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민구┃언어를 치열하게 반죽하는 문학도

밤하늘의 별을 헤아린 게 언제인지, 그 집 앞 꽃밭은 여전한지 기억나지 않는다. 디지털에 울고 죽는 이 시대에, 마음속 불꽃을 지켜나가는 20대 문학가의 릴레이 인터뷰. 어느 깊은 밤,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언어의 조각을 나누고 싶네.

사진 홍석준/제16기 학생 기자(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멀리 통영의 동피랑에 있다고 했다. ‘역시 시인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예민한 생각도 잠시, 그는 소탈하게 만남을 약속했다. 파릇파릇한 언어 감각을 내비치면서.

열망과 운명 사이, 자연스러운 문학과의 만남

신도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성석제부터 괴테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를 논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장르의 구별 없이 책을 좋아한 건 사실이지만, 정작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에 입학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도서부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탐독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인의 길을 열어준 길잡이 문학은 김기택 시인의 <바늘 구멍 속의 폭풍>이라는 시집 속 ‘얼굴’이란 작품이었다.

이후 성석제의 ‘검은 암소의 천국’이란 글을 보고 문학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절판된 책이라 지인의 책을 빌려 필사를 했을 정도로 저한테 큰 자극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백일장 공모에서 상을 받게 되어서 수상실적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게 됐죠.

시로 등단했지만, 그는 소설, 수필, 희곡 등 다른 분야에도 경계 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그저 글 자체를 사랑하는 ‘문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로 등단했으니, 청탁도 시가 많았죠. 시를 쓰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저는 그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장르와 상관없이 종이와 제가 대면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요(웃음). 저는 모든 글이 서로 시너지를 내게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문장이 시 같을 때가 있고, 또 시에서 소설 같은 구성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문창과 학생이든, 극작과 학생이든 글에 대한 열망으로 글쟁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신춘문예의 열병에 앓기 마련. 그 또한 대학 시절 신춘문예 등단을 꿈꾸며 공모를 했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준비했다. 따로 지도 교수가 있을 법 한데도 그는 홀로 습작의 시간을 견디며 시와 소설을 썼다. 수업 때의 합평이 많이 도움됐다곤 했지만, 그것도 합평을 즐길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가 내 자식 같은 작품을 ‘까는’ 것에 담담해지고 그것을 약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능력인 것. 이렇게 성실하면서도 문학을 즐기는 자세 때문인지 대학교 4학년이 되던 무렵, ‘2009 신춘문예 조선일보 시 부문’에 당당히 당선됐다.

두 군데에 작품을 내고 잊고 있었는데, 조선일보에서 수상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사실 될 거라고 약간 기대했던 곳은 다른 신문사였지만요(웃음). 특별히 신춘문예를 위해 과외를 받는 건 없었지만, 수업 시간마다 저희 과의 남진우(시인) 교수님이 수업 때 자극을 많이 주셨어요. 거기서 많이 배웠죠. 오기가 생겼다고 할까요(웃음).

글과 글 사이, 언제나 글을 반죽하는 문학도

그의 수상작 <오늘은 달이 다 닳고>라 감각적인 시어로 주목받았다. 달을 비롯해 사물을 보는 시각은 그가 얼마나 대상을 유심히, 또 예민하게 관찰하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릴 때 집이 인천 외곽의 수독산 달동네였는데, 그곳에서 아주 큰 달을 본 적이 있었어요. 산동네에서 저녁마다 큰 달을 봤던 기억이 작품에 녹아든 것 같아요. 그 달은 제게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왠지 저를 자극하고 시비를 거는 듯한 달이었어요. 송찬호 시인이 말한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같은 구절도 커가면서 많이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서 달이 시의 소재로 좋다고 생각했어요.

감각적인 시어가 매력적인 그의 시를 보고 ‘이 시인은 시를 영감적으로 쓰는 편인가?’하고 지레짐작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습작의 가치에 큰 비중을 뒀다. 작품의 질을 떠나 그건 그만큼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항상 뭔가를 ‘반죽’하고 있다는 생각은 본인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

저는 느낌이 너무 없어서 고민이에요. 어떤 사람은 길을 가면서도 시를 줍는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하나를 붙잡고 오래 기다리는 편이에요. 밤나무를 보면서 생각하는 건데, 밤나무 아래에 있으면 밤이 뚝뚝 떨어지잖아요. 밤송이 안에는 벌레가 있는 밤이 있을 수도 있고, 온전한 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문장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문장이 제게 뚝뚝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많은 문장 속에서 온전한 문장을 골라내는 편이에요.


어떤 사물이든 현상이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동선이 있다. 정적일수록 풍부한 동선을 가진 채로 말이다. 보기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지만 그 속에선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는 늘 이런 이면(裏面)을 포착해 내려고 노력한다.

소재를 얻는 것도 평소에 제가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에요. 그런 의식들이 굳이 제가 움직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머릿속에서 달려나오는 이미지가 시를 쓰고 긴장하게 하죠.

시인과 종이 사이, 시인의 얼굴에 깃든 아름다움

처음 연락을 했을 때 그가 통영 동피랑에 있었던 것에 대해 묻자 그는 ‘참 좋은 곳이에요.’라고 먼저 말했다. 평소 쉴 때는 국내 여행을 많이 한다는 그는 여행 칼럼을 쓰기도 한다. 어쩌면 그에게 여행은 단순히 세상을 넓게 보고 시야를 넓힌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어느 한 곳에 머무는 규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어디든 가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주말에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터미널에 가면 처음 보는 목적지가 많잖아요. 무작정 터미널로 가서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골라 다녀오곤 했어요. 여행 가서는 시를 안 써요. 그냥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와요. 시를 쓰는 특정한 장소도 없어요. PC방에서도 쓰고 지하철에서도 쓰고 그냥 생각나면 쓰는 편이죠. 그래서 늘 메모장과 샤프를 가지고 다녀요.

대학교 2학년 때 등단해 한국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모 유명 작가는 그 부담감에 글을 집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역시 혹시 어리기 때문에 겪는 경험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누르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는 말한다. 이런 부담감보다 더욱 어렵고 긴장되는 것은 하얀 종이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일이라고.

나이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종이에서 범람하는 해일을 마주한다는 두려움이요. 시를 쓸 때 큰 담론을 다루시는 분들도 있지만, 과거의 일을 생각하면서 소소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후자 쪽인 것 같고요(웃음).

이제 대학원 입학을 하는 그는 순수창작을 하는 시인이지만 동시에 학생이다. 취업과 창작의
길에서 고민할 법도 한데, 그는 아주 여유로운 얼굴로 누가 봐도 현명해 보이는 대답을 하곤 웃었다.

벌이의 문제를 떠나서 시를 쓰는 것을 너무 시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하는 것에서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봐요. 시 쓰는 사람이라고 시만 쓴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것 같아요. 전 계속 시를 쓸 거예요. 시 쓸 때만큼은 항상 언어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어가 주는 안락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장을 들고 언어와 대응할 수 있는 작가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또 그럴 수밖에 없고요. 언어에 잡혀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요(웃음).

그의 말처럼 언어와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시인이다. 그는 언어와 싸우려 무시무시한 연장을 든 시인이지만 얼굴만큼은 평화롭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이 있는 사회가 왜 아름다운지.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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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윤 기자. 확실히 사진도 인터뷰의 분위기와 상당히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민구씨가 직접 소개해 주신카페의 정취도 좋았고,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어색함없이 편안했던 분위기가 '뽀록'을 만들어 내게 했지요.
  • N

    홍석준 기자의 사진기술 물이 단단히 올랐는girl요
  • 뿌리다

    개인적으로 시인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20대 시절, 한 선배가 제게 이야기해준 게 있습니다. "시인과 사귀느니, 산을 올라라!" 아마도 저의 헐렁함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인의 감정 폭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한 번쯤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아, 주책인가.
  • dorothy9

    너무 좋네요! 민구님 평소 다양한 곳에서 인터뷰 하시는걸 보았는데, 언제나 다른 시인들을 질투하며 글을 쓰신다는 구절이 절실하게 와닿습니다. 게을러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드네요. 언젠가 여기에 나오실 줄 알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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