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전통 종이 ‘저이조’의 위대한 탄생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되는 현대는 정녕 ‘종이 상실 시대’인 걸까? 베트남 하노이의 사회적 기업인
<조 프로젝트>는 자칫 잊힐 수 있는 종이를 전통이란 이름 아래 이어가고 있다.

하노이의 전통종이 ‘저이조’ 체험 바로 가기

<HOW TO>
작은 A4 크기의 종이를 만드는 것으로, 공방을 방문하거나 이메일로 신청(zoproject.edu@gmail.com). 북 바인딩이나 귀고리 만들기, 캘리그라피 등 다른 체험도 있다.
<TIME>
약 2시간
<ADDRESS>
27 railway 10, Điện Biên Phủ, Điện Bàn, Hoàn Kiếm, Hà Nội, Viet Nam
<TIPS>
저이조 제작의 전 과정을 체험하고 싶다면 원데이 클래스가 아닌 워크숍을 예약한다. zopaper.com

하노이의 작은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택이 병풍처럼 늘어선 사이로 기찻길이 놓여 있다. 언뜻 군산의 경암동 철길마을이 떠오른다. 마을을 관통하던 옛 군산선은 사라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하노이 역과 롱비엔 역을 이어주는 기차가 간헐적으로 달린다. 개와 닭이 어슬렁거리고 철길을 테라스 삼은 주민의 모습을 지나치니, ‘저이조’ 제작을 체험할 공방 <조 프로젝트>의 문이 열려 있었다.
<조 프로젝트>는 베트남 전통 종이인 ‘저이조’를 널리 알리고, 이를 만든 소수민족의 삶을 지원하는 하노이 기반의 사회적 기업이다. 베트남어로 ‘저이’는 종이, ‘조’는 종이의 원료가 되는 나무의 이름으로, <조 프로젝트>란 명칭은 원재료로부터 탄생했다. 공간은 전통 종이 관련 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 숍인 1층과 저이조를 활용해 제작하는 공방인 2층으로 이뤄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제품으로 예상될 법한 달력이나 노트부터 아이디얼한 귀고리와 목걸이까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사실 원재료인 나무는 Dó이나 베트남어로 ‘조’로 발음되어 알파벳 ‘Z’를 사용했다.


전통적인 문양으로 채색된 귀고리. 저이조를 활용한 귀걸이 제작도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체험으로 손꼽힌다.

오늘은 전통 종이인 저이조 자체를 제작하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제작은 실제로 2~3일간 여러 단계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 약 2시간으로 압축한 이 과정은 저이조 제작의 거의 마지막 단계를 체험하는 것. 실제 작업 시간을 거쳐 완성된 종이를 만나기까지는 건조 과정이 필요해 1~2주의 시간이 걸린다.

STEP 1_ 조를 말릴 천을 싹둑싹둑


저이조를 제작할 나무 틀에 맞춰 천을 자른다.

저이조의 제작 방식은 바짝 말린 나무줄기를 물에 불려 말리는 방식으로, 한국의 전통 종이인 한지의 제작법과 매우 유사하다. 저이조 제작 체험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조를 말릴 천을 자르며 시작한다. 천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부직포와 흡사한 재질로, 튼튼하여 완성된 저이조를 말리기에 적합할 것 같다.

STEP 2_ 바짝 말린 조 나무줄기를 잘게 찢어 물에 불린다


바짝 마른 조나무. 이를 찢어서 물에 불려야 한다.


물에 적셔져 풀이 죽은 조나무를 잘게 찢는다.


물에 불은 조나무. 충분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물을 저어줘야 한다.

바짝 말린 조나무는 딱딱하면서도 결대로 잘 찢어졌다. 이를 마치 수제비 뜨듯 잘게 찢어서 물에 넣었다. <조 프로젝트>의 홍키 매니저가 이전 워크숍에서 썼던 조나무가 담긴 양동이를 선보인다. 양동이 속 조나무가 물에 잘 불 수 있도록 여러 번 손으로 저어줘야 한다. 조나무가 부드러운 톱밥처럼 변해 간다.

STEP 3_ 나무 틀에 물에 불린 조를 층층이 쌓고 장식도 플러스

이제 조를 쌓아 말릴 나무 틀이 필요하다. 나무 틀은 마치 체처럼 작은 구멍이 촘촘하다. 양동이 속 조를 바가지로 물과 함께 떠서 틀에 부으면, 물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고 조만 틀에 남는다. 이런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구멍을 다 메꿀 정도로 조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 이후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장식을 넣는다. 완성할 저이조를 상상하며 나무줄기나 꽃잎 등을 조 위로 올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잎이든 꽃이든 장식품을 평평하고 얇게 쌓아 올려야 한다는 점. 이 장식을 여러 번 시도한 매니저 말에 의하면, 잎은 색을 잃지만 꽃은 제 색을 유지한다고 한다. 장식을 모두 끝냈다면, 물에 불린 조를 틀 위로 다시 여러 번 붓는다. 장식품 위로, 틀 구멍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부어야 한다.


선명한 분홍빛 꽃잎 위로 여러 번 불린 조를 붓는 모습.

STEP 4_ 나무 틀의 물기가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림

전통 공예는 그 어떤 분야든 느림과 기다림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정성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조를 여러 번 부은 다음엔 약 30분간 기다려야 한다. 틀에서 작은 구멍 사이로 물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그 사이 1층의 여러 제품을 둘러봤다. 그 어떤 것도 저이조를 활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저이조를 돌돌 말아 나무 도장으로 찍어 만든 목걸이나 버려지는 작은 열매를 색을 입힌 장식용품 등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행동을 보았다.


장식으로 활용되는 화려한 색의 나무 구슬.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하려는 <조 프로젝트>의 기본 정신 때문이다.


저이조를 돌돌 말아 그 위에 도장을 찍어 완성한 목걸이. <조 프로젝트>의 도전 정신이 엿보인다.

STEP 5_ 롤러로 조를 천 위에 부착

나무 틀에서 어느 정도 물이 다 빠졌다면, 스펀지로 된 롤러를 사용해 틀 위의 조를 천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한다. 롤러를 물에 적신 후 물기는 짜내 조 위에 천을 덮고 롤러를 굴린다. 힘을 주어 여러 번 굴릴수록 나무 틀에 있는 저이조가 천에 옮겨진다.

손에 힘을 콱 주고 롤러를 여러 번 굴린다.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듯 천으로 저이조가 이동한다.

STEP 6_ 이제는 자연 건조를 할 시간

나무 틀에서 천을 천천히 떼어낸다. 천에 장식까지 완성한 저이조가 붙은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드디어 완성 단계에 다다랐지만, 다시 기다림이다. 맑은 날을 기준으로 6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자신이 만든 저이조를 만날 수 있다. 천에서 저이조를 떼어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전통 종이 제작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시간이 더 소요된다. 나무 틀에서 분리한 조를 보통 벽에 걸어 그늘에서 적게는 3일, 길게는 7일까지 말려야 한다. 7일 이후에는 젖은 상태라도 천에서 떼어낸다.


나무 틀에서 떼어낸 조의 모습. 이제 이를 잘 말린 후 떼어내면 저이조 완성!


물기가 사라지면서 은은하게 조 사이의 꽃잎도 살아난다.


<조 프로젝트>가 돕고 있는 두 소수민족이 이어온 전통 종이
철길 위에서 젖은 조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 가운데 생각했다. 놀라운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는 베트남 속에서 전통문화를 전수하려고 애쓰는 공방 앞에서다. 전통문화는 한 국가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 아니던가. 외국인이 이곳의 여러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만의 무엇’을 찾으려고 전 세계인을 부르는 것은 바로 그 나라의 전통이란 방증이다. 종이를 만들면서 들었던 저이조 장인인 소수민족과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전통 보존과 경제 성장의 균형이 이뤄져야 할 시기임을 절감했다. 저이조 체험은 단순히 종이 제작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자세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매니저가 궁금해하는 우리의 전통 한지에 대해 공부해 이메일을 띄워야겠다.

LG Social Challenger 168274
LG Social Challenger 박수빈 세상을 향한 다리가 되어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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