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명랑 남미 여행기]제1화 라틴 대륙을 뛰어 다니다


가난한 백패커에게 직항이란 없다. 도쿄에서 한번, LA에서 한번, 꼬박 하루를 잡아먹는 비행 시간이다. 도쿄에서 LA로 가던 중 미국, 샌 디에고 출신이라는 로스(Ross) 아저씨를 만났는데 나 혼자 멕시코로 간다니까 버럭 놀란다. 한국에서도 무던히 들은 소리다. 들을 때마다 더욱 용기가 생긴다는 걸 그들은 알까. 아무도 가보지도 않은 그 곳에, 내가 가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용기 말이다. 그래도 겁 안난다면 거짓말이겠지. 멕시카나 비행기가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이미 가방 끈을 단단히 붙들어 맨 상태였다. 멕시코 시티 공항은 신선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 구석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안돼, 멕시코는 위험한 곳이야!’ 용기 반, 두려움 반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결국 씩씩한 모험가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택시를 잡는 대신 혼잡하기로 유명한 멕시코 지하철을 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하철 노선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한 세뇨르(아저씨)에게 길을 묻는다. 그런데 이 아저씨,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손짓 발짓 해가며 길을 알려 주더니 내려야할 역에 다다르자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내리라고 말까지 해준다. 친절하다! 무사히 소깔로(Z?calo) 역에 도착, 내가 머무를 유스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내게 말을 붙여왔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숙소까지 따라온 뒤 소개료를 챙기는 현지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나는 한 발 물러섰다. 기름진 머리와 때가 낀 셔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뭐라 뭐라 말하더니 노트에 자신의 이름, 이메일 그리고 예쁘다, 좋은 여행 되기를 바란다 등을 적어주고 깔끔히 물러난다. 흠, 그리 나쁘지 않은 첫 날이다.


다음 날 오전 8시 기상. 멕시코를 알아갈 시간이다. 오늘은 프리다 칼로가 살던 ‘푸른 집(Casa Azul)’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나오자 밖에는 이미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멕시코는 11월부터 건기기 때문에 햇볕이 이렇게 내리쬐도 전혀 덥지 않다. 일교차도 큰 편이어서 민소매 옷부터 두터운 옷까지 다양한 옷차림을 길에서 볼 수 있었다. 우선 소깔로(중심가)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메트로폴리탄 성당(Catedral Metropolitana)에 들어섰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이 성당은 앞으로 무수히 보게될 다른 콜로니얼 건물들 마냥 매우 아름다웠다. 밖으로 나와서 소깔로 근처의 시장도 잠깐 구경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서부터 천원 짜리 자질구레한 물건들, 옷, 과일 등속까지 이것 저것이 모두 멋진 볼거리였다. 멕시칸들에게는 고래고래 소리질러야 하는 생업의 현장이겠지만. 유유히 이방인의 자유를 만끽하던 나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푸른 집’이 있는 코요아칸으로 발길을 돌렸다.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멕시코에 왔을 정도로 푸른 집에 대한 나의 기대는 컸다. 대학교 1학년 때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란 책을 읽고서부터 프리다 칼로에 흠뻑 빠졌던 나는 이 책에 나와있던 흑백의 ‘푸른 집’ 사진을 늘 동경해왔다. 꼭 내 카메라로 푸른 빛이 선연한 푸른 집 사진을 담겠다는 꿈을 안고서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 꿈을 실현하는 날이다. 코요아칸에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가는 길도 즐거웠다. 콧노래를 부르며 룰루랄라 걷던 내 눈 앞에 두둥! 드디어 푸른 집이 나타났다.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고 죽었던 이 집은 이제 무세오 프리다 칼로(Museo Frida Kahlo)로 불린다. 프리다의 그림과 함께 프리다의 영원한 연인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 프리다의 작업실, 부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멕시코의 가장 유명한 화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18살 때 당한 전차 사고로 평생의 절반 이상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는 디에고의 외도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프리다. 푸른 빛, 노란 빛으로 화사한 그녀의 집에서 나는 그녀의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 멕시코에서 맞는 셋째날이다. 멕시코의 많은 박물관은 일요일에 입장료가 무료인 곳이 많다. 오늘 가게 될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도 그런 멋진 곳 중 하나.(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입장료를 냈다) 멕시코 시티 차풀테펙 구역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규모와 넓이에 놀라게 된다. 박물관 건물은 ㄷ자 형태로 누워 있는데 그 가운데에 커다란 기둥이 지붕 하나를 거뜬히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둥을 감싸며 물줄기가 떨어지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멕시코 지역별로 혹은 시기별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어찌나 넓고 볼 것도 많은지 5시간을 구경했는데도 반밖에 보지 못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역사적 보물을 갖고 있는 멕시코가 부러웠다.


마야 지역까지 둘러보고는 잠시 쉬고 있는데 한 경찰 아저씨가 ‘¡Hola!(안녕!)’하며 다가왔다. 멕시코 시내에서도 본 적 있는 제복 차림이었으므로 분명 경찰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왔느냐 몇 살이냐 등의 통상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국에서 스페인어 학원을 조금 다녔던 나, 간단한 질문은 이해한다.(으쓱) 그런데 이 아저씨, 이상한 소리를 한다. “Vamos a un hotel.(호텔로 가자)”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물어 보았다. “¿Vamos a d?nde?(어디로 가자고요?)” 그랬더니 여전히 똑같이 말한다. “¿Por qu??(왜요?)” 그랬더니 “¿No se?(몰라?)” 란다. 이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불쑥 가버린다. 부디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기를… 오 주여!


물론 이런 멕시칸들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멕시코 시티에서 4일을 지낸 나는 은광으로 유명한 과나후아또로 이동한다. 긴 이동 거리 때문에 새벽 2시가 넘어서 과나후아또에 도착한 나는 그날 묶기로 한 숙소의 문이 잠겨 있어 숙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청년이 나를 발견했다. 그는 내가 묶기로 한 숙소 바로 옆에서 친구들과 함께 바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를 기꺼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자게 해주었다. 오늘로써 멕시코를 여행한 지 1주일이 된다. 짧은 1주일 동안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란 론리 플래닛이 추천하는 분위기, 근사한 건물 에 의해 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은 그 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말이다. 그날 밤 나를 도와준 멕시칸 청년 이반 덕붙에 과나후아또는 나의 기억에 근사한 도시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멕시코 역시 그러하다.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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