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미경]제2강 TV사극을 계기로 보는 전통사회 여성의 지위

 


조선시대 여성 범죄의 수사와 처리에서 크게 활약하였던 다모(茶母)나, 의녀 출신으로 왕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대장금은 여성에 대한 제약이 심했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열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영향을 받았는지, 왕비나 후궁과 같은 전통적인 사극의 주인공들에게서도 요즈음에는 이전에 방영된 사극에 비하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근래 여성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사극의 이러한 여성상이 원래 우리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사회적 속박과 차별 속에서 그저 소극적이고 피동적으로 살아갔던 모습은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정착된 조선후기 양반 사대부 가문에서만 나타났던 것인데, 마치 전통사회의 여성들이 모두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갔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곡된 전통사회의 여성상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조선후기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낮지 않았으며 차별도 심하지 않았다. 여성들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거나, 고려사회에서는 여자가 재산을 상속하고 호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들기도 한다. 과연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신라의 여왕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신라에서는 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다. 선덕여왕 때 진골귀족이었던 비담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비담이 반란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여자가 왕이 되어 정치가 어지럽다는 것이었다. 요즈음의 관점으로 보면 전형적인 성 차별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나 당시 많은 귀족들은 비담에게 동조하였으며, 왕의 자리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다행히 김춘추와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편을 들었다. 진골귀족이기는 하였지만 김춘추는 신흥세력으로서 요즘의 표현대로 하자면 비주류였다. 김유신은 가야 출신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복한 다음 화합정책의 일환으로 진골귀족임을 인정한 것이므로 김춘추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집안이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으로서는 정치적 생명을 걸고 선덕여왕의 편을 들어 다른 진골귀족들과 대결한 셈이었다. 반란을 완전히 수습하지 못한 채 선덕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진덕이 왕이 되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활약으로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이제 정치적 실권은 이들에게 넘어갔다. 진덕이 죽고 난 다음, 왕의 자리는 자연히 김춘추에게 넘어갔다.

비담의 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에도 여성이라는 것은 여전히 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크게 불리한 요인이었다. 다만, 선덕이나 진덕은 다른 사람에 비해 핵심 왕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왕이 될 수 있었으며 이것은 훗날 왕이 된 진성여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은 고려 때도 존재하였다. 고려 사회에서 제도적으로는 여성도 상속권이 있었으나, 장성한 아들이 있을 경우 일차적으로 아들이 상속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제사를 지내거나 가문을 대표하는 것도 주로 남성의 몫이었다.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낮아졌다. 조선초기에 처첩제도가 생겨나고 서얼차별이 제도화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확실해졌다. 조선후기에 들어오면 가부장적 질서가 확립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제도적으로 고착되었다. 사회적 차별뿐 아니라 제도적 차별도 정착된 것이다.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지만,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재된다. 조선사회의 다모는 말 그대로 원래 관청에서 차를 끓이는 일을 맡아보았다. 여성 범죄를 처리하기는 하였지만, 사극 <다모>에 나오는 것처럼 중요한 사건들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조선후기에는 단순한 관비로 전락하였다.

<대장금> 또한 실록에 몇 차례 나오는 단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가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다. ‘장금(長今)’은 여자에 흔히 붙여지는 보통명사와도 같은 이름으로, 얼마 되지 않은 기록조차 동일인에 관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장금>에서처럼 의녀가 실제로 왕의 주치의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기록으로 뒷받침이 되지도 않는다. 설사 <다모>나 <대장금>에 나오는 여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사회를 통틀어 그 숫자가 얼마나 되었을지 의문이다. 그런 여성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여 화제가 될 만큼 드물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역사 이야기로서 <다모>나 <대장금>과 같은 사극이 주는 메시지는 뛰어난 작가적 상상력보다는 그 상상력이 지배층 남성이 아닌 일반 백성층 여성에게 부여된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작가적 상상력은 여성, 그리고 일반 백성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근래 역사학에서는 타자(他者)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타자는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다인종 사회의 소수인종, 자본 중심 사회의 노동자, 도시 중심 사회의 농민 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말한다. <다모>나 <대장금>의 작가가 사회적 약자에게 상상력을 불어 넣었듯이, 우리 사회도 이들 타자에 대한 관심을 높일 때가 아닐까?



   * 다모, 대장금의 이미지는 MBC웹사이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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