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주도에서 비건 식당을?

기획 1 비건라이프 in 제주ㅣ왜 제주도에서 비건 식당을?
기획 2 비건라이프 in 제주ㅣ글로벌챌린저 대원들의 제주 탐방기

유명 연예인이 제주도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상이 담긴 예능이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 제주도가 ‘채식하기’에 좋은 곳이구나!’ 과연 제주도는 채식과 비건 라이프를 누리기에 좋은 곳일까? 궁금증을 안고 소채리들이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다. ‘어째서 제주도인가요?’라는 물음에 답을 듣기 위해서!

“제주다운 음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도토리키친>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요리를 선보이는 ‘도토리키친’. 원래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은 아니었다. 그저 ‘제주다운 음식’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제주의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했다. 메밀, 당근, 양배추 등, 그러다 ‘청귤’을 찾았다. 청귤로 소바를 만들었고, 면과 과일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자신감이 붙어 ‘청귤소바’와 어울리는 음식을 찾다 보니, 또 제주의 특산품을 이용하게 됐다. 바로 톳. 톳으로 만든 ‘톳유부초밥’, 제주 당근과 오이를 활용한 ‘소바롤’이 그 결과물이다.


주인의 애정이 곳곳에 스며 있는 공간. 아늑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그저 제주다운 음식을 내놓았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 스님들이 찾아오시기 시작했다. 스님들끼리 오시기도 하고, 사찰의 손님을 모시고 오기도 했다. 그러자 베지테리언 손님들도 오면서 입소문이 났다. 손님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베지테리언과 비건의 차이를 알게 된 주인은 계란을 곁들이는 것 정도는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 선택옵션으로 제공했다.
제주도는 특히 여행객이 많다. 음식 문제로 가족과의 여행에 금이 가지 않도록, 비건식 요청을 ‘기꺼이’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이라면 비건끼리 밥을 먹으러 갈 수 있다. 다만 제주도는 조금 다른 도시가 아닌가. 유당불내증이라 우유를 마시지 못하고 치즈 요리를 잘 먹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하며 그는 손님을 위한 여러 선택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몇 가지 대표 특산물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는 한국산 메밀의 70%를 재배하는 산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양배추 등 예상치 못한 채소들까지 특산물에 속한다. 도토리키친의 주인은 이렇듯 가까이에서 제주만의 식재료로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 말한다.


제주도 톳이 들어간 톳유부초밥과 청귤소바.

“개척해 나가고 싶었어요” <홀리데이시즌>


실제로 동물이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비건으로 사는 주인이 마련한 공간 ‘홀리데이시즌’. 처음 그는 청정자연답게(?) 제주도가 당연히 비건 네트워크 역시 잘 되어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비건을 위한 공간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그가 제주도에서 비건으로 살아보며 느낀 것은 도민보다는 제주 외지에서 온 비건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비건 생활을 꿈꾸며 온 그에겐 당황스러운 현실이었다.


열을 가하지 않은 케이크들(순서대로 블루베리, 단호박, 초코). 무스 케이크와 비슷한 식감을 자랑한다.

평소 그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선보이는 비건 카페를 운영해보자는 생각도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열을 가하지 않고 만드는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를 꾸리고 싶었던 그는 무엇보다도 제주 비건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베이킹 특성상 재료가 까다로운데, 제주는 특히 재료를 공수하기 어려워 재료 하나를 구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홀리데이시즌엔 비건이 아닌 지역 주민들도 종종 들른다. 커피를 사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비건 디저트도 접한다. 그렇게 서서히 제주에 스며들고 있는 홀리데이시즌. 자연이 좋고, 도시의 복잡함이 싫은 여유로움을 원한다면 제주도는 ‘당장 와서 눌러앉기만 하면 될 정도’로 좋다. 다만 비건 생활을 위해 온다면 현실적으로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제주는 이제야 비건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단계다. 서울 같은 대도시가 오히려 비건 생활을 하기에 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척을 각오하고 온 사람들이 많다. 주인 역시 함께 비건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개척자’라면 환영이라고!

“같이 먹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어요” <모녀의 부엌>


제주에 처음 정착한 건 2015년. ‘모녀의 부엌’ 대표는 올해 1월, 비건 옵션의 한식당을 마련했다. 운영한지는 이제 9개월차다. 식당을 열기까지의 그 긴 시간 사이에는 많은 고민과 고통이 스며 있었다. 페스코(해산물을 먹는 베지테리언)인 그는 종종 회사생활 중 회의가 차오르곤 했다. 고기 중심의 회식 문화와 점심시간에 찾기 힘든 비건 식당. 적은 선택지의 음식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차렸다.


제주도 지도 모양의 접시에 담겨 나오는 각종 나물들. 각 지역 내 특산품으로 만들어졌으며, 제주지형 모양의 접시 위 원산지 위치에 플레이팅한 센스가 돋보인다. 식사 후 남은 나물은 제주도 특산 참기름에 비벼 비빔밥으로 제공된다. 식감을 최대한 일반 고기와 유사하게 만든 콩고기(가운데)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처음엔 ‘완전 비건 식당’만이 계획의 전부였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진 비건 식당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 주변에 숱한 자문을 구하며 고민했고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비건 옵션 식당’을 열게 됐다.
첫 번째는 제주도의 특성. 관광지인 제주도는 대부분의 여행객이 가족, 혹은 연인, 친구 등 집단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비건인 ‘나’와 비건이 아닌 ‘소중한 사람’이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기도 맛볼 수 있고, 비건을 위한 메뉴도 갖춘 식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는 제주 지역의 식생활. 고기 국수, 몸국 등 고깃국물을 기본으로 굳어진 제주도의 식생활. 지역민들 일상에 돼지고기는 아주 깊숙하게 녹아 있는 식재료였다. 도민분들의 식생활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고, 선택 옵션으로 이런 식재료들도 함께 선보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일반 식당에서 비건으로서 마음고생한 경험이 있기에 그 기분을 비건이 아닌 사람들에게 반대로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탄생한 모녀의 부엌에선 ‘맛있는 것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즐거움’.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때 가장 맛있는 음식의 맛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모녀의 식탁 인테리어는 주인장 어머니의 작품들로 탄생했다. 아주 큰 드림캐처와 벽 페인트 색상까지. 모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 순간 다른 ‘제주의 순간’을 요리하고 싶었어요” <작은 부엌>


집 한편에 위치한 작은 창고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를 떠난 적 없는 ‘도민’으로서, 그리고 비건으로서 제주도는 ‘비건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시작한 ‘작은 부엌’. 내가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카페를 만들고 싶었던 주인은 먼저 옛날 창고를 개조했다. 공간이 넓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제주도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니 충분하게 느껴졌던 것. 가정집 사이, 집 안 깊숙이 들어와야 보이는 말 그대로 ‘작은 부엌’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작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준비하는 과정은 늘 뿌듯했다고.


작지만 그만큼 아늑한 작은 부엌. 이곳에는 큰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덕분에 전부 예약제로 진행된다.


들풀을 이용한 들풀 주스와 밥 대신 양배추가 들어간 김밥, 건강한 소스의 들풀 샐러드 피자.

제주도는 매일, 매 순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햇빛을 가득 머금은 노란색으로 가득 찰 때도, 빗물이 엉겨진 초록빛으로 가득 찰 때도 있다. 매번 다른 제주의 순간을 요리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의 매일을 바꾸는 잡초들을 활용했다. 들풀 주스, 양배추로 채워진 김밥, 들풀 샐러드 피자… 민들레나 질경이, 검질(잡풀을 뜻하는 제주 방언)과 같이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풀들도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들풀 주스는 토끼풀과 사과를 갈아 만든 요리다. 토끼풀은 비 오는 제주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한 몫 하는 풀이다. 제주도의 분위기를 마실 수 있는 셈. 반지가 아닌 주스로 만나는 토끼풀은 또 다른 매력일 테다. 게다가 토끼풀은 감기에 좋다. 들풀이 우리 몸에 이롭다는 것 또한 함께 전하며 흔한 게 귀한 것이라는 것을 요리로 알려 나가고 싶었다고.


코스 요리 중 바로 구워 나오는 구운버섯샐러드에선 어쩐지 고기와 비슷한 식감이 난다. 복숭아, 수박 등 과일이 함께 들어간 현미야채떡볶이 또한 별미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비건 식당을 운영하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코스 요리, 예약제로 진행되는 식당을 운영하며 아쉬운 점은 그것이었다. 길거리에서 간단히 휙, 휙 사 먹는 비건 음식이 고프다. 관광객이 대부분일 것 같지만, 의외로 제주도민이 손님의 절반일 정도로 많이 찾아온다. 꼭 비건이 아니어도 한끼 가볍게 먹고 싶을 때가 있는 법. 주인은 이렇듯 비건 공간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채리가 가본 제주의 비건 공간들

미디어 속 제주와는 다르게, 제주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말하는 제주는 ‘비건의 성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방문한 식당들만 해도 차가 없다면 방문하기 힘든 위치에 공간도 넓지 않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해’가 녹아 있는 따뜻한 곳,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곳을 만들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 있었다.
식당이라는 공간은 ‘연결’을 위해 존재한다. 비건 식당은 ‘비건인 사람’과 ‘비건이 아닌 사람’을 구분 짓기 위해 등장한 곳이 아니다. 음식은 ‘나’와 함께하는 이를 이어준다. 비건 식당이라는 공간이 그간 ‘분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면, 내 주변에 다르지만 존중하고 싶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제주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관광지 근처의 비건 식당에 ‘겸사겸사’ 들러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연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LG Social Challenger 177363
LG Social Challenger 일상 속 이상을 꿈꾸다 황윤선 기사 보기
LG Social Challenger 177355
LG Social Challenger 존재의 거울, 타인에게 빚진 자 박나정 기사 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 이현정

2020년 CoMPAS20 과 20대를 즐겨보자

소채리의 이상한 플리마켓

VDL 팬톤 컬렉션 팔레트 활용법(feat. 페이퍼메이크업)

책수선가 재영 | 책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수선가

2시간의 충만함, 명필름 대표 심재명

소채리 학점 자랑 대회

20대가 알면 좋을 2020 NEW 정책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