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 속으로>┃한국 전쟁영화의 갈길 찾기

지난 주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영화 <포화 속으로>를 봤다. 혹시 세상에 거꾸로 가는 걸까? 한국 전쟁영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공감할 수 없는 학도병들, 싸우는 이유가 뭘까


<포화 속으로>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전투에 대처할만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학도병들이 인력 부족으로 인해 저들끼리만 전략적 요충지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뜬금없이 요직을 맡게 된 물렁한 중대장, 하늘 모르고 날뛰는 전직 건달, 동반 입대한 형제 등 아직 군인으로서 각이 잡혀있지 않은 소년들은 함께 힘을 합쳐 적으로부터 이 지역을 지켜내야만 한다. 그들의 전투에 승산이 있을 리가 없다. 마침 인민군 대장도 군인도 아닌 이들과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며 항복을 하면 목숨을 살려준다고 제안한다. 이길 리 없는 싸움을 굳이 해야 할지, 아니면 그래도 적군과 싸워야 하는지 갈등하던 그들은 결국 어떤 이유로든 전쟁에 휩쓸리게 되고, 차례차례 죽어간다.
독일의 TV 영화 <죽음의 다리>는 <포화 속으로>와 거의 똑같은 스토리의 영화다. 나치 학도병이 주인공인 점과 상대인 미군이 중간에 항복을 권유하며 정작 아군은 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점 등이 흡사하다. 영화에서 나치 학도병은 세뇌를 당해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다. 학교에 잘 다니다가 돌연 전쟁터에 소집되어 온 그들은 군인으로서의 각은 잡혀 있지 않아도, 히틀러의 뜻을 받들어 싸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주인공은 이런 식의 전투의 당위성에 의문을 품지만, 결국 동료들의 기세에 억눌려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전투에 들어가자 이 소년들의 모습은 변화한다. 서럽게 울거나 전쟁의 잔인함에 넋이 나가거나 혹은 끝까지 맹목적으로 싸우는 등 제각각 다르다. 이 영화는 소년들이 나치에 의해 철저한 세뇌 교육을 받은 상태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 때문에 평범한 소년들이 갑자기 전장에 끌려왔지만, 반드시 싸우려고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만들어진 이념과 전쟁이라는 현실의 충돌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포화 속으로>의 전개는 <죽음의 다리>와는 사뭇 다르다. 먼저 그들이 전투에 임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예감할 수 있는 단서라면, 막연한 애국심뿐이다. 주인공인 오장범 중대장(배우 T.O.P)은 이들 사이에서 전쟁의 이유에 대해 사유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어머니, 인민군은 뿔 달린 괴물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은 대체 왜 해야 하나요?” 그는 인민군이 절대적인 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쟁의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언제 가졌는지조차 모르게 곧 사라진다. 그를 필두로, 모든 학도병은 전쟁과 항복의 갈림길에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쟁을 선택한다. 전투에 임하는 학도병의 태도도 <죽음의 다리>와 사뭇 다르다. 두려워서 울거나 겁을 먹고 숨는 학도병들은 아무도 없다. 달랑 전투 한 번을 해 보았다는 오장범은 홀로 수십 명의 인민군을 쓰러뜨리며 화려하게 싸운다. 이런 전투 씬이 더욱 영화를 비현실적이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게 한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데일리안 칼럼을 통해서, “학도병들이 엄청난 화력이나 전쟁 수행 능력을 겸비하고 전투에 임했을 리 없다”며, “<포화속으로>는 좀더 휴머니즘이나 약자의 정서, 사실주의 등 학도병의 시선을 담는 데 충실했어야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겨운 ‘반공’과 ‘국가주의’ 코드

<포화 속으로>는 반공을 과거 선전용 영화 식으로 드러내놓고 부르짖지는 않는다. 캐릭터의 입을 빌어 전달하는 영화의 기본적인 시각은 ‘인민군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란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말하는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의 이면은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인민군 대장인 박무랑(배우 차승원)은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대화시킨 듯한 과장된 말투(‘간나 새끼’!)와, 시종일관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똥폼’으로 보는 이에게 미묘한 거부감을 안겨준다. 물론 학도병들에게 사전에 도망칠 시간을 주는 인정을 베풀 정도로 나름의 관용을 갖춘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리 있는 조언을 하는 부하를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신사적이고 인간미 있는 남한군 대위(배우 김승우)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면 일반적인 악역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는 캐릭터이다. 인민군은 그들이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철저히 적이며 공격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한 학도병은 손에 폭탄을 들고 인민군 탱크를 향해 ‘가미가제’식 돌진하기까지 한다. 매우 감동적인 양 연출되고 있는 장면이지만, 보는 이로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온몸을 내던져 국가를 수호하라.’는 애국주의에 대한 찬양이 거북할 다름이다.

이같은 영화의 성향은 미국의 최근 전쟁영화인 <허트 로커>같은 작품과 사뭇 대비된다. <허트 로커>에서는 일상 생활과 공존하는 현대적 전쟁에 중독된 듯 빠져드는 인물의 내면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포화 속으로>가 개봉되기 전 마지막으로 히트한 전쟁 대작인 <웰컴 투 동막골>같은 작품은, 전쟁 전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마을에 떨어진 군인의 변화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담아냈다. 오래된 ‘반공’이나 애국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의식과 전달 방법을 찾아 보려 애썼던 영화에 비해, <포화 속으로>는 여러 면에서 뒤로 걷고 있다.

이제부터 듣고 싶은 것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포화 속으로>의 장점을 찾자면, 바로 1백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한 결과인 화려한 액션이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은 전쟁 영화가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로 꼽히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멋진 영상이 장점이 되는 것은 좋은 스토리가 동반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토미노 유시유키 감독은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아름답게만 담으려고 노력한 영상은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라고 말했던 바 있다. 전쟁 영화에서는 특히 가벼움을 경계하고, 전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에 대한 이런 성찰이 부족하다. 이 영화 속 학도병들은 ‘우리가 우리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한다. 그러나 실제 한국전쟁에 대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민족끼리의 분쟁인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학도병들이 모두 한국전쟁에 단순히 ‘조국을 지키는’ 마음으로 임했다 보기는 어렵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증오심이 너무 강해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확고했던 학도병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강제징용을 당해 억지로 끌려왔을 뿐 남한이 곧 조국이라는 개념이 없고, 애초에 싸울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학도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1999년작 <씬 레드 라인>이 한국 전쟁영화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씬 레드 라인>은 세계 2차대전 당시 태평양의 격전지 과달카날 섬에서의 일본군과 미군의 전투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미군이 곧 선이라고 정의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누구도 절대적으로 정의롭지 않음에도 서로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영상 속에서 저마다의 삶과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의미 없이 죽어가는 이유를 성찰하고, 전쟁을 통한 대립의 허무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던 한국전쟁에는, 무조건적인 남한군의 미화나 영웅담보다는 <씬 레드 라인>의 접근 방식이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한국전쟁 60주년의 해에, 한국전쟁을 진정으로 추모한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영화의 등장을 바라본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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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잘봤어요 한국 전쟁영화의 전형적인 틀이 고루하게 느껴지는데 기사에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포화 속으로를 보고 왜 네이버 평점은 높지? 하고 이해가 안갔는데 기사는 공감이 많이 되네요
  • 박보람

    저도 영화에는 영상의 미쟝센이나 멋진 배우들도 중요하지만 그건 탄탄하고 의미 있는 텍스트가 기본으로 받쳐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멋진 장면, 영상 기법을 구사하면서 내용이 부실한 영화를 보면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한국전쟁을 보는 시선을 단순히 애국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한국전쟁에서 애국심을 보겠다는건...) 당시의 첨예했던 정치, 사회 상황을 좀 더 조명할 수 있는 콘텐츠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사 정말 잘봤어요!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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