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예술의 상상력, 1장 왜?

   
   
정치(`꾼`이 아니라)`가`는 사회 구성원 행복의 질을
높이고 양을 확대하는 지름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21세기를 `삶의 질`과 연관하여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문화`와 `관광`을 통합, `문화관광`부를
만든 것과 같은 맥락일까? 문화`상품`이 높은 부가가치를 창조하므로 주력해야 한다는 뜻일까?
문화가 상품일 수 있고 문화 상품이 높은 부가 가치를 창조할 수 있고, 문화를 관광시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고 관광 자체를 문화의 한 행위로 만들 수 있지만 이 모든 `수있음`은
문제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다.
사회의 온갖 분야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온 역사의
집적을 몸과 정신으로, 그리고 집으로 품고 있다. 정치가 행복의 질적 양적 지름길을 추구해온
과정이자 결과라면 종교는 `죽음 이후 삶`, 혹은 `영생`을 추구한 그것이며 경제는 물질적
행복을 추구한 그것이다. 학문은 그 `과정이자 결과`를 체계적으로 종합,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담지하면서 미래 전망을 준비한다. 종교학 혹은 신학은 하느님을, 자연과학은 자연을,
경제학은 노동을, 정치학은 `전망 자체`를, 정치경제학은 노동과 전망의 관계(의 전망)를,
그리고 철학은 학문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서양의 중세가 종교의 시대였다면 르네상스 이후
근대를 이뤄왔던 것은 철학과 정치경제학이다.
물론, 종교의 시대에 철학과 정치경제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철학과 정치경제학이 이룩한 근대에 종교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거의 인간이
`사회적`으로 된 것과 동시에, 즉 거의 인간의 태초부터(왜냐면 인간은 무엇보다, `사회적`이므로
`인간적`이다)존재했고 병존해왔다. 다만, 중세는 `종교적` 사고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조`하는, 그렇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주된 방식이었다. `창조`는 물론이거니와 `이해`와
`해석`에서조차 `종교적`이 `총체적`으로 될 수 없음 또한 물론이다. `부분적`이 `총체적`을
참칭할 때 종교는 제도화하고 정치화한다. 그리고 미신화한다. `정치적`이 `총체적`으로
될 수 없음도 물론이다. `정치`가 `전체`를 참칭하는 전체주의의 순간, 이성은 독재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야만과 직결된다. 역사가 끊임없이 발전해 왔으되, 드문드문 미신(마녀사냥)과
아??(전쟁과 종족 말살)의 폭발을 또한 야기시켰던 것은 그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핵폭탄 개발,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가상현실의 범람 등 난해와
혼돈의 사상틀로 새천년을 맞으면서 세계는 9. 11테러와 그에 이은 미국의 대(對)이슬람
종교전쟁의 경악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경악이 습관-일상화한다. 삶의 질이 삽시간에
중세화했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은 삶의, 생애의, 의미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것은 태초부터 `최종적`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쌓여온, 그리고 역사
너머로 쌓여가는 총체성을 담지하고 있다. 작품을 하나의 세계로 표현하는 까닭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시절, 예술이 마술의 한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역사 발전기 마술은 `진정한`
예술로 하여 `부분적인` 총체성을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있었다. 인육과 친족 살해를
벗을 수 있었던 것. 로마 카롤릭의 시절, 예술이 종교의 시녀였던 것이 아니다. 역사발전기
종교는 특정 예술, 특정 소재를 탄압했던 때에도 `진정한` 예술로 하여 `부분적`인 총체성을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있었다. 미신으로의 전락을 벗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예술의
덕이 아니라 이성의 덕이었다고? 물론. 하지만 계몽과 민주주의 혁명의 시절, 예술이 정치의
시녀였던 것이 아니다. 역사발전기 정치는 `진정한 예술`로 하여 `부분적`인 총체성을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있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는 것은 매 역사발전 시기 주인공
분야의 `부분적` 총체성을 `현실적`으로 담보해왔던 예술의, 역사적 총체성이 스스로 총체성을
형상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 너머`는 무슨 뜻? 제도화라 했지만 예술은 제도화하지
못한다. 자신의 열린 제도가 이미 있는 까닭이다. 모든 걸작은 자신이 태어나는 이야기를
형상화한다. 예술 세계는 `세계(작품)들의 세계`다. 야만이라 했지만 예술은 야만을 예술의
이성으로 전화시킨다. 미신이라 했지만 예술은 미술을 일상의 신비로 전화시킨다. 예술은
정치-혁명의 피를 삶의, 생애의, 아름다움으로 전화시킨다. 이 전화는 예술 `현실`의
언어를 이루고 예술 `현실`은 역사 `너머`를 지향하면서 가상 현실이 횡해하는 현실에
`부분적`인 총체성을 `현실적`으로 담보한다. 예술 세계 속에서 `몰락`은 고전화한다.
난해와 혼돈은 예술 속에서 생애보다 기나 긴 통로로 된다.
예술 속으로 도피하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우선 예술의 상상력, 예술의 세계관(예술에서
상상력은 세계관이다)으로 세상을 보자. 그러면 `예술하는 만큼` 세상이 더 잘 보이고
의미있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다. 좌파 예술과 우파 예술이 있는게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진보적이며 그러므로 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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