중 팀원들과 연락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몽골의 인터넷 사정이 정말 좋지 않아 애를 먹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인터넷이 터질 때 재빨리 파일을 보내는 등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몽골에서의 여행이 일종의 실험? 이기도 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몽골에서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결론 정도를 얻었다고 할까.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Q. 실제로 경험해본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어떻게 달랐는가?

시간이 유동적이고,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의 구분이 굉장히 힘들다는 점? 집이, 혹은 좋아하는 카페가 곧 일터가 되다 보니, 이런 삶이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모르고 시작한다면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정작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여행을 매일같이 다니면서 일을 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활이 나와 맞는지는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Q.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앞서 말한 다양한 것들이 전부 매력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매력은 일이 안 될 때 쉴 수 있고 시간을 집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편한 환경에서 가장 편한 시간대를 골라 일할 수 있다는 점. 이것보다 더 큰 매력이자 장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매력에 이끌려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방식을 생각하는 것 같다.

Q. 직업과 직장, 그리고 근무 형태와 관련된 것은 대학생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느냐.’인 것 같다. 직장 말고 직업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 원론적이고 뻔한 답변이지만, 결국 직장에서 얻는 보람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계속 다른 취미를 찾고 그걸로 제2의 직업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디지털 노마드, 리모트 근무 등은 결국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걸 꿈꾸기보다는, 냉정하게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원치 않는 걸 하면서 단순히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고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생각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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