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성(性) – 종교적

   
얼굴을 마주한 채 온몸을 단말마로 치떨며 사랑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성은,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럽고 거대한 모순이 눈물겹고 아름다운 비극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일상적이지만 인류 성장발전사의
대부분을 응축하기도 한다. `모순`은 `치부` 생식기의 기괴하고 치욕스런 추함(`치부`)과 `사랑=영혼의 거울`
얼굴의 아름다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순이다. 치부가 치부를 치욕스러워하며 치부 속으로 숨어들고, 아일랜드
소설가 조이스(joyce, james)의 표현대로, 사내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기를
쓴다. 추(醜) 콤플렉스가 성을 자학-피학적으로 왜곡-과장하거나 종교적으로 석남 석녀(石男 石女) 혹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사랑의 성에서 진정 위대한 것은 거울=얼굴의 육체, 특히 입술이다. 치부와
치부가 뒤섞이는 동물적 쾌감에 대한 자의식이 입맞춤을 통해 가장 환희로운 `영혼의 육체성` 혹은 `육체의 영혼성`에
도달한다. 진정한 사랑의 성은 정확히 육체와 영혼의 중간을 관류하며, 일순 경계를 허물고 둘을 합하여, `순간
속 영원’ 혹은 `삶 속 죽음’을 오르가즘으로 체감케 한다. 예술에서 사랑의 성은 모태고 벽이다. 소설은 사랑의
성을 포괄하고 극복하면서 스스로 시간 자체의 사랑을 이룩한다. 사랑의 성을 원천으로 머나 멀게 흐르는 세월의
강. 연극은 주인공의 영혼과 육체를 무대 위에, 관객의 눈과 코 앞에 실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역동적으로,
육체적으로 건축하고 허물어버리고 다시 세운다. 시는 사랑을 읊으며 스스로 사랑의 시적 육체가 되기를 꿈꾼다.
음악은, 현(弦) 위주의 고전음악이라면 그 자체로 가장 정결 한, 습기가 일체 제거된 대신 위대한 고통이 액화된,
시간과의 섹스며, 재즈라면 절정에 이르는 도정을 무한 연장키 위해 절정 자체를 포기한 결과다. 무용은 어떤가.
육체를 매개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섹스에 이르려는 비극적인 몸짓이다. 모든 비극은 그것을 껴안는 자에게 아름다움의
육화를 선사한다. 하지만 성=모태가 함정으로 될 때, 성의 거대한 우스꽝스러움에 충격받으며 한없이 절망할 때
예술은 낡은 도덕으로 갇히거나 포르노로 폭발한다. 포르노는 고통과 정욕의 충격적인 절규고 전도다. 추한 생식기들
사이 쾌락 약탈전이 있을 뿐, 얼굴과 눈동자를 마주치는 일이 드믈다. 도덕은 사랑을 고답(高踏)한 문자로 규격화하고
가둔다. 그때 도덕은 한문 혼인 빙자 간음 법조문처럼 낡은 권위로 음탕하다.

신화에서 에로스를 발전시킨 것은 예술적 상상력이다. 우리들의 허리 아래가 아직 동물인 것에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성을 단순한 생식의 수단에서 기쁨의 수단으로, 사랑의 촉매제로 고도화시켜온 것은 인간만의 운명이고 업적이다.
사랑의 성은, 기교가 극에 달한단들 본질이 유한하므로 간절하고, 미완이므로 의미깊은, 인간 존재 절정의 확인이다.
기쁨의 허무가 허무의 기쁨으로, 공(空)의 아름다움의 발전사로, 전화한다. 예술의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수준을 드높이는 추동력 역할을 사랑의 성은 해왔다. 사랑의 목적지가 오로지 성이라 한들, 삶의 근원적인 슬픔과,
또 슬픔을 극복하려는 인간적 노력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살과 살이 섞이는 것은 정말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섞이는 것은 서로의 존재와 죽음의, 꿈의 육화다. 사랑의 성과 예술과 죽음의 관계는 변증법적이고
상생(相生)적이다.

성을 해탈의 수단으로 삼는 종교는 모두 원시적이고 유일신 종교는 예외없이
가부장제의 확립을 뜻한다. `창조하고 입법하는’ 유일신은 남성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모두 종속적?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불교에서 여자가 남자로 환생하는 일은 매우 지난하다. 구약성경은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빚어 남자에게 복속시켰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여성은 예술을 매개로 남성보다 보편화한다.
불교의 핵심 교리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여성을 풀이한 예술론에 다름아니다.
`이브의 탄생`이 예술, 특히 미술 소재로 즐겨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아담의 갈비뼈가 창에 찔린 예수의 갈비뼈를, 갈비뼈=여성은 예수가 흘린 피가
지상에서 이룩할 교회를 예표(豫表)한다는 주장이 유포된 9세기 이후지만 거꾸로, 성(性)을 `미(美)와
성(聖)의 육(肉)`으로 전화한 미술적 상상력이 그 주장을 추동하기도 했다. 남성의 완고와 소유욕을
무산시키는 어떤 여성적 열림은 그 자체로 예술적이다. 정치와 문화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몇 겹의
모순- 및 상생 구조를 갖는다.
불교의 목표는 속세 번뇌로부터 해방, 즉 열반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 삶 속에 난해하게 존재하는
죽음을 다스리고 내세를 보장하지만 불교는 필멸인간의 내세 소망을 죽음 이후 영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풀지 않고 삶의 완벽한 극복으로서 순정한 죽음 혹은 없음을 성취하는 방식으로 푼다. 이 점에서 불교는
가장 철학적인 종교다. 아니 종교라기 보다 철학에 가까웠다. 열반은 자살과 전혀 다르다. 삶은 죽음,
없음, 공에 이르는 색의 길이고 색 또한 공이며 공은 색의 극치다. 이쯤에 이르면 불교는 탁월한
예술론이다. 불교가 대중화하면서 현세와 내세 행복을 약속하는 쪽으로 훼손될 것은 당연하지만 불교는
이 `공의 훼손`을 다시 `색의 찬란함`으로 전화시키고 `대중성`을 끊임없이 `현실주의적 깊이`로
전화시킨다. `대중성의 기적`은 물론 불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속이 없는 종교는 언어도단이고,
`대중성의 기적`이 없는 종교는 세속화할 의미는커녕 능력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크게 보아 천주교의
`대중화`라고 할 개신교는 천박한 찬송 가락들 뿐 아니라, 아니 그것을 소재로, 위대한 종교 음악가
바흐를 낳는다. 하지만 바흐는 종교와 예술이 격변하면서 변증법적으로 통합된 결과고. 불교 `예술`의
`대중성=깊이`는 더 근본적이고 체질적인 `불교=예술`의 결과다. 우월을 따질 수는 없다. 다만
(기독교의) 서양음악사는 `발전`의 역사, (불교의) 동양음악사는 `심화=무화(無化)`의 `역사=탈역사`일
뿐이다. 불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 공으로써 현실주의 극치의 색을 발하고 `종교=예술`
상상력이 소망의 전분야를 `종교=예술`화하는 `찰라=영원`의 광경화(`化=畵`)에 다름 아니다.
공산주의는 종말론적 `단점`이 기독교적이지만 그날 모든 인간의 능력이 계발되어 모두 무용가처럼걷고
철학자처럼 사고하며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성악가처럼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불교를 닮았다.

역사를 신화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가장 위력 있는 매개는 문화예술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그리고 그 안에 역사 속으로, 역사 이전 속으로 사라진 모든 나라들이 현존해
있다. 불교는 3국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3국의 운명을 뒤바꿨다. 아니, `역사적`으로 뒤늦은
신라가 뒤늦음의 `시공`을 불교=예술로 `초월`하는 동시에 `역사`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교리의 가장 총체적인 구현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구현`으로 태어난 `신라` 불교는
`역사의 기적` 중 하나라 할 만 하다. 한국 불교는 당연히, 인도나 중국 불교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불교는 한국 사회구성체가 중앙집권을 소망할 때 들어와 소망에 기여했다. (그리고 근대화를
소망할 때 `정치`에서 퇴출된다. ) 고구려 불교는 중앙집권 강화에 기여하지만 `고구려=정치`와
불교 `정치`가 만난 격. 정치를 유구하고 깊은 삶의 자양분으로 전화시키지 못한다. 백제 불교는
`불교=예술`과 `백제=문화`가 만난 격. 정권 강화에 기여할 방도가 없었다. 신라 불교의 과정은
훨씬 복잡하고 무엇보다, 순탄치 않다. 불교를 정치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중앙 집권 수준이 약하고 귀족
세력 반발이 거셌다. 문화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원시 주술신앙이 강했다. 끈질긴 순교와 고난 `예술`을
거치면서 `불교=예술`이 신라 심성에 신라 심성이 `불교=예술`에 서로 적중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불교와 신라가 동시에 말한다. 어, 네가 누구였더라? 혹시 너, 나 아니었니? …. 신라와 불교
공히 `보다 우월한 자기`를 체감하는 `신라=불교`의 순간이다. 불교` 문화`/ 불교`정치`의 2분법을
`신라=불교`의 `정치=문화`로 극복하는,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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