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미술적-바로크, 매너리즘

   
 
  19세기에 이르러, 부르크하르트와 뵐플린에 의해
예술사 및 비평 용어로 자리잡았고, 뵐플린 <르네상스와 바로크>(1888)에서 최초로 문학에 적용되었다. 미술사에서는
16세기 말-18세기 초에 성행한 매너리즘(Mannerism)과 로코코(Rococo) 사이의 양식, 문학에서는 1580-1680년
즉, 르네상스 쇠퇴기와 계몽기 발흥 사이의 양식을 뜻하고, 대개 17세기를 지칭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바로크는 본질적으로 ‘균형’, 무엇보다 ‘총체성’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양식이다.
벨로리에 의하면 바로크는 ‘온갖 목소리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어떤 특정한
소리가 두드러지지 않으나, 그 뒤섞임과 노래의 전반적인 흐름과 내용이 즐거운 대합창’에 비유될 수 있다. 부분이 전체에
종속되는 조화라는 점에서, 완벽한 부분들의 균형을 지향하는 성기 르네상스(그리고 17세기 고전주의)의 이상과는 약간 다르고,
의도적으로 절충을 지향하는 매너리즘이나 섬세한 산만성을 구사하는 로코코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거대한 통합을 지향하는 와중에
회화와 조각이 건축에 종속되는 듯 하지만, 건축이 독자적으로 원래의 고착성을 벗고 조각의 생동성을 취하거나, 건축과 조각이
거꾸로 회화의 명암기법을 구사하는 등 예술 장르 사이 의사소통

또한 완연하다. 그리고 마치 관객을 염두에 두는 연극이나 굉장한 구경거리처럼, 극적인 명암, 꽉참과 텅빔의
절묘한 대비, 강력한 대각선 혹은 곡선을 구사하여 평면을 분리하는 방식 등으로 주제와 관객이 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로크가 명암 대비와 색체 사용으로 질감을 강조하고 주장과 확신에 차있다면, 매너리즘과
로코코는 이를 둘러싸는 장식선에 집착한다. 1539-1590년 특히 로마에서 성행한 매너리즘(mannerism)은
시대정신보다는 앞선 유파의 특징 혹은 장점들을 절충 혹은 과장한데서 붙혀진 명칭이다. 성기 르네상스의 타락을
뜻하며, 창조 정신이 시들해진 시대의 양식 모방 혹은 혼성 모방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도 쓰였다. 스페인의 정신주의와
결합, 엘 그레코라는 거장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만연한 매너리즘에 맞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두 경향, 즉 눈에 보이는 자연을 이상보다 더 중시한 ‘자연주의적 경향'(카라바지오)과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성기 르네상스로
돌아가려는 ‘고전주의적 경향'(카라치, 도메니키노) 등이 티치아노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내는 베니스풍의 전통(색과 빛,
그리고 풍만함)과 결합해, 루벤스에서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 빼어난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은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는 ‘건축적’ 공간 상호 관통과 ‘회화적’ 색체와 명암 대비를 ‘조각화’하면서 완벽한 자연주의
기법으로 고도의 심리적 내용을 구사, 말 그대로 바로크를 응축, 심화시켰다. 로마, 그리고 나폴리 외 이탈리아 지역의
바로크는 산발적인데다, 만개하지도 못했다. 바로크적 요소를 차용한 경우는 무수하지만… 1608년 안트워프로 돌아간 루벤스는
이탈리아 바로크에 필적할 유일한 성기 바로크 미술을 벨기에에 선사했고, 반 다이크 형제 정도가 그 대표적인 화가로 꼽힐
수 있다. 네덜란드는 대체로 바로크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의 <야경>(1642)에 이르는
10년간의 작품들이 바로크를 인간화하면서 심오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예외라 할 수 있다.
<야경>에 얽힌 일화 또한 바로크 미술의 ‘소설적’ 완성=종착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경단 회관을 꾸미기 위해 당시 36세였던 렘브란트에게 그림을 부탁한 암스테르담 유지 17명은
그림 속에 등장할 위풍당당한 자신들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야경> 속 그들은 어둠 속에 ‘움직이는 그림자 조각’
정도로만 처리되어 있었다. 이에 격렬하게 항의하며, 그림의 대폭 수정 또는 새로 그릴 것을 요구했지만, 렘브란트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다. 이후로 렘브란트에게는 어떠한 그림 제작 주문도
 

봉쇄되었고, 렘브란트에게는 무명과 가난을 강요했다. 그러나 <야?gt;은 야경꾼의 밤 행렬이라는 얼핏 단순한 구도 속에 바로크 사상, 즉 가장 인간적인 존재의 드라마를 명망과 색체의 깊이로 구현한 걸작이다. 그리고 잇따른 그의 불행은 그의 최후의 작품인 <돌아온 탕자>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 인간 고뇌를 통한
바로크 자체의 성화(聖化)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주의 경향이 강했던 프랑스는, 루벤스의 작품과 베르니니의 방문에
‘반작용’을 나타냈고, 1680년대에 이르러 루벤스 붐이 일었으나 얼마 안되지 않아 말기 바로크를 거처 로코코로 넘어갔다.
유일하게 일관된 바로크 조각가 퓨제는 정작 파리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건축은 고전주의와 바로크를 독창적으로,
또 프랑스적으로 종합, 특히 베르사이유 궁전을 통해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질이 근엄하고, 조형미술 분야에서 사실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스페인은, 1630년대 제한된
바로크 기미를 드러내고 벨라스케스가 보다 자유로운 바로크를 구사했으나 일관성은 없다. 그러던 중 1660년 루벤스의 영향으로
무절제한 후기 바로크가 화가 무리요 등에 의해 회생했다. 그밖에 그라나다와 세빌리아 지역의 종교적 목조 조각상들은 독특한
스페인적 발전 사례라 할 만 하다.
   
  영국은 루벤스와 반 다이크에게 작위를 수여했으나, 헨델 등의 위대한 바로크 음악가를 낳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미술은 늦게 시작되어 이렇다 할 작품을 낳지 못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 바흐 음악을 통해 구현되었던 심오한 종교적 바로크가 이 지역에서는 미술로는 구현되지 않았다.
   
 
  김정환
시인, 한국문학학교 arspedia. com 교장
198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저서: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 [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 인무] , [텅 빈 극장] , [순금의
기억] , [김정환 시집 1980-1999] , [해가 뜨다] 등,소설 [그 후] , [사랑의 생애] , [파경과
광경] 등,음악글 [클래식은 내 친구] , [음악이 있는 풍경] , [내 영혼의 음악] 등,기타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상상하는 한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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