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19화 우리만의 코스타리카 100배 즐기기

   
  코스타리카 국경에서 친구들과 뭉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활화산 아레날의 조그만 마을 라 포르투나로 향했다. 라 포르투나로 향하는 길, 중미의 안전지대라
불리는 코스타리카는 이제까지의 중미 나라와는 다르게, 방범창을 설치한 집들도 드물고 잘 보존된 산들의 정경이 참 평화롭다.
화산을 배경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조용한 마을은 비수기인 탓인지 여행자 한 명 볼 수 없었던 오메테벡 섬의 마을들과는
사뭇 다르다. 더군다나 수많은 여행사들이 서로 가격경쟁을 하고 있어, 우리의 특기를 십분 발휘해 열대 우림 하이킹과 온천을
묶은 투어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 탓에 하이킹의 출발이 조금 늦어졌다. 끝까지 가보려 했지만, 천둥번개 치는 하늘과 질퍽하다 못해 진흙탕이
되어버린 길에 발이 잠겨, 발길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이 어둑해지길 기다려 가이드 아저씨의 안내로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출발~. 한 10분 정도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작은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게다가,
붉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을 생전 처음 보는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일행들은 힐끔 보더니 ‘온천 가자’고 난리다. 투어에 포함되어 있는 이 온천은 탕이 7개, 탕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바(bar)가 설치된, 탕 안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고급 노천 온천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극적으로 친구들과 재회하긴 했지만, 친구들은 다른 중미 국가들과 비교해
상당히 물가가 비싼 코스타리카에 오래 체류할 마음이 없다. 우리는 원래 아레날에서 바로 몬테베르데로 향해 스카이 트랙을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바로 수도인 산호세로 간다 한다. 친구들과 갈 것인가, 몬테비르데로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놓인 우리… 아레날에서 몬테베르데로 가는 차비가 상당히 비싸다는 점과 거기가 아니라도 스카이 트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도 친구들과 함께 산호세로 가기로 결정했다.(멕시코 시티에서 독립기념일을 친구들과 보내기 위해 멕시코 최대의
관광지 유카탄 반도도 버렸던 우리가 아니던가!)
거리는 별로 안되지만 험한 산을 넘나드는 도로 사정으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산호세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생길줄이야… 내/부/분/열…

우틸라에서 있었던 것까지 따지면 근 한 달을 같이 여행한 셈이니, 이 친구들 사이에 트러블이 생길 때가 되긴 했다. 조금
위험한 지역에 있고 시설도 별로이지만 경제적으로 저렴한 숙소에서 머물길 원하는 윌과 애럼, 조금은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깨끗한 숙소를 원하는 피오나와 새드릭, 그리고 그 중간에 선 우리…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처음 찾아간 싼 숙소에 그냥
머물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피오나는 정말 이 숙소가 싫은 눈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을 음식점을
찾아 다니는데, 우틸라에서 좋은 음식점만 찾아 다녀 우리의 허리를 휘게 했던 이 친구들이 의외로 너무도 싼 음식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싸다고 택한 음식점은 위생적이고 맛깔 나게 보이는 음식, 좋은 분위기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중국인
특유의 냄새가 나는 치킨집이었다. 물론 우리야 그런 것쯤 아주 잘 먹어줄 수 있지만 피오나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이런 작은 문제들이 하나씩 쌓였던 까닭인지 결국 산호세에서 2일간 머문 후 각자 서로의 갈 길을 정했다. 새벽 버스를
타고 오사 반도로 가겠다는 윌과 애럼, 산호세에서 하루 더 머물면서 카지노와 바 순회를 하겠다는 새드릭, 오사 반도로
갈 예정이지만 일부러라도 윌, 애럼과 헤어지길 원하는 피오나. 파나마 비자가 걸려 오사 반도행 새벽 버스를 탈 수 없는
우리는 파나마 비자를 딴 후, 스카이 트랙을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수집하고 갈 곳을 정하기로 했다.
항상 서로 독립된 여행자임을 강조하는 윌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US$70나 되는 수수료를 지불하고
비행기 날짜를 바꾼 피오나에게는 서운하게 들렸을 것이다. 우리 또한 친구들의 냉정한 이면을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여행을
다니면서 같이 여행하는 우리 둘을 보고 서로 가고 싶은 곳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하냔 질문을 하곤 했었다. 그 때마다 은화가
총을 가지고 협박한다면서 농담으로 넘기곤 했는데, 지금까지 서로 가고 싶은 곳이 달라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물론
예현이는 싼 것에 점수를 주는 반면, 은화는 가격 대비 만족도를 주장하는 편이기 때문에 우리도 종종 작은 문제에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이젠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텔레파시가 통할 정도이지만. 물론 둘이서만 여행을 다니면 지루할 때도 있다.
한 예로, 싸운 것도 아닌데 5시간 동안 버스를 타면서 은화가 ‘나 추워’, 그 말에 예현이가 ‘창문 닫아’ 서로 딱
한마디만 했다는 사실.(그리고 얌전히 창문 닫았다.) 이번 내부분열로 서로간에 약간의 기분 상함이 있었지만, 이것 역시
미운 정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중미의 화원이라는 애칭의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13%가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열대 우림과 강, 귀중한 동식물의 보고이다. 또한, 태평양 연안과 카리브 해의 아름다운 해변, 중앙고원
곳곳에 솟아있는 무수한 화산들이 코스타리카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이런 풍요로운 자연뿐만 아니라 코스타리카는 오래 전부터
평화헌법을 내세우며 군대를 없애고 냉엄한 중미의 정치상황, 미국의 원조 없이는 힘든 경제상황 속에서도 적극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다른 중미 나라들보다 발전하게 된 평화국가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정치와 자연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파라다이스란 존재하지 않는다. 산호세에서 파나마 비자를 받고 스카이 트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러 중심가 곳곳을
다니던 도중 우연히 들어간 약국의 주인이 오래 전 코스타리카로 이민 온 한국분이었다. 멕시코에서 한국음식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한국음식을 해먹은 후, 2개월 동안 한국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기에 한국음식을 부르짖고 있었던 우리. 이 기회를
놓칠 수 있으랴! 여행 4개월 만에 우리는 노골적으로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실 수 있냐고 묻는 뻔뻔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저녁 늦게까지 약국에 있어서 저녁을 밖에서 해결한다며 우리의 뻔뻔한 부탁에 너무나 미안해 하시던 아주머니께서는
우리를 위해 한국음식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다. 감동적인 한국음식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곳 사람들의 천성, 생활 방식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 가치관과는 상당 부분 틀린 것이 아주머니가 약국에 나와있지 않으면
고용된 약사들이 비싼 약들을 훔쳐간다고 한다. 또한 좋은 의도의 노동법을 악용해서 일부러 임신을 하거나 해고당할 행동을
한다고.(3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을 해고시키기 위해서는 10개월분의 월급과 퇴직금을 줘야 한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의
노동법에 피해를 본 많은 한국 이민자들이 다른 나라로 몰래 떠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성문화에 있어서도 다른 중미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혼모가 많고(거의 40%정도 된다고 한다), 한 집의 형제들이 모두 아버지가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약사가 소위 말하는 천한 직업의 사람과 사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나라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의 아름다운 자연에 감복해 하는 것도 좋지만 이 나라의 문화와 이면의 모습을 보는
것, 그 속에서 직접 생활할 수 없기에 생활의 작은 부분만이라도 느끼는 것이 이 나라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코스타리카를 아름답게만 보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하셨지만, 코스타리카는 아름답고 좋은 나라라는 점을 절대 빼먹지
말라는 아주머니의 당부가 그 분이 얼마나 코스타리카를 좋아하는가를 느끼게 한다.
   
스카이 트랙을 할 수 있는 곳은 몬테베르데 밖에 없고, 비슷한 카누피 투어도 몬테베르데가 최고의
장소라는 사실에 다시 몬테베르데로 올라가기로 결정! 몬테베르데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산타엘레나에 도착, 스카이 트랙 사무실에
찾아가니 엄청나게 비싸다는 친구들의 말과는 달리 학생할인을 적용받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산타엘레나에서의 두번째 날,
저녁마다 비가 오는 점을 감안해 아침 7시 반 첫 스카이 트랙을 위해 부지런히 호텔을 나섰다. 기본적인 주의사항을 듣고,
이것저것 장비 챙겨 들고 계단을 한참 오르는데 그 높이가 아찔하다. 단계별로 시작해서 총 11개의 케이블을 타게 되는
코스인데, 제일 긴 것이 350m에, 최고 속도가 60km/h나 된다고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발판에 올라 케이블에 걸쳐진
끈에 몸을 맡기니 제멋대로 슝~ 날아간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데 속도는 빨라도 이거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2번째
케이블 탈 때부터는 소리도 질러보고 멋진 경치감상에 속도 줄이라는 신호도 무시하고 최고 속력내기에 바쁘다.마치 부딪칠
것 같은 나무 사이를 바람같이 지나가고 드넓게 펼쳐진 열대 우림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이 ‘생애 최고의 어드벤처’라며 강추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이번엔 열대 우림 속 나무 사이에 다리를 걸쳐놓아서 야생 조류와
동물들을 잘 볼 수 있도록 만든 트래일인 ‘스카이 워크’를 하며 숨은 동물 찾기를 할 차례! 서로에게 잘 찾아보라고 작은
소리에 집중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데 조금씩 비가 온다. 설마 계속 오진 않겠지 하며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해
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다. 조금 전 그 푸르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온통 시커먼 먹구름에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하는데,
더 많이 오면 더 많이 왔지 그칠 것 같진 않다. 아! 원숭이들 매달려 있는 것을 보기엔 틀렸구나. 그러나 ‘젖을 테면
젖어라’하며 비 때문에 빨리 가려는 사람들을 모두 앞으로 보내고, 쏟아지는 비와 함께 50m 높이의 다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비 속의 열대 우림을 만끽했다. 우리가 스카이 워크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흐렷던 하늘이 맑게 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이 특별한 비 속의 열대 우림이 더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지 않을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