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수진┃20대의 당당함을 빚는 이야기꾼

밤하늘의 별을 헤아린 게 언제인지, 그 집 앞 꽃밭은 여전한지 기억나지 않는다. 디지털에 울고 죽는 이 시대에, 마음속 불꽃을 지켜나가는 20대 문학가의 릴레이 인터뷰. 어느 깊은 밤,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언어의 조각을 나누고 싶네.

사진 박보람/제16기 학생 기자(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스물셋의 젊은 나이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가. 이수진은 자발적이다 못해 당돌한 이야기꾼이었다. 막 점화된 로켓처럼 남자 화자로 거침없이 쏘는 언어는 그녀만의 공고한 스타일임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었다..

소 뒷 발차기식 입문(入文)

그녀는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이것만 보면 소설가는 그녀의 오랜 소망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소설가라는 꿈을 꾼 것은 대학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난 후였고,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한 것 역시 당시 목표였던 미술대학 진학이 좌절되고 1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원래 저는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떨어졌죠. 재수를 준비하려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추가모집을 알아보다가 조선대 문창과에 지원했어요. 소 뒷발차기로 들어간 거죠.

평소 꾸준히 일기를 쓰고, 고등학교 때 교내 신문에 소설도 연재할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였지만 대학에서 전공으로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처음 1년은 적응하지 못한 탓에 결석 횟수가 잦아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2학년이 되고,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펜을 들었다. 주위의 독려가 큰 힘이었다.

2학년 때 이승우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소설을 써오는 과제가 있었어요. 그때 처음 제대로 소설을 써봤죠. A4 4장짜리를 써갔는데, 교수님께서 그걸 보시고 ‘처음 써보는 거냐고. 너 잘 쓴다고. 한번 제대로 해봐.’라고 하셨어요. 너무 기뻤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게 참 큰 거잖아요.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당선작 ‘원초적 취미’의 운명은 기구했다. 사실 그녀가 이 소설을 먼저 넣었던 곳은 ‘신춘문예’가 아니라 ‘대산대학문학상’이었다. 거기서 떨어지고 안타까워하던 중, 무등일보의 신춘문예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그녀의 문예창작학과 입학이 그러했듯 신춘문예 당선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과에서 진료받던 중에 당선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든 느낌은 ‘어, 진짜? 왜?’ 이런 거였어요. 집에 오는데 걷지 않는 듯했어요. 발을 딛는 건 맞는데, 아무 느낌 없이 붕 떠다니는 느낌.

남자 화자가 투영된, 여자 소설가의 거침없는 입심

‘원초적 취미’는 2008년 그녀가 동생과 함께 인도를 여행하던 중 이가 빠져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어느 날 이가 빠진 한 남자가 그 구멍에서 묘한 쾌락을 발견하고, 탐닉하는 이야기로 다음 대화를 예측할 수 없이 톡톡 튀는 문체가 특징이다. 특히 ‘찌질한’ 남자의 심리묘사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처럼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온 듯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제가 여자 화자로는 잘 못써요.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감정이입이 너무 많이 되어서 질척이게 되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 주변에서도 남자 화자로 쓰는 게 더 좋다고 하고요. 지금 확립되고 있는 제 스타일도 지금까지 여러 소설에서 남자 화자로 쓰면서 잡힌 거에요.(소위 ‘찌질한’ 남자들이 나와서 벌이는 사소한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전 말랑말랑하면서 섬세한 여자 소설가다운 면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못하면 하지 말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라고 생각했죠.

흔히 소설 작법이 두 가지의 스타일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나는 영감을 얻는 즉시 한번에 쓰는 것, 다른 하나는 매일매일 꾸준히 써내려 가는 것이다. ‘원초적 취미’에서 느껴지는 입심과 인터뷰를 하며 느껴지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어투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녀는 전자에 속할 것이라 짐작했다.

저는 평소에 계속 머릿속에서 소재를 찾다가 하루 정도 날을 잡고, 6시간씩 앉아서 써요. 그렇게 A4 4장 정도를 쓰면, 2장은 버려야 해요.(웃음) 한번에 몰아서 쓰고 나중에 정리하는 타입이죠.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너는 소설 자체가 좋거나 구성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입심이나 독특한 문체 때문에 뽑힌 거라고. 그래서 그걸 잘 유지해야 한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발로 승부해야죠.(웃음)

소설가로 사는 법, 자아도취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단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양날의 검이다. 일찍부터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관심의 무게가 사방에서 그녀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등단한 작가의 수명이 짧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새 이런 쏟아지는 관심과 부담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불특정 다수가 내 소설을 읽겠구나.’라는 생각에 따른 부담감이 가장 컸어요. 거의 1년 동안 그걸 못 떨쳤던 것 같아요. 교수님이나 주변 학생들만 읽다가 이제는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제 글을 읽는 거잖아요. 뭔가 공인이 된 느낌이랄까? 근데 독자를 의식해도 진짜 의식하고 쓰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그걸 벗어나려고 많이 고생했어요. 그러다가 ‘2010 올해의 좋은 소설’에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라는 소설이 뽑혔는데, 그때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아요. 그냥 내 맘대로 쓰자.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거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거고. 독자를 의식하는 순간 독자는 떠나는 거니까.

그녀는 ‘신춘문예’ 당선 이후 자신의 부족함을 더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대학원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지금 하는 건 단점을 채워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장점을 갈고 닦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거라고. 그녀의 말에서 묻어 나오는 자신감은 ‘자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소설을 쓰려면 자기 자신에게 도취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에게 빠져 있지도 않으면서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저는 좀 제 잘난 맛에 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한번 깊은 우물에 들어가서 비관하기도 하고.(웃음) 기복이 좀 있죠. 소설을 쓸 때는 ‘난 뭔가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녀는 석사과정을 마치면 제3세계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 싶고, 박사과정을 마치면 대학강사로 서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꿈은 소설가이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아주 오랫동안.

저는 나중에 사람들이 이수진이라는 소설가를 들었을 때 ‘걔는 스무 살 초반부터 소설을 쓰더니 아직 쓰고 있네. 되게 오래 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저는 감동을 주거나 철학적인 영감을 주는 소설은 못 쓸 거에요. 하지만 읽었을 때 재미있고, 저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소설은 오랫동안 쓸 자신이 있어요. 우리 학교에 한승원 선생님께서 계시는데 그분이 등단한지 42년 되셨거든요.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를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 이수진. 시간이 지나고, 더해지는 삶의 벽돌로 짓는 그녀의 다음 소설이 벌써 기대된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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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꼭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출 수 있는 멋진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 멋있어요!
  • 김순옥

    이수진 소설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너무 멋지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박상영

    대학 도서관에서 신춘문예 모음집을 읽다 이 분의 소설을 읽으며, 이 사이에 이물감이 낀듯 생생한 느낌을 전달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렇게 생긴 분이셨군요!!! 같은 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또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몹시 반갑습니다 ^_^
  • 박보람

    맞아요, 광주까지 간 보람이 있었죠. 이렇게 기사로 만나니 또 반갑네요 ^.^!
  • 조세퐁

    @오성윤 기자. 그럼요. 하루를 내어 광주까지 내려간 보람이 있었죠. 아, 진짜 보람이도 있었습니다.
  • N

    오호, 통발을쳐놓고 물고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 글을 쓴다는 김영하 소설가님이 생각나네요. 입심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 인터뷰 내내 즐거웠겠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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