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도우미, 애플리케이션 스토리

십수 년 전, ‘유비쿼터스’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떠돈 적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생활 어디에서나 IT를 접할 수 있는 과학, 고도화된 사회 모습이라는 개념이었는데, 당시 듣기엔 SF 같은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에 ‘언제 어디서나 과학문명을…’이라는 문장이 와 닿을 리 만무했다. 이후 그 신기했던 PDA가 나왔을 때도,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혁신적 소식에도 톰 크루즈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허공에 손을 대고 당겨 여러 가지 파일을 꺼내 활용하는 장면 같은 ‘유비쿼터스’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업그레이드된 폰’이라고 알려진 스마트폰에 대해 ‘유비쿼터스의 발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의 혁신’ 등 새로운 시대의 돌입을 알리는 기사로, 하루가 멀다, 신문 방송 매체는 스마트폰을 다루기 바쁘다. 도대체 스마트폰이 뭐길래.

생활 도우미, 애플리케이션 스토리

스마트폰은 더 이상 ‘폰’이길 거부하고 누군가의 애인이나 친구, 가끔은 매니저로 변신하기도 한다. 3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아는 스마트폰 ‘어플’의 놀라운 진화, 그 기상천외한 에피소드 3편.


시험을 치느라 곤죽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오던 경미, 친구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너 그 때 소개시켜 달라던 그 오빠, 이번주 토요일 시간 괜찮대. 근데 지금 당장 사진 하나 보내달라는데?”
반가운 소식에 뛸 듯이 기쁜 것도 잠시, 핸드폰을 뒤져보니 사진이 한 장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맘에 한 껏 볼을 부풀리고 귀여운 척 셀카를 찍어봤더니 ‘역시나’다. 시험 공부로 밤을 꼴딱 샜더니 입술도 터서 피까지 배어 있다. 괜히 스마트폰을 사서 화질은 지나치게 좋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경미는 ‘모어뷰티’ 애플리케이션을 켜 사진을 보정하기 시작했다. 트러블 좀 숨기고 화사하게 해줬더니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눈 딱 감고 사진을 보내니 소개 받는 오빠도 나쁘지 않아하는 눈치다. 어플 탓에 살린 목숨 ‘내 본판 땜에 살았네’하며 한숨 돌린 경미, 하지만 소개팅 날이 되어 압구정을 찾아가다 또 다른 벽에 부딪히고 만다. 압구정에 올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경미에게 이 골목길은 거미줄 수준. 다급해진 경미, ‘다음지도’를 켜서 대충 아는 골목까지 찾아온 다음 ‘스캔 서치’를 켰다. 화면이 카메라로 바뀌고 주위를 쭉 훑자 카메라 화면에 건물 이름들이 표시되기 시작한다. ‘아 저기가 편의점이니깐 저 쪽으로 가면…’ 다행히도 금새 찾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 안정을 찾고 있자니 늦게 온 오빠가 헉헉거리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저도 늦었어요’라며 생긋 웃어주고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한다. 오빠랑 대화하는 내내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중요한 건 다 물어봤음은 물론이다. ‘야 이 오빠 어떤 영화 좋아해? 이 오빠 더치페이하는 여자 좋아할까? 술 마시자 그러면 빼는 게 좋을까?’


“어? 이 노래 뭐지? 요즘 미국에서 되게 유행하는 노래잖아.”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종혁이는 한 친구의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한다. 일제히 시선이 종혁이에게로 향한다. 아, 대한민국 사람들은 눈으로도 말할 수 있구나. ‘종혁이라면 알거야’라고. 여기서 ‘모른다’고 대답하는 건 자타공인 트렌디 가이 한종혁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술자리는 조용해지고 노래만 눈치 없이 흐르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도무지 무슨 노래인지를 모르겠다.
“이 노래도 모르냐?”
당당한 표정으로 말한 종혁이, 하지만 테이블 밑의 손은 ‘shazam’ 어플리케이션을 켜느라 분주해진다. 친구에게 면박 주는 척 시간을 끌며 Shazam에게 노래를 들려주다 스마트폰을 슬쩍 보니 ‘누구의 무슨 노래다’하고 결과물이 나와 있다.
“제임스 모리슨의 유깁미썸씽이잖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진다. 그 친구에게 그것도 몰랐냐며 자기네들도 원래 다 알고 있었단다. 기분이 좋아진 종혁이, 음악사이트 어플리케이션에서 그 노래의 mp3를 바로 다운받아 Bump 어플리케이션으로 친구들에게 공유해준다. 스마트폰끼리 한번 부딪히기만 하면 파일이 다른 폰으로 이동되니 즐거운 술자리 지루하게 만들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난 주현이는 컴퓨터를 켜 ‘카디오 트레이너’ 어플 연동 사이트에 접속한다. 오늘 뛸 거리를 확인한 주현이는 ‘카디오 트레이너’ 어플과 함께 아침 조깅을 한다. ‘코리아 넥스트 버스’ 어플과 ‘지하철 실시간 도착’ 어플이 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아침 체조 후 모닝커피와 크라상을 먹고 집을 나선 주현이.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다 mp3 노래에 필이 꽂혔다.
‘링드로이드’ 어플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mp3파일을 편집해 벨소리로 만들어 저장하곤, 자는 척하면서 주머니 속에서 전화 벨을 켜 지하철 안의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벨소리 센스를 과시한 주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도 한번 더 반복했다. 집에 오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려보니 쿠키가 세일 기간이란다. ‘레드레이저’ 어플을 이용해 상품 정보를 알아보니 다른 곳에서 3000원이나 더 싸게 살 수 있다. 괜한 마트 알바생에게 썩소를 던지며 마트를 나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그렇듯이 ‘에스코트 맵’ 어플을 켰다. 흉흉한 소식이 많은 만큼 꼭 잊지 않고 밤길엔 ‘에스코트 맵’ 어플을 사용하는 주현이. 정말, 잘 생기면 어플 없인 살 수도 없는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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