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프 글로벌 마인드]제2화 기숙사 속의 작은 지구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 이곳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의 국적에 대해 새삼 설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친구들은 항상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출신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중국 화남지방에서 왔고, 할머니는 말레이시아에서 왔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민족 국가가 드문 탓인지, 이곳 친구들은 국적뿐만이 아니라 인종이나 출신 지방도 따진다. 우리는 당연히 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중국도 다 같은 중국이 아니란다. 중국 내에도 만다린, 하이난, 호키언 등 여러 민족이 있고, 이들의 문화나 말, 풍습 등이 모두 다르단다. 심지어는 같은 중국에서 온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출신 민족에 따라 쓰는 말이 달라 아버지와는 만다린으로, 어머니와는 호키언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항상 한 가지 말만 쓰고, 한 민족과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나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처럼 싱가포르는 서로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인종이 하나로 모여 사는 나라이다. 하지만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종과 언어를 막론하고 국민이 하나로 단합해야 할 필요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땅덩어리도 작은 데다가,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싱가포르이기에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실현 가능한 목표에 나라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에서는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대학 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곳의 대학에는 비단 싱가포르 사람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수많은 유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형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싱가포르에서는 이곳으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을 외국인으로 보기보다는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신 이들이 졸업 이후 3년간 싱가포르에서 일해야 하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결국 이들이 싱가포르 국민들과 함께 일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려는 이곳의 대학 문화는 아마도 기숙사 생활에서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입생이 처음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학과 차원의 신입생 환영회를 할 것이고, 그 외에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후배끼리 동문 모임을 하거나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들끼리 향우회 정도의 행사를 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신입생 환영회는 지나친 술 문화와 ‘끼리끼리’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연고 문화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의 기숙사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우선 술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술 문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나라가 작기 때문에 우리처럼 향우회 모임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출신 학교나 지방을 기준으로 모임을 하는 것보다, 앞으로 같이 살게 될 기숙사 사람들이나 학과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장려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에게 기숙사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재학생 중에는 기숙사 내의 행사 준비나 학생 자치단체 활동, 또는 동아리 활동과 같은 다양한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사람만이 기숙사에 살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처음 입학한 신입생, 특히 외국에서 와 아무 연고가 없는 신입생이라 할 지라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학교의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처음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가장 먼저 거쳐야 할 행사는 ‘Rag & Flag Day’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Rag Day’는 자선사업을 위해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성금을 모금하는 행사를 말하고, ‘Flag Day’에는 재활용품을 통해 공연을 위한 무대 및 소품을 준비하여 공연을 펼치는 행사를 말한다. 듣기에는 별 것 아닌 행사처럼 보이지만 이들 행사에서 보여주는 싱가포르 학생들의 열정은 놀라울 따름이다.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주간의 마지막 날 열리는 ‘Flag Day’를 위해 신입생 및 재학생들은 여름방학 내내 이를 준비하고, 공연을 하기 몇 주 전부터는 공연 준비에 밤을 새우기 일쑤이고, 공연 마지막 날 전에는 행사가 열리는 운동장 이곳 저곳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행사가 열리는 당일,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이 기숙사를 상징하는 옷을 맞춰 입은 채 열렬한 응원을 펼치고, 싱가포르의 대통령까지 와서 관람하는 걸 보면 이들에게 이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공연 때 이들이 펼치는 공연과 무대 장치들을 보면 과연 이것들이 학생들에 의해 준비된 것인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들의 기숙사 행사는 1년 내내 계속 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 학기에는 기숙사 내의 블록끼리 서로 체육대회를 하고, 이런 과정에서 서로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숙사를 대표할 선수들을 선발하기도 한다. 이들 기숙사 대표들은 가을학기 때 다른 기숙사의 대표들과 다시 자웅을 겨루게 된다. 물론 기숙사에서 매일 체육대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험 기간에는 서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간단한 다과회를 열기도 하고, 기숙사 친구들끼리 자전거를 빌려 싱가포르를 여행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가장 낯선 행사 중 하나는 클럽을 빌려 파티를 여는 것이었는데, 파티 중에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듯 기숙사에서 가장 잘 생긴 남녀를 선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숙사에서는 학생들의 힘만으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기숙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 특기 정도를 키워나가게 된다. 나와 같은 교환학생이 기숙사에 살기 위해서는 기숙사 자치회의 면접을 거쳐야 하는데, 면접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들은 멋진 기숙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러한 문화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두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신입생 환영 문화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이들이 비판하려는 것은 하나로 단합된 집단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다만 단합된 집단을 만들기 위해 술 권하기 문화나 굴리기 등의 군대식 문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며, 이들 모임이 출신 고등학교나 출신 지방과 같은 과거 지향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반면 이들의 문화는 앞으로 생활을 함께 할 사람들끼리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며, 각기 다른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살기 위해서는 물론 영어나 배경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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