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2화 미국, 자유와 방종이 넘치는 나라

 
 
     
 
시차까지 합치면 40시간이나 되는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우리는 이틀 동안이나 잠을 거의자지 못해서
비몽사몽 간에 입국 수속을 했다. 제대로 된 왕복 항공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국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비행기 안에서
미국 입국 대 작전 계획을 세웠다. ‘우리의 루트 상에서 이렇고 저렇고..중얼중얼’ 그러나 완벽한 계획에 비장한 각오로
임한 것이 너무나 허무하게도 예현이에게는 두 세가지 질문만을, 나에게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이 심사원 아저씨 보는 눈
있다. ^^) 6개월짜리 비자 도장이 꽝꽝! 자! 드디어 미국이다~ 백주 대낮에 키스하는 연인들.. 왜이래 우리 동성이야!
   
 
  반쯤 자고 있는 몸을 달래며 우리가 신나게 제일 먼저 간 곳은 동성애자들이 모여 사는 무지개 깃발의
거리 카스트로, 거리에 들어서자 마자 무지개 깃발이 오색찬란하게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는 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동성끼리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유난히 건장하고 멋진 남자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고, 길 한복판에서 열렬히
키스하는 것이 우리에게만 민망한 이곳은 이제껏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성 관념을 단번에 깨뜨려 버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합체의 하얀 겉껍질이 한꺼풀 벗겨지는 순간의 아찔함이랄까.. 이 아찔함 덕분에 시차로 인해 반쯤 감긴 눈이 번쩍 뜨이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경보를 하고 있는 이, 삼중의 효과를 얻었지만서도..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성인 용품 가게가 거리를
따라 즐비하다는 것, 낯 뜨거워지는 성인 비디오들이 가게 앞 진열장에 가득 진열되어 있는데 그 비디오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팬티만 입은 채 건장한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들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그러나 소심한 우리는
차마 가게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어머 어머 왠일이야~”를 연발하며 유리가 뚫어져라 쳐다보며 즐거워했다. ^^;
남자, 여자의 이분법적 가치관이 아닌 제 3의 다양한 색깔이 존재함을 외치며 펄럭이는 이 거리의 무지개 깃발이 우리가
지금 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자신의 집 창문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 내놓으며 당당하게 동성애자임을 내세우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거리를 관광지화 시켜버리는 이 사람들의 대범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다음날 아침 케이블카를 타러 가 보니 이런.. 서있는 줄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될 것 같다. 명물이긴 명물인가 보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이 많아서 1905년부터 케이블카가
이용되었다. 그리고 케이블카가 대중교통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전 세계의 하나뿐인 도시가 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면서 펼쳐지는 바다와 빅토리아 풍의 건물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샌프란시스코만의 특징을 만든다.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각 도시들의 특징들이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가 개성 있는 도시로 남은 것은 아무래도
‘언덕’이 많은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중의 하나인 Lombard ST도 급경사를
완화하기 위해서 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것이다. Lombard ST는 빨간 벽돌 길에 분홍 꽃들로 장식되어
아기자기하게 예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데도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이유는 이 길이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여행객 입장에서의 샌프란시스코 언덕 감상이었고 실제로
여기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이 언덕들이 얼마나 싫을까. 실제로는 얼마 안되는 거리도 경사가 30도도 더
넘게 져 있어서 내려갈 때는 신나지만 올라갈 때는 힘이 배로 들으니 차 없이는 못 살 동네다.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을 한눈에 보기 위해 올라갔던 트윈 픽스에서
만난 한 독일인 부부가 생각난다. 그냥 단순히 커플인줄 알았는데 결혼해서 지금 허니문 중이라며 로키산맥으로
해서 알래스카로 올라가는 여행 루트도 우리랑 비슷하다.
둘의 다정한 모습에 괜히 예현이에게 내꺼! 내꺼! 어딨냐고~ 하며
꼬장 부려봤지만 부질없는 짓인걸 알고 조용히 언덕 한구석에 가서 앉아 있는데 왠걸 바람이 장난 아니다. 잠바
주머니에 손 넣고 배트맨 흉내 내다가 바람에 날아가는 줄 알았다.–; 꼭대기 바람에 쓸려 내려가면서 서로의
망가지는 모습에 웃고 떠들다 보니 왠지 정이 간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한국에 한번 간 적이 있다고
반색하며 이야기 하는데 그 이유가 참 재밌다. 그냥 멀리 있어서 알고 싶어서라나? 여행을 다니다 보니 심심하다.
한국에서처럼 바쁘게 해야 할 일도 없고 남는 건 시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눈이 간다.


 
한국 사람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 뛰어가 말 걸고, 같은
길을 가는 외국인한테 웃으며 괜시리 말 한마디 걸어보고..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독일인 부부랑 헤어지는데
그 둘은 우리를 걱정하며 차이나 타운에 간다는 우리말에 어디서 내려야 할지 까지 꼼꼼히 챙겨준다. 이런 짠밥은
우리가 더한대도 말이다. 아마도 여행 중에 이 같은 만남과 이별이 계속 되겠지만 나는 이런 만남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가고 하루하루가
심각했던 그 곳에서의 일탈은 지친 나의 마음에 세계라는 활력소를 힘껏 불어다 줄 것이라고,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이고 결국엔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자! 내일은 씨애틀로 출발이다. 22시간 동안 버스 타는 건
괴롭지만 커피한잔과 함께 멋진 야경을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감기 걸린 것 같으니깐 감기약 먹고 푹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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