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왜곡’을 위한 변명

관중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하는 픽션, 하이브리드 역사극. 그럼에도, 우리가 그러한 문화를 장려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은 바 있다. 탄탄한 출연진과 감독의 네임밸루 덕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새 영화로, 박흥용 작가의 동명 흥행 만화 원작의 영화로 스토리까지 보증되어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군관을 대신해 ‘대동계’를 결성해 왜군과 싸운 주인공들, 하지만 조정에선 이를 반역이라며 해체해 버리고, 주인공 중 한 명은 모반의 야심을 품는다. 반면 맹인 검객인 그 동지는 그를 저지하려 하는데…

하지만, 이렇게 스토리를 읽어나가다 보면 아리송해지는 부분이 있다. ‘임진왜란은 실제 역사적 사실인데, 대동계라는 단체도 실제로 있었나? 등장인물은 실제 역사적 인물인가?’ 여러 부분에 역사적 근거를 둔 이 작품은 그렇게 ‘잘 만들어진 픽션’ 덕분에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관중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태롭게 한다. 비슷한 연유로 숱한 역사극 콘텐츠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라고 말하기엔 역사의식 해이가 가져올 재앙은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폐해와 우려에도 이런 이종 역사극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거부할 이유 없는 ‘말랑말랑한’ 역사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런 취약점에 가린 장점에 있다. 대중이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으면서도 ‘역사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공증된 사실만을 전하는 역사서보다 훨씬 ‘말랑말랑’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과장되어버린 탓에 이러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역사를 대중이 관심 둘 수 있도록 재해석해내는 작업에는 큰 의의가 있다. 결국,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잘 연구하고 구축하는 한편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하는, 역사 연구의 ‘두 개의 축’ 개발에 관한 얘기이다. 십수 년 전, 역사 콘텐츠가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절과 비교해, 국민의 역사적 의식 수준은 얼마나 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명성황후가 누구였고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주몽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고구려를 세웠는지, 허준이 어떤 점 때문에 그토록 명의로 칭송 받는지 알게 되었다. 그 효과가 아직은 ‘일부분’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영향력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평가하기 어렵다. 외국인들도 ‘명성황후’를 알고 있으며,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한식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최근의 드라마 <동이>나 <거상 김만덕> 등 끊이지 않고 배출되는 것 역시 그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가 역사책이라는 오해를 범하지 말라

얼마 전 성공리에 종방한 TV드라마 <추노>는 대중으로부터 옛날 노비제도의 비문명성과 잔인함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상태 국제 문화대학원 대학교 석좌교수는 신문 칼럼을 통해 그것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역사적인 연구에 기인하자면’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상과 추측에 기반하고 있는 역사에 ‘조금도 달라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사실 그 누구도 역사극 콘텐츠라는 걸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다룬 여러 역사 콘텐츠를 보더라도, 어떤 곳에서는 천재적 지략가로 표현되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뱀같이 짝이 없는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 여러 방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역사에 애정을 갖게 하는 지름길이다. <추노>를 보기 전까지 노비 문화의 잔혹성에 대해 가슴 깊이 헤아려 본 이가 있었을까? 노비도 진실되게 사랑을 했고, 우리와 같은 사고 체계를 갖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그 대상이 ‘역사’이기에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위험한 일이지만 동시에, ‘역사’이기에, 우리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역사를 다시 한 번 들추는 그 의욕에 응원을 보내야 한다.

역사적 기반 취약성? 누가 문화의 가능성에 돌을 던지는가

세계적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 <인글리로어스 배스터즈>로 또 한 번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는, 역사 속에서 실패했던 극장 히틀러 암살 작전이 성공한다는 설정으로 흘러간다. 극장 히틀러 암살 작전이 실패한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니 필요 없다는 듯 픽션이라는 명시 하나 없이 말이다. 결국 문제는 문화 의식 수준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에게 왜 역사와 달리 히틀러 암살 작전을 성공으로 설정했는지 돌을 던졌던가. 문화를 즐긴다면, ‘문화 콘텐츠는 문화 콘텐츠일 뿐이다.’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인한 의식 수준으로는, ‘보는 이에게 끼칠 수 있는 악효과’에 대해 고려할 여지만을 남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채울 대안을 필요로 해야 할 뿐, 문화의 가능성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역사적 기반이 빈약하므로 이종 문화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약한 역사 기반이라는 문제의 2차적 재앙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여장 남자로 나와 김홍도와의 애정 전선을 그렸다는 파격적 픽션에 대해 너무 재미있다는 호평 이면에 수많은 질타와 우려가 던져졌다. 하지만, 그 콘텐츠에게 ‘방영하지 마라.’는 말 대신, ‘재미있지만, 매화의 첫 머리에 실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한 뒤 극을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면 어땠을까? 위 논지들은 절대로 ‘새로운 시도의 역사극 문화 콘텐츠’가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역사 기반을 바로잡을 수 있는 도구로써 활용될 수 있으며, 그 이전에 ‘문화의 진전’이기에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위험성’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질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해서는 발전이 없고, 반대로 관객들의 뚜렷한 비판 의식이 없다면 역사는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관객의 관심과 질타, 문화의 끝없는 시도, 그 사이에서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지금 문화에 대한 좀더 열린 시야를 수용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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