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무모한 젊음에 대한 찬가

소설가 성석제

“별달리 도움은 안 될 텐데…”.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내놓는 소설집마다 특유의 경쾌함과 해학으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해온 소설가 성석제. <인간적이다>란 소설집으로 몇 년 만에 돌아온 그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내 이야기는 여러분께 별달리 도움이 안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다. 첫 질문인 ‘본인의 20대는 어떠했는지.’에서부터 시작된 이 단서는, ‘본인의 신조’를 말하는 마지막 질문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이진 않은 말이지만’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처음엔 일종의 겸손함이겠거니 했지만, 이것이 다른 범주의 무언가라고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이 시대의 ‘잔혹한 투쟁사’였다.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 맞서 누구보다 ‘인간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삶의 무게를 장착한.

안정적인 삶에 질문을 던져라

대한민국에서 ‘문학’으로 평생을 살겠다는 결심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직장과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을 때는 말이다. 그에게도 크게 두어 번, 문학 길에서 삶의 기로가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 기로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다. 6여 년간의 직장생활 후 일이 익숙해지고 집안도 자리 잡았다고 느꼈을 때, 그는 ‘이대로 살 것인가?’하는 질문을 굳이 자신에게 던졌다.

”처음 문학을 시작했을 땐 이 일을 하며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대학에서 우연하게 기형도 씨를 알게 되어 ‘문학회’에 들어갔을 때의 마음도 그저 ‘깊이 있는 삶에의 욕심’ 정도였죠. 문학하는 사람들 몇 명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에 대한 호기심’의 많은 부분이 충족되니까. 하지만. 나는 서서히 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군대에서 읽었던 많은 책은 어떻게 보면 전환점, 어떻게 보면 기로인 어떤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반 기업에 입사하여 6~7년을 일했지만, 그렇게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와중에도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문학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야말로 ‘자나깨나’였죠. 언제나 내 옆에는 나만의 다른 세계가 있었어요. 어떤 일을 무척 좋아하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죠.”

심지어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장에서조차도 시를 생각하고 있던 그는 조직생활에 즐거이 적응해 가고 있었지만, 스스로 ‘사회화’되어 간다고 느낄 때쯤 ‘다시 한 번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개량해야 했던 것. 물론 그의 안정된 현재를 모두 버려야 하는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란 자신의 질문에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선택했기에,

“지금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빠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변해야 하는 거죠.”

소설가 성석제

별을 보고 걷되, 발밑의 웅덩이를 조심하라

문학인으로 살기 위해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시집 연구’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마치 고시공부 하듯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시집이란 시집은 쌓아놓고 모조리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 ‘시집 연구’가 끝나갈 때 즈음 그는 좌절했다. 도무지 ‘시’라는 것을 쓸 수가 없었다. ‘별을 보며 걷다가는 웅덩이에 발을 적신다.’라는 영국 속담이 당시 자신의 사정을 대변한다고 했다.

“그렇게 좌절하고 포기한 뒤 얼마 지나자,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시가 찾아왔어요. 그야말로 받아 써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시가 번쩍 떠올랐는데, 그 시로 교내 문학상의 당선 가작을 수상했죠. 그 후 출판사에서 몇 개월을 일한 뒤 받은 일종의 ‘퇴직금’같은 돈으로 제주도에서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했습니다.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1년간의 제주도 여행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는 그렇게 고시공부처럼 해서는 나올 수가 없었죠. 결국 발밑의 웅덩이를 조심하며 별을 보라는 영국 속담을 깨쳤던 거죠.”

‘노력’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사람을 중독 시킨다. 그야말로 별만 보며 걷다가는 내 발 밑에 어떤 나쁜 것이 도사리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

젊은 날의 1년? 무모함에 투자하라

꿈을 좇으면서도 주위 환경을 돌아보라는 성석제 작가는 이어 20대에 대한 충고를 덧붙였다.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어요. 친구나 학교 선생님은 물론 여행지에서 만나거나 심지어 동네를 오가다 마주친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죠.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어요. 젊은 시절엔 많이 접촉해야 해요.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게 가장 중요하죠.”

‘20대’라는 키워드에 그가 가장 먼저 찾아낸 단어는 ‘스펙’이었다. 인간을 단 하나의 기준과 잣대로 재는 사회, 그리고 피해자이며 동시에 그 모두가 이런 시스템의 협력자인 젊은이들. “안됐어요. 불만스럽기도 하고. 참∙∙∙.”라는 안타까움을 비추며 그는 말문을 열었다.

“어쨌든 잔소리밖에 할 수 없는데, 결국 남에게 맞춰 사느냐 스스로에 맞춰 사느냐 하는 문제죠. 인생은 한 번뿐이잖아요? 나는 젊은이들이 그 시절에 ‘스펙 쌓기’ 같은 사회적인 잣대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많은 것을 읽고 보고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무섭기도 하고 주변에 암초도 많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당장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면, 예행연습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여기저기로 여행하거나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해보는 거죠. 1년 정도는 투자해보고, 안되면 돌아와요. 몇십 년을 살 텐데, 한 해 정도 예행연습을 시도해 보는 게 뭐 대수인가?”

대학시절 미팅을 50번 정도 해본 것 같다는 성석제 작가는,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100번을 채우고 싶다.’고 답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더 많은 곳을 가봤다면, 인생이 훨씬 더 깊이 있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성석제 작가는,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거장’이 아니라 그저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현대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즉각적 효용이 넘치는 이 도시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성석제 작가. 그는 즉각적 효용을 안겨주는 자기개발서 대신 오랜 세월의 많은 경험과 생각으로 다져진 소설로 대중과 소통한다. 어떤가, 몇십 년을 살 텐데, 몇 개월 정도는 자기개발서는 잠시 책장에 꽂아두고 문학 서적들을 빼 읽어보는 것이. 이미 ‘스스로와 대화하는 10분’조차 아까운 당신이 ‘인간적’이기 위한 투쟁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소설가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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