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서사-소설적

   
 
<일리아드><오딧세이>
두 작품 모두 비유가 생생하고 문체가 숭고하며, 행동이 진지하고 사건 전개가 유려하고, 구성이 단정하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학적인 총체성’을 갖는다. 이 ‘미학적 총체성’이야말로 이야기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 결과물이고, 점차
이야기의 목표 혹은 존재 의미로서 비중을 더해갈 것인데, 그것을 추동하는 것은 ‘일리아드’의 심화 혹은 ‘오딧세이’ 지향
혹은 ‘오딧세이화’로서 광활하고 깊은 변증법이고 이 변증법에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다시 변증법적으로 접근하면서 르네상스
이후 서양문학의 근간이 발전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은, 두 작품이
고대 그리스 비극과 더불어 진정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오딧세이>의 시점이 트로이 함락
10년 후, 형식은 회상이란 점도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 영웅들은 귀환한 상태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그리웠지만 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에게 욕망의 포로로 7년 동안 잡혀있었다. 그동안 이타카에서는 왕국의 내로라는 귀족들이
모여들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느라 법석댄다. ‘오디세우스는 죽었으니 우리들 중 하나와 결혼하여 이 섬에 새로운 왕이 있게
하라…’ 그렇게 요구하면서 귀족들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를 괴롭히고 매일 주연을 벌이며 왕궁 재산을 낭비한다. 신들의
거처인 올림포스 산에서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간청을 했다.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제우스가 호의를 보이자 아테나는 이타카로 내려가 오디세우스의 친구로 변장하고는 텔레마코스를
채근한다. 구혼자들을 쫓아내고 아버지를 찾아 나서야 할 것 아니냐고….
텔레마코스는 용기가 없어 구혼자를 쫓아내지는 못했지만, 아테나 말대로 은밀히 이타카를 떠나 아버지 소식을 탐문한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왕 중 최고 연장자인 네스토르의 필로스로 갔다가, 다시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스파르타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마침내 아버지 소식을 듣는다. 텔레마코스가 사라진 것을 안 구혼자들은 그가 돌아오면 죽이자는 공모를 하고,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칼립소에게 보내어 오디세우스의 석방을 명했다. 칼립소의 도움으로 뗏목을 완성한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분노가 아직 남아 있었다. 페아키아족의 스케리아가 눈에 들어올 즈음, 오디세우스의 뗏목은 파괴당하고 거의 익사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노가 스카프로 감싸 올렸다.
   
스카프는 그를 올리브 숲이 있는 강변으로 실어갔다. 그날 밤 아테나는 페아키아 왕 알키노우스의
딸 나우지카아에게 꿈을 보냈다. 다음 날 나우지카아는 꿈에 나타난 대로 시녀들을 데리고 강에 나가 옷을 세탁했다. 질겁한
시녀들의 비명 소리에 오디세우스는 의식을 되찾고 나우지카아에게 음식과 옷을 부탁한다. 나우지카아는 그를 왕궁으로 데려갔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배를 왕과 왕비 아레테에게 부탁하고 그들은 신분도 묻지 않은 채 허락한다. 다음날 벌어진 운동경기에서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이어진 연회에서 눈먼 음유시인 데모도쿠스(아마도 호메로스 자신)가 트로이 멸망을
노래하자, 오디세우스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고, 그제서야 왕이 ‘당신은 누구시오’, 그렇게 물었다. 오디세우스가 신분을
밝히고 페아키아 사람들은 그의 방랑기를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은 내용이 기묘하고 짜임새가 탁월하다. 그와 부하들은 트로이를 떠나자마자 이스마루스의 키코네스 사람들을
약탈했다. 그러나 야만은 거기서 끝. 그와 부하들은 연꽃 먹는 사람들의 땅을 방문하는데, 연꽃을 먹으면 고향을 잊고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어지는, 이를테면 ‘유토피아’다. 그곳에서 끝날 것인가. 유토피아에서 끝난다면 문학은 탄생할 수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을 벗어나 숱한 수난과 고통을 겪으며 지혜를 한 단계 높이게 된다. 그는 따로 사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키를롭스(외눈박이 식인 거인)들의 우두머리인 폴리페모스에게 잡혀 많은 부하들을 먹이감으로 잃게 되자 포도주로 거인을 잠들게
한 후 한 눈 마저 멀게하고 탈출했다. 키클롭스 이야기는 시칠리 지방의 풍광을
이야기-상상력으로 형상화한 결과다. <오딧세이>는 그렇게 자연 탄생 신화를 한 단계 더 높은 인간-상상력으로
이야기-형상-역동화한다.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가 ‘너는 누구냐’고 묻자 ‘우데이스'(아무도 아니야)라 대답했었다.
이제 눈을 찔린 폴리페모스의 비명소리에 다른 키클롭스들이 모여들어 ‘누가 그랬냐’라고 묻자 폴리페모스가 ‘아무도 아니야’라고
대답, 오디세우스는 위기를 넘기게 된다. 이 이야기는 페아키아 왕의 질문, ‘당신은
누구시오?’에 대한 영리한 대응이면서 <오딧세이>가 사실은 자아 탐구의 문학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자문이 키클롭스 에피소드로 하여 작품 <오딧세이> 내내 ‘외눈동자의 울림’을 갖게 되는 것.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멀게 한 일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샀다. 그러나 이미 오디세우스는 노여워하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느니 차라리 신이 내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지혜를 살찌우는 인간, 그를 매개로 신이 강요하는 고통이 인간 스스로
개척하는 그것으로 전화된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고통이 온다.

바람의 신 에올로스가 그를 가엽게 여겨 모든 역풍을 가죽 백에 가두고 순풍만을 불게 하지만 고향에 도착할 즈음 그가 잠이
든 사이 부하 선원들이 그 백을 열었다. 보물가방인 줄 알았던 것. 오디세우스의 배는 다시 고향에서 먼 곳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거인 레스트리고네들과의 조우. 이 식인 거인들은 오디세우스 일행의 배 12척 중 11척을 파괴한다. 그 다음은,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 마녀 키르케. 그녀는 그의 부하들을 돼지로 변하게 하지만, 오디세우스 자신은 헤르메스가 준 약초를
먹고 위기를 벗어난 후 부하들도 구해준다. 이때 약초는 야만을 벗는 약초, 이를테면 단군신화의 마늘과 같다. 키르케는
1년 후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며 지하세계로 내려가 눈먼 예언자 티레시아스에게 길을 물으라고 가르쳐준다.

   
‘죽은 그를 만나라…’ 오디세우스는 이제, ‘눈멂과
지혜’ 너머의 죽음에 직면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는 귀향길,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지하세계에서 그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오스 등 이미 죽은 영웅들, 그 아내와 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어머니 안티클레아도 만난다. 죽음이
숱한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죽음’으로 되는 그 중복의 와중 어느 때쯤 이야기는 스스로
이야기의, (탄생 이유를 넘어선)존재-생존-생애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가. 그렇게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예술이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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