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프 글로벌 마인드]제3화 교수님이 준비하신 단합대회


한편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 같은 문화, 같은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비록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이 속해있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비록 이 세 나라는 모두 한자의 영향을 받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의 언어를 쉽게 이해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은 유교와 불교라는 거대한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즉 세 나라 모두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때때로 절과 같은 장소에서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빌기도 하며, 스승을 깍듯이 공경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보면 비록 언어가 조금씩 달라도, 지리적인 요인이나 역사적인 요인으로 인해 서로 비슷한 문화나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싶다. 언어만을 기준으로 문화를 나누는 일이 성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두 가지 주장을 모두 고려할 때, 싱가포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어떠할지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싱가포르의 공식 언어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답게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의 네 언어를 모두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십분 양보해서 인종에 관계없이 널리 쓰이는 영어를 공식 언어로 생각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인종이 바로 중국계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중국계 민족도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본토의 중국계 민족 중 하나였을 테니 이들의 문화 역시 그들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장유유서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 속에서 자라왔지만 서양 문화권에서 온 영어를 사용하는 싱가포르 인들, 과연 이들의 사고방식은 동양인의 그것과 비슷할지, 아니면 서양인과 비슷할지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궁금했었다. 이 궁금증을 얼마 전에 있었던 ‘Marketing Stars’ Nite’ 이라는 학교 행사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Marketing Stars’ Nite 이라는 행사는 이곳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마케팅 학과에서 일년에 한번씩 주최하는 행사이다. 물론 학과에서 주최하는 것이니만큼 행사의 목적은 교수와 학생과의 화합 정도이니, 우리나라의 단합대회나 개강파티 같은 행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날 하루만큼은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모든 행사를 준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준비는 비단 재정적인 지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날 하루만큼은 교수님들이 마치 종업원이 된 것처럼 학생들을 위해 음료수를 가져다 주고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며, 심지어는 학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공연까지 손수 준비하신다. 이곳 친구들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한 학기 동안 교수님들이 학생을 많이 힘들게 한 만큼 이날 하루만이라도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이런 행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 라는 문화 속에서 커 온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점이었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교수님이 음식을 학생들 앞에서 춤을 춘다?’ 어떤 행사가 될지, 학생들이 맘 편히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Marketing Stars’ Nite는 저녁식사로부터 시작된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의 개강파티, 단합대회가 주로 고깃집에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이곳의 Marketing Stars’ Nite는 시내 한 복판의 멋진 클럽에서 열린다. 또 우리의 단합대회가 ‘넉넉한 음식과 과도한 술’로 채워져 있는 것에 반해 이곳에서는 뷔페에서 음식을 각자 덜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분위기의 단합대회를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파티의 가장 어려운 점은 아무도 나를 누구에게 소개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재미있어 보이는 모임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 어느 순간에 질문을 한다든지, 다른 의견을 말한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대화 중간으로 끼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만’ 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해왔고, ‘침묵은 금이다’ 라는 속담을 수도 없이 들어오면서 자라지 않았던가. 또 모국어가 아닌 영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기도, 어느 순간에 끼어 들기도 쉽지 않은 일임은 당연지사. 처음 학교에 입학하여 신고식을 해야 할 때와 맞먹는 어색함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사실 남자는 정장을,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것부터 어색하기는 했다. 어떻게 단합대회에 정장을 입고 간단 말인가.




어색했던 분위기도 잠시, 우리나라에서도 단합대회의 분위기가 장기자랑이나 신고식에 가장 고조되듯이 이곳에서도 준비된 행사들이 시작되며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된 행사는 학생들의 연극. 수업 시간에는 조용했던 친구들이 지금껏 숨겨왔던 재능들을 발휘했다. ‘교수님들의 대학 시절’을 배경으로 한 주제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교수님들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한 명씩 소개될 때마다 폭소와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이어진 행사는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교수님들의 공연. 항상 양복을 입으시고 강단 위에 서시던 교수님들이 은색 반짝이 옷을 맞춰 입고, 음악에 맞춰서 깜찍한 율동을 선보이신다. 이 공연을 위해 이주일 전부터 함께 모여서 연습을 하셨다고 하니, 그 정성을 짐작할 만하다. 비록 때때로 실수도 있었지만, 교수님들에 대한 환호성은 어느 연예인 못지 않게 대단했다. 교수님들의 공연으로 달아오른 분위기는 무대 위에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한국에서의 나이트 클럽과 같은 분위기에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맘껏 풀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수님들과 나이트 클럽에 갈 수 있을까?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의 문화에서라면 경험할 수 없었던 색다른 문화를 접했다는 것이 이 날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싱가포르의 문화는 확실히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 문화권의 문화와 틀리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우리의 대학문화도 이곳의 기준에서 보면 권위적이고 딱딱한 문화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교수님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선후배 사이의 관계에서도 항상 윗사람에게 깍듯하고 공손하게 대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우리와 같은 공손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문화가 지나가면서 교수님을 만날 때의 인사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허리를 굽혀 인사하겠지만, 이곳에서라면 “Hi”라는 인사말과 함께 눈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수님을 부를 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수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이곳에서는 “Dr. Tan” 과 같이 교수님의 성을 그냥 부른다. 영어를 사용하기에 존대의 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가 권위적인 것도, 싱가포르의 문화가 버릇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사회에서 기대하는 문화의 양식이 다 다르다는 것이고, 그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기대되는 양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교환학생의 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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