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위험한 캐스팅

최근 박경림, 소녀시대의 제시카,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등 많은 연예인이 너도나도 뮤지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티켓 파워를 과시하는 그들의 뮤지컬 진출에 대해 혹자는 대중화에 공헌했다는 고운 시선을 던지는 반면, 뮤지컬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목소리 역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 뮤지컬의 연예인 캐스팅은 과연 안전할까?
뮤지컬 주연으로 본인의 이름을 올리는 연예인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시아준수가 출연했던 <모차르트>의 경우, 해당 회차 공연의 티켓을 구하려고 높은 프리미엄 가격 전쟁이 붙는, 뮤지컬계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연예인이 등장하는 공연의 높은 인기만큼 과연 국내 뮤지컬의 질도 함께 성장했을까? 뚜껑을 열어 보니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연예인의 뮤지컬 출연, 꿀일까? 독일까?

준비도 안 하고 무대에 오르려고?
연예인의 뮤지컬 진출이 유독 활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연예인이 출연하는 뮤지컬은 이제 일시적 붐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하지만, 이때 중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뮤지컬계의 흐름을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객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신인 뮤지컬 배우’가 극히 드물다. 일례로 뮤지컬 <헤어 스프레이>의 주연 ‘트레이시’ 역할로 캐스팅된 박경림은 자질과 실력에 대해 지적받으며 뮤지컬 팬들의 악평을 면하지 못했다. 공식 사이트 게시판에는 그녀에 대해 ‘주연을 맡다니 정말 양심도 없다.’, ‘지불한 대가에 상응하지 못하는 최악의 공연’이라는 내용의 강도 높은 비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녀 역시 뮤지컬에는 ‘생초보’임에도 첫 출연부터 단박에 주연을 맡아버린 것에서 비롯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연예인은 대부분 무대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기본기 부족으로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기 십상이다.
자질 부족보다 더한 문제는 그들의 준비 부족이다. 뮤지컬에 출연하는 많은 연예인이 바쁜 스케줄을 뛰며 다른 활동을 병행한다. 이는 그들의 다른 활동을 통해 해당 뮤지컬이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누리는 긍정성과 더불어 그들이 뮤지컬 활동에 온전히 전념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 역시 담고 있다. 실제로 뮤지컬 도전을 선언하는 연예인 중 일부는 뮤지컬을 단순히 이미지 변신 혹은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베테랑 뮤지컬 배우 류정한은, “좋아서 하는 거라면 다른 일 딱 접고 3개월 정도는 연습에 매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BAZZAR 2009년 12월호).”라며 불성실한 연예인 뮤지컬 배우에 대한 탐탁지 않은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힌 돌 밀어내는 굴러온 돌
연예인의 뮤지컬 캐스팅 탓에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박힌 돌’인 뮤지컬 배우다. 뮤지컬 사전경험이 부족한 연예인이 주연을 맡을 경우, 함께 무대에 올라야 하는 타 배우의 수고는 배가 된다. 초보를 위하여 몇 번이고 호흡을 맞추고, 그들의
스케줄에 따라 연습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조정되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연예인이 왕처럼 대접받는 환경에서 뮤지컬 배우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개인적인 수고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제작사가 연예인을 선호하면서, 실력 있는 뮤지컬 배우가 주연 캐스팅 전선에서 배제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예인은 배역을 따기 위해 당연히 거치는 치열한 공식 오디션이 생략되거나 소수 관계자와의 미팅 정도로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낙하산’ 투입된 연예인 때문에 온전한 노력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뮤지컬 배우의 권리는 누가 보장하는가. 부업인 연예인이 주연을 꿰차고 본업인 배우가 조연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현재 국내 뮤지컬계의 현실이다. 남아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연예인의 높은 개런티다. 보통 연예인은 회당 출연료가 200~300만 원으로, 여기에 러닝 개런티까지 합산하면 1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경우가 많아 톱 뮤지컬 배우와 비교하면 몇 배 이상의 몸값을 자랑한다. 연예인 캐스팅에 대한 막대한 비용 출혈이 곧 뮤지컬 배우의 출연료 삭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불 보듯 뻔하다.
뮤지컬의 대중화? 실상은 그저 상업화
혹자는 연예인의 뮤지컬 출연이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에 머물러 있던 국내 뮤지컬이 대중화되는 기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티켓 파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형제는 용감했다>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그룹 ‘샤이니’의 온유, <홍길동>에 나란히 캐스팅된 그룹 ‘슈퍼주니어’의 예성과 성민 등처럼 ‘팬덤’의 파워로 일반인도 뮤지컬을 찾는 대중화에 이바지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안일한 시각이다. 공연의 질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초에 좋아하는 스타의 색다른 모습을 보려는 목적인 팬의 뮤지컬 관람은 한때의 이벤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공연의 퀄러티로 인해서, 뮤지컬에 진심으로 입문하려는 관객과 기존의 뮤지컬 마니아가 뮤지컬에 품은 애정과 관심을 잃게 되는 일이 더욱 빠르지 않을까?
현재 국내 뮤지컬계는 경제적 불황과 성장 과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작사의 히든카드가 연예인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뮤지컬 연예인 캐스팅 열풍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해야 한다. 작품이 아닌 도전만 남은 공연장이 정말 대중화된 뮤지컬의 모습일까? 잘 고른 연예인 하나가 시장 전체를 선도하는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 ‘대중화’를 부르짖으며 실상은 스타의 단발성 등장에 따른 반짝 효과에만 의존하는 것은, 뮤지컬계에 짙어지는 상업성과 질적 수준 하락만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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