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들을 정치 선진국이라 부르는가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정치선진국에 이미 보편화된 제도인 ‘매니페스토’ 운동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매니페스토’란, 선거와 관련하여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공약, 곧 목표와 이행 가능성, 예산 확보의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약이다. 평가 기준으로는 공약의 구체성(specific), 검증 가능성(measurable), 달성 가능성(achievable), 타당성(relevant), 기한 명시(timed)의 5가지가 있는데, 거의 그림자 취급을 당했던 매니페스토 운동이 이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정치인의 참여 및 시민단체들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다시 화두가 되었다. 이를 통해 정권교체가 빈번히 일어난 사례가 있듯 정치의식이 아직 미성숙한 우리나라에 정착되어야 할 제도임은 분명하다. 혹 6월 2일을 ‘놀러 가는 날’로 정한 당신, 그 발걸음을 가차없이 투표장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여기 있다.

정치 선진국의 가도를 달리는 나라의 공통점? 바로 활발한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이를 매일 하는 세수처럼 깨끗한 정치의 당연한 일상임을 증명하는 이들의 고군분투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매니페스토 _ 국민에게 밝힌 공약, 꼭꼭 약속해
미국의 매니페스토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도 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매니페스토는 1994년 의회선거 때. 당시 이 매니페스토로 말미암아 미국의 공화당 전성시대가 열렸다. 공화당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는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라는 이름으로 10개의 정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의회 개시일로부터 1백 일 이내에 모든 정책을 하원에서 승인시키겠다.’라는 문구까지 삽입된 체계적인 계획서였다. 공화당은 후보들의 동의를 구한 후 대대적으로 이를 국민에게 제시했고, 결국 크게 성공을 거둬 40년 만에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선거 이후 공화당은 실제 100일 이내 처리하겠다는 약속대로 제시한 공약들을 거의 실현했다.
대선에서도 매니페스토는 힘을 발휘한다. 미국의 대선은 통상 당 경선에서부터 시작된다. 경선 과정은 당원들에 대한 지지 요청이기도 하지만 유권자에게도 호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보통 1년 이상의 기간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비전과 공약을 깊게 보고 평가할 수 있다. 1992년 선거 당시 민주당의 빌 클린턴은 매니페스토를 통해 경쟁자 부시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은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매년 5백 억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국가경제전략을 담은 정책 공약집 ‘Putting People First(미국 재생의 시나리오)’을 출판했다. 그리고 TV 쇼에 출연해 이를 소개하며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힐러리와 경쟁했던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 매케인과의 경쟁에 이르기까지, 오바마는 네거티브 공격을 되도록 자제하고 40여 개의 현실성 있는 공약 위주의 선거를 한 끝에 당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세웠던 대선공약 중 취임 첫해인
지난 2009년 동안 9개를 어기고 75개에 착수한 바 있다. 물론 아직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도 많지만, 공약 이행에 제법 충실한 모습이다.
프랑스의 매니페스토 _ 공약 탐정 국민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다당제인 프랑스는 양당제 국가와는 매니페스토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프랑스의 매니페스토는 관료 중심적이라, 관료 출신의 공약 작성 책임자를 따로 두고 정당과의 협력과 정보교류를 통해서 공약을 완성한다. 프랑스 국민은 공약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시라크, 조스팽 두 후보자는 각각 공약집을 1천2백만 부와 8백만 부씩 인쇄했다. 이때 조스팽은 발표한 공약에서 시라크와 자신 사이에 큰 차이가 없고, 자신이 조금 밀리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라크와 다른 10가지 포인트’라는 새 홍보물을 만들어 수백만 부씩 배포
하기도 했다. 타 후보자와의 차별성을 증명하는 일에 열중할 만큼 공약에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이다.
영국의 매니페스토 _ 지극히 현실적인 소통 정치의 원조는 나야, 나
의회민주주의, 의회정치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나라 영국. 매니페스토 운동 역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였다. 하지만, 정치선진국인 그들의 정치 역사 역시 중상모략이나 대리투표 등의 유권자를 농락하는 공약으로 야만적인 때도 있었다. 이런 잘못된 정치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영국은 1백80여 년 전인 1830년대에 들어서 “겉만 번지르르한 공약은 순간의 환심을 살 수는 있지만 결국은 실패한다.”라고 생각하는 당시 보수당 당수 로버트 필에 의하여 매니페스토가 최초로 도입되었고, 이때부터 이 정신이 계승되어 이제는 출마하는 후보가 투명하게 자신의 정책공약
을 내는 현상이 당연시되는 정치문화를 이뤘다. 영국에서의 매니페스토의 대표적 사례로는 1997년 영국 총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18년간 정권을 통치하던 보수당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의 상황을 대변하던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영국 국민의 마음을 끌어당겨 정권을 잡게 되는데 일등공신을 한 것이 바로 이 매니페스토 운동!
당시 선거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여유가 있었던 보수당에 맞서 노동당은 ‘노동당과 국민의 계약’이라는 이름의 비전을 제시했고 여러 가지 독특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열악한 의료 서비스 속에서 암 수술환자가 바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대기하는 현실 개선, 16~17세 예비 노동인력에 자격증 취득을 할 수 있는 환경 마련,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직원을 고용한 고용주의 세금 줄이기 등 거창한 공약을 위주로 국민에게 다가가려 했던 보수당에 비해 매우 파격적인 약속을 내세웠다.
청년실업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고민거리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언제까지 실업률을 얼마 이상 줄이겠다는 약속은 국민의 많은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이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노동당은 2001년~2005년 연이은 총선에서도 보수당과는 차별화된 매니페스토 운동을 내세우면서 잇달아 승리한다.
또 200년 영국 지방선거 당시 LB 해크니라는 지역에 출마한 노동당 ‘줄스 파이프’라는 의원의 주요공약을 보면, 범죄 다발 지역에 CCTV 도입, 5천 명 신규고용 약속, 3천 가구의 지붕수리 및 4천 가구의 새로운 창문수리 및 난방기 설치, 2005년까지 폐기물 재활용 18% 목표 구상 등 의아할 정도로 세세한 사항과 정확한 기한을 정해 지역 주민과 약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의 매니페스토는 단순히 그 당내의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PiP(Partnership in Power 권력 파트너십)라 불리는 프로그램에 의해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논의하여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매니페스토 공약을 정하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공동체 및 시민단체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게 된다. 일방향적인 매니페스토 공약 제시가 아닌 ‘쌍방향적 소통’이 바로 영국만의 성공적인 매니페스토라 할 수 있다. 매니페스토 공약집이 우리 돈으로 한 권에 1만 원 정도 하는데, 1백 만 부나 팔린다는 영국. 국민 스스로 정치 관심이 나라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역시 증명하고 있다.
Plus info

영국에서는 주요 정당의 매니페스토가 발표되는 날이면 주가가 출렁인다. 주요정당의 정책방향을 매니페스토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 이는 정당이 약속하는 공약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워낙 높아 ‘아! 이번에 OO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산업이 성장할 것이다.’ 이런 예상이 가능하고 이것이 주식시장과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일본의 매니페스토 _ 나라 살리는 정권 교체, 우리 손에 달려소이다
일본은 보다 나은 선거와 바람직한 정치문화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정책선거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후 2003년 지방선거부터 몇몇 후보들이 상대방 후보에 대응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 제시를 통해 당선되면서 매니페스토 운동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 총선과 유사한 중의원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03년 당시 일본의 자민당은 매니페스토 상세판 25만 부와 요약판 4백10만 부를 대중에게 배포하였으며, 민주당은 상세판 3백20만 부, 요약판 1천5백만 부를 제작, 배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렇듯 2003년 11월의 총선거(중의원 선거)와 2004년 7월의 참의원 선거, 그리고 2005년 9월의 총선거(중의원 선거) 등 3번의 국정선거를 거치면서 일본의 매니페스토가 점점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매니페스토는 매니페스토의 발상지 영국을 모델로 해 시작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매우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일본의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모습까지 보였는데, 이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2009년의 총선(중의원 선거)이다.
일본의 민주당이 명확하고 구체적인 매니페스토를 발표하며 국민에게 어필하면서 2009년 54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뉴스를 다들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 이는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과 경제 불안,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등이 참패를 부른 직접적 요인이기도 했으나, 민주당은 매니페스토를 통해 정권 교체의 비전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체적인 공약 내용으로는 의원세습 및 정치자금 제공 금지, 다케시마(독도)의 평화적 해결 위한 노력, 중소기업 법인세율 11% 인하 등 정치, 외교, 경제 분야에서의 큰 틀의 공약뿐만 아니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중학교 졸업까지 매달 2만6천 엔(약 34만 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1인당 55만 엔의 출산장려금을 주겠다는 공약, 고용보험 전면 확대 및 구직자에게 월 10만 엔(129만 원)을 지급하는 직업훈련제도 도입 등 고용 및 경제 활성화 등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공약을 내세워 일본 국민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물론 최근 들어 부족한 재정과 약속 이행 의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말미암아 하토야마 정권 지지율이 하락하기도 하는데, 이는 달리 생각하면 공약의 이행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거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즉각 국민이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여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얼마나 정치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매니페스토를 정착시키는데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정치가들이..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길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은 한결같을 거에요.
    그렇기에 외국의 선진정치국들을 마냥 부러워하기만 합니다.
    우리도 많은 변화가있었고,
    자정의 노력도 있었으니..
    이제 곧 외국의 정치선진국 처럼 정치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겠죠
    희망찬 미래를 기다려봅니다.
  • 정당으로 뽑는게 아닌 공약으로 뽑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우선 그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일도 중요할것 같네요
  •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꼭 적용시켜야 하고 필요로 하는 운동이 메니페스토 운동인거 같아요.
    다른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보고 정말 많은 공감을 했었고,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선진국에 비해 역시 많이 뒤쳐지는구나라고 느꼈지요.
    얼마 전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선거 몇일 전 저희 어머니랑 친구분이랑 계셨는데,
    제가 속한 구에 현 구청장이 재선에 나왔더라구요. 그래서 선거운동차 들려서 악수하고 가려고
    왔었는데 저희 어머니 친구가 좀 걸걸하시거든요.. 친구 어머니가 그러셨죠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드만 선거한다고 이렇게 나왔는교? 또 뽑아주면 또 안 뵈겠네~….
    이런 소리를 듣더니 억지로 웃는 모습을 지어보이면서 난감스러운 표정을 짓더라구요.
    한편으로 저는 속이 좀 시원했지만요..
    지금 그 사람은 재선에 당선되었지만,,, 아마 공약보다는 속한 정당때문에 되었을거라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정치하는 사람들 꽤 많이 있겠지요. 공약보다는 당 위주로 선거가 이루어지는 모습도 안타깝고,
    뽑히고 나면 본전 챙기기와 명예 세우기에 급급한 일부 정치가들도 답답하구요..
    공약 위주로 선거가 이루어지고, 국민이 감시와 견제를 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이어야 말로..
    우리나라를 조금 더 선진국에 나가게 하는 밑거름이 될거 같아요..
    이젠 좀 바뀌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네요.
  • 차분차분

    일본에서 먹거리 파동이 났을 때 소비자의 반응만 우리가 배우고 익혀도 정치를 변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정치에 대해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 역시 어렵네요 .. ㅋㅋㅋ 하지만 매니페스토에 대한 개념은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소챌 스토리 더보기

물의 마을과 반실라핀

SOUND travel in Vietnam

두 몸치의 킥복싱 극한체험

방콕의 힙플레이스 BTS 여행

방콕의 <반 실라핀(Baansilapin)> | 200년 된 수상 가옥 속 전통 탈

매일이 화이트 데이 같은 남자

태국의 설탕세를 아시나요?

강진주와 함께 보는 태국의 탐마삿대학교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