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5화 11번의 히칭끝에 우리가 알래스카로 간 까닭은?

 
 
    6일간의 멋진 로키 대탐험을 끝낸 우리는 캘거리에서 하루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휴.식.시.간?
사실 일주일의 반을 넘어서면 좀비처럼 도서관부터 찾아 다니는 마감병의 끝을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32시간 버스를 타고 화이트 호스까지 간 후, 화이트 호스부터 앵커리지까지는 히칭을 할 계획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우리에게 만반의 준비란 언제나 우선 순위 식량 구비! 버스가 세워주는 곳에서 끼니를 해결 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깨지기 때문이다. 32시간의 버스 여행에 그 동안 장거리 버스를 많이 탔기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으나
진짜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하릴없이 360도 평지를 달리면 자다가 일어나서 과자 좀 주워먹고는 다시 자는 것을
반복하고, 계속 되는 산맥에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달리면 미식거리는 속을 콜라로 달래며 ‘산들아~ 이제 그만 사라져 줄래?’
하루에 한 대 있는 이 버스는 길을 가다 만나는 집집마다 들려 우편물을 전해주고 경치가 좋은 곳이 나타나면 잠시 사진
찍을 시간까지 주기도 하는 것이 자신을 우편 배달 버스나 투어 버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굽이굽이 산맥 위에 푸른 강과 호수가 이어지고 종종 아담한 통나무집들이 멋진 풍경을 이루니 좁은 버스
안에서 오징어처럼 말려서라지만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한번에 앵커리지까지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우선 캐나다 국경도시인 비버크릭까지를 목표로 잡고
종이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쓰고 고속도로 근처로 갔다. 노숙자처럼 보이면 안되기에 나름대로(?) 단정한 옷차림에, 얼굴에는
그 동안 많이 연습한 그 미소를, 엄지 손가락 세운 오른 손을 번쩍 들고 ‘Beever Creek, please~’ 그러나
정말 쉽지 않다. 차들도 몇 대 안 지나다닐 뿐더러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또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쌩쌩 지나쳐버린다. 그렇게 몇 십분 지나 어떤 멋진 언니가 비버크릭과 도슨 시티로 갈라지는 길목까지 태워준
첫번째 히칭 이후, 우리는 뮤직페스티벌이 열린다는 도슨 시티로 향하는 차들이 많을 것을 생각해 목적지를 도슨 시티로 바꾸고
3번 히칭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슨 시티까지 5~6시간 걸린다는 처음 태워 준 언니의 말과는 달리 처음 히칭
이후 6시간이 지났건만 우리는 반도 오지 못했고 뮤직 페스티벌이 참가하고자 히칭을 하는 무리를 우리말고도 2팀이나 더
볼 수 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어째 한참 북쪽인데도 이리 더운 건지)에 차들은 몇 대 지나다니지 않고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또 쌩하며 그냥 지나쳐버리는 차들. 아~ 돌아 갈 수도 없고 이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진실로 첩첩산중이다. 그 순간 갑자기
우리를 지나쳐 버린 차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끝까지 웃고 있던 우리가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연인
조니슨과 리사, 역시 우리의 미소는 여기에서도 통하는 구나~^^뮤직페스티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는 그들과는 같은 또래여서
그런지 많은 것이 잘 통했다. 5시간 만에 도슨시티에 도착한 후, 행운을 빈다며 굳은 악수를 청하는 그들에게서 진정으로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또한 조니슨이 건축학도를 온몸으로 표현한 것은 잊지 못할 것이다. 예전 여자
친구가 건축학도였는데 3개월동안 못 봤다는..
  세계 어느 곳이나 건축학도들의 생활상은 어찌나 똑같다 못해 처절한지..) 도슨
시티까지 오긴 왔건만 이제부터 어찌 해야하는 지 막막하기만 했다.갑자기 비는 오기 시작하고 뮤직페스티벌 덕택에
방이 있는 숙소는 진짜 비싼 호텔 밖에 없고 32시간 장거리 버스를 거쳐 이른 아침부터 감행한 히칭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렇게 고생은 있는대로 해가며 올라왔건만 앵커리지로 가는 버스비는
화이트호스에서 앵커리지로 가는 버스비의 2배(어째서 2배나 비싼지에 관해 그 다음날 엄청난 비포장도로를 보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였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그런 숙박난 속에서도
호스텔에 방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호스텔에 도착한 우리는 내일 일은 내일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꿈속에서 우리는 분명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히칭은 아무나 하나. 히칭은 아~무나 하나!!’
     
   
    입국 스탬프 조차 찍히지 않는 간단한 입국 심사에 산 꼭대기 고속도로 한가운데 덜렁 남겨진 우리,
앞길이 막막할 뿐이었다. 꿋꿋하게 생활 신조 1(아직도 모른다고? 마지막이다. 먹고 하자~)을 지키면서 1시간 가량 히치를
했으나 실패, 서서히 저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날씨는 춥고 ‘안되면 저 심사관들이 우릴 재워 줄꺼야!’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오랜 심사 끝에 나오는 캠핑카 한대, 이제껏 히치를 한 경험으로 캠핑카는
거의 새워 주지 않기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히치를 하는데 눈 앞에서 슬슬 멈추는 차! 감동의 순간이었다. 다시 슬슬 가버릴까봐
냅따 뛰어가서 ‘thank you’를 연발하는데 자리가 많이 없다면서 뒤 좌석의 짐까지 치워주신다. 자리를 잡고 자세히
보니 할머니 두 분이시다. 히치를 했으면 보은의 차원으로 태워 준 분들을 재밌게 해 드려야 하는게 의무인데 처음에 몇
개의 질문들이 오간 이후로는 할머니들이라 선뜻 말이 입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렇지만 정말 대단한 할머니들이다. 팻할머니는
65세이고 진할머니는 75세인데 두분이서 캠핑카를 몰고 알래스카의 발데즈까지 가신단다. 우리가 캘거리에서 화이트호스까지
3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하니까 할머니들은 몬트리얼에서 화이트호스까지 92시간을 버스를 타셨단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았지.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로 1시간 반을 달렸다. 완전 비포장도로에 산을 넘나드는 꼬부랑 길을 운전하시느라 정말 힘들어
보였다.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고 할머니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서 사진도 같이 찍고 차에 올라타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신나게 애교 한판 떨어야지~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주절 주절 얘기하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꺼내 펼쳤더니
할머니들이 너무나 좋아한다. 역시 한국이나 여기나 할머니들 이야기 좋아하는 건 똑같다니깐.
    그렇게 화기애애 한 분위기 속에 어느새 Tok에 도착했다. 우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우리의
호스텔을 물어본 뒤 우리를 그 곳까지 데려다 주시겠단다.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지만 우선 우리는 히치를 더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난감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 드렸더니 팻 할머니께서 피곤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쉬었다가 우리를 더 태워
주시겠단다. 결국 너무나도 죄송스러워서 Tok에 머물겠다고 했더니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호스텔 위치를 알아 보잖다.
그러나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을 닫았고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는데 우리를 마치 친손녀 소개하듯 사람들한테 얘기하신다. 한국에서
왔는데 영어도 잘한다면서 사랑스럽지 않냐고. 그렇게 찾아간 호스텔에 우리가 묵을 방까지 꼼꼼히 점검하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방값이 평소 내던거랑 비슷하냐고 걱정스럽게 물으시는 진 할머니 말씀에 조금 비싸지만 괜찮다고 했더니 돈을 꺼내시면서 막무가내로
손에 쥐어 주신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주는 용돈이라며. 아 눈물이 핑 돈다. 생전 처음 본 우리한테 손녀딸 이상의 정을
주시면서 따뜻하게 대해주신 두 할머니, 먼 타지에서 이 같은 정에 굶주린 우리는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조차 없었다.(이 독하기로 유명한 한은화가 울었다면 할 말 다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느낀다. 눈이 파랗건
까맣건 간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것, 똑같이 사랑과 정이라는 두 글자로 인생을 살아 간다는 것, 그리고 점점 더
갚아야 할 빚들이 늘어난다는 것. 팻, 진 할머니 영원히 잊지 못할꺼에요~저희에게 나누어주신 정, 잊지 않고 나눌께요.
감사합니다.
     
   
    괴성을 지르는 우리를 허허~ 하는 웃음으로 반겨주신 마이크 할아버지와의 드라이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의 발음 교정 지도에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나면 가이드까지 자청하시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허허~하는 웃음으로 우리를 너무나 귀엽게 봐 주신다. 이미 애교 100단을 넘어서서 고난이의 술수를 부린 건 우리였지만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하다.(아~ 차 얻어탄 값은 했구나!! ^^) 어느새 글랜아랜에 도착해서 지도를
쫙 펼쳐드시더니 우리를 앵커리지에서 좀 더 가까운 파머라는 곳까지 데려다 주신단다. 아싸~파머에서 앵커리지까지는 1시간
거리란 말이다! 파머까지 가는 동안 이 캠핑카가 아예 우리 차가 된 마냥 편하게 늘어져 있었다. 총 7-8시간 걸려 파머에
도착해 보니 비가 온다. 몇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으시는 마이크 할아버지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씩씩하게 문제 없다고 얘기하고
찢어 주신 앵커리지 지도까지 잘 받아 챙기고 가려는데 햄버거를 사 주시겠단다. 처음의 우리라면 태워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럴 수 없다고 했겠지만 이제 우리는 변했다.
    넉살 좋게 사주신 햄버거까지 잘 먹고 우리의 루트를 꼬치꼬치 물으시더니 스워드에서 보자고 하시며 떠나시는
할아버지 마중까지 잘 했다. 이제 1시간만 더 가면 앵커리지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바로 길가에 나서서 사인
들기가 무섭게 서는 차 한대, 반신반의 하는 나를 두고 뛰어가는 예현이의 얼굴에서 차 잡았다라는 표정을 읽고(같이
다닌지 이제 근 한달째다. 주름 하나 잡혀도 무슨 얘기하는지 대충 아는 경지에 올랐다.)겁나게 뛰어가서 날쌔게
올라타서 보니 잘생긴 총각 한 명과 말만한 개 두마리가 뒷 좌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운전을 하고 있는
동양인 여자의 얼굴이 한국 사람 같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입양되었단다. 우리의 히칭 스토리를 얘기해가며
재밌게 앵커리지로 향하다가 뒤에 앉아 있던 조쉬가 잘 아는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저녁 같이 먹자는 제의를 해온다.
아까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햄버거가 뱃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정보도 얻고 무언가 재밌을 것 같아서 조금 망설이다가
응해 버렸다.

지금의 이 만남이 우리를 앵커리지에 빈대 붙어가며 7일간 묶어두게 한 계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앵커리지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는 조쉬와 엠블린은 7시에 호스텔에서 보자는 약속과 함께 우리를 앵커리지 근처의 도로에
내려주었다. 마지막 히칭에 성공해서 드디어 앵커리지 시내에 도착한 우리, 11번의 히칭에 캘거리부터 앵커리지까지
4박 5일이 걸려 도착한 이 감격 이 기쁨을 그 어떤 단어로도 감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빈곤한
주머니를 달래기 위해 시작한 히칭, 물론 빈곤한 우리의 경제적인 주머니도 달래주었지만 그 보다 더 큰 마음과
생각의 주머니까지 채워 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온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히칭을 하면서 만난 많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에 여행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런 만남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행운아들이라는
것! 자 앞으로 우리의 행로는? 이제부터 연어 낚시 하러 가야지~(알래스카에 온 바로 그 한가지 이유! 우리는
여전히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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