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혁 ┃지독한 사람 냄새의 나날들

글_전수미/메트로 신문(metro) 대중문화팀 기자

사진_송인혁 감독 제공

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전해주세요.

아마존에서 촬영해 온 ‘직찍’ 사진을 보여준다며 사무실을 나갔다가, 촬영감독 연합회에서 만든 월간지를 손에 쥐고 들어왔다. 몸에 좋은 녹차를 권하더니 해로운 담배를 피웠고 급기야 ‘사실 난 참 산만한 사람’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여느 인터뷰이와는 다른 당부로 화두를 꺼냈다.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으로 향한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로 인해 그저 숨은 스태프였던 송인혁 감독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 차례 직접 만나고, 세 통의 전화를 하고, 10여 통의 문자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그는 ‘한계를 모르는 사람’인 동시에 ‘한계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대하 사극(대장금, 신돈, 이산)과 트렌디 드라마(에어시티, 베토벤 바이러스, 개인의 취향), 에베레스트와 (아! 에베레스트)와 아마존(아마존의 눈물) 등 공통분모 없는 장르 혹은 삶의 영역을 가로지른 ‘한계를 모르는’ 직업인이었고, 제아무리 놀라운 글발을 지닌 기자라도 그의 경력과 실력, 그리고 매력을 글로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20대는 별 게 없었다.’로 시작된 이야기는 파닥거리는 에피소드의 향연이었고 그는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 품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 냄새를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자신의 관심에 집중하고 초심을 잃지 마라

신문방송학과 87학번인 그의 대학시절은 ‘2.17’이라는 학점만으로 평가될 수 없었다. 당시 그의 유일한 관심은 ‘사진’이었다. 전공과목 중 ‘보도 사진론’이란 강의에 흠뻑 빠져 사진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취미로 시작한 사진은 각종 장비 구매로 이어졌다. 18개월 다니던 유명한 광고회사를 등지고 1996년 MBC 입사 시험을 봤다. 그 결과물이 사진에서 영상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과 세상을 향한 그의 관심은 한결같다.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를 보면 ‘우리 때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꼭 부러움과 대견함의 의미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만 해도 동영상 장비는 다룰 줄도 모르는 채로 입사했는데 요즘 후배들은 학교에서 다 배워서 와요. 기술을 학습하느라 놓친 건가? 오히려 이전 세대보다 쉽게 포기하고 끈기도 부족한 것 같아요. 87학번이 살던 시대는 관심 두고 몰입할 대상이 많았어요. 내 앞가림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사회 참여도 많이 했죠. 지금이라면 관심의 몰입도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말하는 실력 차는 두 가지였다. 내 꿈을 펼치는 일터, 즉 현장에서 ‘그 대상에 관심을 얼마나 두고 있느냐’와 ‘관심의 대상에 향했던 초심을 잃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감행해라

지금도 더 좋은 삶의 풍경을 담아내려 전국 방방곡곡,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그다. 현장 경험과 비행기 마일리지가 뿌듯하게 쌓여가도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원없이 하고 싶은 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를 사는 20대가 해야만 하는 일로 여행을 꼽았다. 일로서의 여행이 아닌, 말 그대로의 여행.

젊은 친구들이 해외 연수를 떠나는 게 유행이 됐는데,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이유가 ‘나만 안하고 지나칠 수 없어서’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전 스물셋에 제대하고 미국으로 혼자 떠나 한 달간 일주했어요. 그레이하운드 버스 한 달 패스를 끊어 밤에는 차를 타고 낮에는 도보 여행을 했죠. 그때 제가 봤던 세상이 제 삶에 큰 전환점이 됐어요. 통과 의례가 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보러 떠나는 여행.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지만, 20대에 하는 세상 여행은 그때만 가져다주는 뭔가가 있어요.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제일이다

엔딩 스크롤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 얘기를 하는 동안 그가 가장 활짝 웃던 대목은 역시 사람 얘기를 할 때였다. 이영애, 이정재, 최지우, 이서진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수상 소감에서 언급된 ‘촬영감독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더없이 소박했다.

<베토벤 바이러스>때 만난 김명민 씨는 주위 사람들까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배우였어요. 그런 배우들과 일하는 건 참 고마운 일이고, 일 끝나고 소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도 참 좋아요. 이 일이 주는 것들이 참 많아서 좋아요.

그의 존재감을 두텁게 한 <아마존의 눈물>도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났다. 지구 위 5대 독충이 산다는 무시무시한 정보에 질겁했던 그는 동료 김진만 PD를 향한 신뢰 하나로 아마존 행을 결심했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벌거벗은 원시의 땅에서도 사람을 중심에 두기로 했다. 애초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로 기획됐던 이 작품은 ‘사람’에 포커싱 하는 데 뜻을 모은 제작진의 시선 덕에 영상만큼 스토리가 기억되는 사람의 이야기로 남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방송엔 다 담을 수 없었지만 매 순간이 위험천만했죠. 아마존의 수심, 독충보다 더 무서웠던 건 결국 사람이었어요. 서로 경계하다 어느 순간 오픈됐죠. 사람 이야기를 담아왔더니, 결국 스토리 좋아하는 우리나라 시청자들 마음도 얻었고요. 어느 일을 하든 사람을 우선에 둔다면 그 일이 늘 즐거울 거예요.

처음 만난 날 그는 촬영을 맡은 새 드라마 <개인의 취향> MT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고, 두 번째 전화가 걸려온 어느 늦은 밤엔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남극에 가고 싶다.’고 했다. 작품 얘기를 할 때도, 대학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도 그의 주변은 늘 시끌시끌했고 덕분에 그와의 인터뷰는 스튜디오에 정갈하게 마주 앉아 녹화된 토크쇼가 아닌, 화질은 좀 투박해도 삶이 느껴지는 이원 생방송 같은 느낌으로 남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는 대화 도중 ‘난 사회생활, 조직생활 하는 직장인이거든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평범하면 지는 거다.’라는 무언의 압박에 종용받는 20대에는 끔찍한 말일 테지만, 현실에 뿌리내린 만족감은 그에게 즐겁게 사는 기쁨을 준 듯했다.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라는 그의 모토는 허무맹랑한 피터팬 콤플렉스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나 그 현실 속에서 꿈을 발견하고야 마는 그만의 히든카드였다.

* 현재 MBC 파업 중에서도 자필 서명을 위해 시간을 희생한 송인혁 감독님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편집자 주

2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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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에 해야할 일이 "여행" 이다 라는 말이 저의 가슴속 깊이 파고 드네요
    저의 향후 진행방안에 대해 도움이 되었습니다
  • 키맹

    아,, 송 감독님한테 나는 지독한 사람 냄새가 무지하게 부럽네요,, 멋진 인터뷰와 멋진 기사 캄사합니다ㅠ_ㅠ
  • 문명83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지만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송인혁 촬영감독님의 잡을 수 없는 별을 존중합니다.
  • 안놔 까레리나

    지독한 사람 냄새의 나날들이라는 제목이 저의 뇌량을 흔들어 놓네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건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건
    그들과의 나날을 제 인생의 제목으로 꼽는다는 게 정말 어려워요
    제 코로 마신는 사람 내음은 오로지 제 체취밖에 없는 느낌이에요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내음을 제 기억 속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야 겠어요^^
  •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마음 속에 깊이 새겼어요~!!
    고민 많은 청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언이 가득하네요^ㅡ^
  • 무릎팍 도사편에서 송인혓혁 감독님을 보고 유머도 겸비한 분이시라고 느꼈었어요.
    남과 참 다른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분이신데 기사로 만나게 되었군요.
    아마존의 눈물은 그야말로 후기를 보니 삶과 죽음의 전재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사람이 가장 무서웠다는 말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도 도전하는 정신은 본받고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얼굴에 미소를 늘 잃지 않으시는 표정 속에서 평범하면 지는거다라는 말 명심하게 되네요.
  • 정말 멋지신분같아요.. 생각하시는거랑 말씀하시는거랑 정말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 참 멋있는분 같아요. 요즘 진로때문에 걱정이 많은데
    '초심을 잃지마라'라는 이 한문장이 저를 다시 한번 흔들어 놓네요 ^^
  •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서 알게 되었느데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 송인혁 촬영감독님과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저역시 전공과는 무관하게 영화에 빠져 영화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영화동아리에서 빠진건 영화가 아니라 술과 사람이였던것 같아요 사람이 제일이라는 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 민지니

    무릎팍 도사 방송 출연때 보고 너무너무 멋지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보니 더더욱 멋지시네요~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늘 새로움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본받아야 할 것 같아요~~
    이룩할 수 없는 꿈을꾸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따자~~~
  • 차분차분

    남들이 하니까... 거기에 편승했었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어떤때는 그것이 다행스럽게도 느껴지고, 또 어떤때는 답답할때도 있어요. 좋은 글 감사드려요.
  • 열정을 나타내듯 그의 얼굴 피부색이 말해주는 듯 합니다.
    학교 휴학계내고 군대 갔었을 때 한창 얼굴이 시커멓게 된 모습이..
    송인혁 감독님에게서 나타나네요.. 저는 색깔이야 돌아왔지만 늘 바깥에서 활동하는
    이 분에게서는 피부색이 되돌아 올 여유가 없을 것 같네요^^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거겠지요.
    드라마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정말 공통분모없는 장르와 영역을 섭렵하고 계시네요.
    그만큼 촬영감독으로서 전문적이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만족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게 어렵고도 참으로 부러운 일이에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초심을 잃지 말자....
    참으로 마음 깊이 새기고 싶은 말이네요...
    인생의 스승이 참 많은 거 같아요.. 길에 있는 거지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고 하는데..
    송인혁 촬영감독님의 열정.. 본받고 싶어요..
  • 와...정말 초지일관적인 줏대. 그 생각.
    현실속에서 꿈을 잡는다는 말이 감명깊어요~!
  • 오~ 멋집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방송엔 다 담을 수 없었지만 매 순간이 위험천만했죠. 아마존의 수심, 독충보다 더 무서웠던 건 결국 사람이었어요
    란 글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 천혜진

    송인혁 감독님의 세상을 보는 눈을 참 닮고싶네요~정말좋은 기사와 인터뷰 감사합니다!
  • N

    좋은 글입니다. Thanks
  • dongha0812

    송인혁 촬영감독님~ 무릎팍도사때도 잘 봣는데 럽젠기사에서도 울림을 주시네요! 기사 잘봤습니다~~
  • 파업중인데도 싸인까지...!대단하십니다!!
  • victoree

    캬- 글이 어쩜 이렇게 깔끔하고 매력적일까요.. 멋진 글, 멋진 사진, 멋진 사람!
  • 조세퐁

    매력있는 사람에게서 매력있는 영상이 나오는 것 같네요. 멋지네요 감독님!!
  • 아마존의 눈물때에도 감동을 주시더니 여기서도 감동을 주시네요
  • 이미 당신은 저 하늘의 별을 잡았습니다!
  • 와.. 사진도 너무 좋고 글도 너무 좋아요. 멋지십니다!
  • 뿌리다

    역시,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역량에 따라 기사의 질도 달라지는 듯하네요.
  • 야구박사신박사

    이 글을 보면서 갑자기 떠 오르는 말...
    생각이 육신을 지배한다???
  • 으헣

    우와.. 진짜 감동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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