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다페> 엠마누엘 갓의 silent ballet┃ 콧대 낮은 현대예술

예상대로였다. 역시 난해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옆에 앉은 동료 학생기자와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수많은 의문 부호가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 엠마누엘 갓Emanuel Gat의 silent ballet의 첫 시작이었다.

‘현대 예술’하면 고등학교 때 수능지문에서 많이 보았던 마르쉘 뒤샹의 작품 <호수>가 생각난다. 변기통에 호수라는 의미를 부여한 바로 그 작품. 이와 같이 어렵지만 또 해석하는 사람에 달려있는 것이 현대 예술이다. 많은 사람이 현대예술이 어렵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물론 실제로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 포용성 있는 예술이 한편으로는 여타의 ‘무게 좀 잡는’ 예술과 다르다. 모다페도 이의 선상에 둘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프랑스 안무가 임마누엘 갓이 구상한 무대의 막이 올랐고 두 명의 여자무용수와 다섯 명의 남자무용수가 침묵을 깨고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역시 모던아트야. 그냥••• 뛰어다니는구나•••.’ 어떤 의미를 흡수하거나 부여할 여력 없이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런 낯설음이 ‘난해하다’는 표현이상으로 해석되기 어려웠다.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동작으로 표현한다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자신만의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했다. 그저 작품에서 의미를 받아들이려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니 능동적인 해석이 가능해졌다. 좀더 작품에 집중력을 가지고 감상하니, 각각의 동작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니 이해를 ‘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이들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모두 제각기 다르게 발을 구르고 몸을 꺾고, 정신 없이 달리고! 조금은 괴이한 동작으로 무대가 펼쳐졌다. 이는 십인 십 색의 다양한 인간상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똑같은 일은 절대 일어날 리 없지만, 또 비슷한 것이 바로 삶이 아니던가. 연애만해도 그렇다. 모든 이들의 연애 사는 다르지만, 동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면 연인이 헤어진 뒤 듣는 노래가 다 본인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경험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각계전투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같은 ‘움직임’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좀더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어졌다. 신나게 무대를 뛰어다니며 각각의 삶을 살다가 서로에게 기대는 장면은 의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듯 했다. 중앙의 버팀목인 두 명의 무용수가 조용히 기대는 무리를 뒤로 하고 천천히 중앙을 빠져 나와 기대던 또 다른 이들에게 기댄다. 버팀목이 되었던 사람이 의존하는 사람이 되는 것. 누구나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한 인간관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더욱 소름 끼치는 대목은 너무나 많은 이들의 버팀목이 된 이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줄 이를 위해 떠나고, 그에게 기대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없어진 버팀목 앞에 힘들어진다. 이처럼 그들은 인간관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몸짓으로 표현해낸다. 이 순간 추상적이기보다 직설적으로 무대가 다가왔다. 처음처럼 어렵다기보다 오히려 쉽게 받아들여졌다.

침묵이 만들어 내는 소리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들이 신체로 만들어 내는 ‘소리’다. 본래 음악을 공부했다가 안무가로 전향하여 짧은 시간 만에 세계의 주목 받는 무용수가 된 임마누엘 갓이기에, 그가 무대에서 어떤 음악을 사용할 지 기대했다. 남녀 무용수가 만들어 내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무대 바닥과 맨발바닥의 마찰로 인해 나는 소리. 그가 만들어낸 음악은 바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침묵을 깨고 밝은 조명과 함께 무대를 누비기 무용수들. 그들의 호흡은 피아니스트가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 나가는 그 현대예술을 떠올리게 했다. 웅성거리는 관객들이 만들어낸 소리를 음악으로 정의했던 것처럼 이들의 숨소리와 더불어 마찰 때문에 들리는 발바닥소리, CF의 한 장면같이 휘날리면서 반사되는 땀 그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었다.

아, 이들의 숨겨진 은공의 시간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다른 동작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룬, 순서도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은 난해한 동작을 발맞춰 전환하는 무용수의 ‘잔인한’ 기억이 공연 내내 사무쳤다. 이런 동작을 만들기 위해 흩날리는 땀방울을 천백 번은 흘렸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소재를 기준으로 작품을 감상하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땀방울에 집중하든 중요한 건 예술을 그대로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현대예술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감상의 폭을 늘리는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가. 이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피곤한’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공연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생적인 시선을 도모한다. 돌은 어쩌면 그 해석을 기피하고 그저 모르겠다고 일관한 처음의 자세에 던져야 할 것이다. 인간의 몸이 창출하는 놀랍도록 기이한 동작을 감상하며, 현대예술에 대한 기피증은 씻어버릴 필요가 있다. 예술에 정답은 없으니까.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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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맞아요, 예술에 답은 없으니까! 가끔 보면 현대예술이 너무 어려워 이게 뭐지, 하고 더 자세히 보게 되는데 오히려 현대예술 작품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없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현대예술은 작품을 보는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그게 현대예술의 가치인 것 같기도 하고ㅎㅎ 못 봐서 아쉽지만 ㅠ 기회가 된다면 보고싶어요!
  • 뿌리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럽젠 식구들은 어떤 기준(보통 선입견)에 의해 문화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 현대예술은 사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어려운것같아요.
    말씀대로, 쉽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접근 자체를 제가 어렵게 해서 그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답니다.
    아마도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주 현대예술을 접해야겠죠.
    제목이 참 끌리네요.
    콧대낮은 현대예술...
    그래요, 현대예술의 콧대를 낮게 해주도록 자주 보면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습니다.
    엠마누엘 갓의 silent ballet에 대한 멋진 포스팅 잘 봤습니다.
  • 모다페..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배려하는 무용제인거 같아요.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머리를 복잡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쉽게 내비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게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공연을 끝까지 보았을 때 무언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게 되지만 자신만의 답을 유추해내고 그걸 믿을 수 있게 되는 그런 공연이니까요.
    각 사람들의 삶이 다 다르듯이 그 공연 하나만 보더라도 자신의 삶의 비추어 보게 되니까
    각자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게 되니.. 그런게 참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무용제를 다 보고 나서라도 도대체 이게 뭐야? 뭘 말하자는 거지?
    혹은 다른 사람이 해석한 걸 듣거나 관련 포스팅을 보고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만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일도 생기잖아요..
    조금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면
    보물을 보게 될지 혹 모르잖아요^^
    공연 보고 싶네요..
    천혜진 기자님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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