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소나무를 닮은 그 올곧음

점점 사라지고 잊혀 가는 ‘장인정신’을 자신의 작품에 오롯이 담아내는 한편, 삶의 궤적에 옮겨 펼쳐 내며 고집스럽게 수십 년간 사진을 찍어온 이가 있다. 누구나 DSLR로 사진을 쉽게 찍어내는 디지털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아날로그 세대이자 골동품’이라 자신을 명명하는 그는 진실함과 우직함으로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는 사진작가 배병우다.

사진 제공 _ 빛으로 그린 그림(컬러북스)

긍정을 먹고 이겨낸 청춘

그의 나이 예순하고도 하나. 20대 청춘, 까마득한 그 시절을 돌아봐 달라고 말하는 것이 가혹한 질문이었을까. 회상의 과정 끝에 그가 내뱉은 말은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긍정을 먹고 이겨냈다’는 문장이었다.

첫 출발은 사진이 아닌 응용 미술학 즉, 디자인이었어요. 사진을 접하게 된 건 한국사진이 대중화되던 70년대, 미대를 다니던 이웃집 동네 형이 어느 날 ‘너는 어째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네더군요. 이전부터 사진에 흥미가 있던 터라,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고 사진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어요.

대학 4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그는 원체 배고픈 사진이란 것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돈벌이가 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찍었고, 무엇보다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그 시간의 여정을 렌즈에 담아냈다. 전남 여수 바닷가에서 자란 그였기에 마음의 고향을 찾아간 남쪽 섬들의 해안, 등대, 파도 등을 비롯한 바다의 그 풍경은 젊은 배병우의 마음에 담겨, 고집스럽게 자연 사진을 담아내는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이끈 원천이 되었다.

가난했던 학생 시절 방학 때면 학우들과 함께 냄비에 밥과 반찬을 담아 학교 뒷산(와우산)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기억이 나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모든 것이 힘든 시기였지만, 낙천적으로 살고자 노력했어요. 삶을 살아보면 언제든 어려울 때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겨 내는 자세가 중요하지요. 긍정의 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었어요.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온다


배병우의 이름 앞에는 ‘소나무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적인 팝 가수 엘튼 존이 수천 만원의 거액을 내고 소나무 사진작품을 구입하여 한때 유명세를 탔고, 한미 정상회담 때는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그의 사진집을 건네기도 했다. 해외에서 더욱 화제를 낳고 인정받고 있는 배병우에게 사진작가로서의 성공담은 그저 ‘시대의 흐름을 잘 탔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문장뿐이다.

그저 준비되어 있었고, 내 차례가 왔을 때 그 덕을 본 것뿐이에요. 내가 소나무 사진 하나만을 수십 년 찍어서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대의 운이라는 행운과 만난 덕분이에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어찌 보면 그의 겸손은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지 않을까. 어느 분야든 달인의 경지에 이르고 성공을 이루려면 1만 시간의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배병우에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그것은 바로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어느 주제에 ‘꽂히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20~30년을 그 주제 하나에 몰두하여 관찰하고 고수하는 힘은 몰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사진만 찍었다.’는 배병우의 말대로 사진은 곧 그의 삶과 함께했고, 우직한 힘이 결국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를 만들었다.

이 시대가 아닌 시대에 지금과 같은 작품활동을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사진작업에 따른 기업들의 지원 또한 어려웠을 것이고, 여러 프로젝트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초기에는 소나무 사진 역시 ‘옛날사진’이라는 혹독한 비평을 받았고, 주제를 바꿔야 하는 것에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믿고 기다린다면 자기 차례가 한번은 온다.’는 인생철학으로 내가 하는 일에 무엇보다도 믿음을 갖고 몰두했어요. 그 시대를 맞이하는 기본에는 무엇보다 노력과 집중이 반드시 필요해요.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때는 이미 버스는 떠나버린 후가 되겠죠.

배병우의 사진은 부단한 노력과 자연을 향한 그만의 시각에서 비롯되었고, 자신의 차례를 믿고 기다린 ‘몰입의 힘’은 젊은 시절의 방황이 이끈 결과물이다.

‘다른 것’을 배우고 느껴라

배병우는 국내 자연 풍경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풍경들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 문화재관리국의 요청을 받아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과 숲을 담는 작업은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글로벌 시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제 국제화라는 건 필수명제가 됐어요. 최소한 남의 나라말 하나 정도는 배워야 하는 시대인 거죠. 자신의 무대를 한정 짓지 말고 넓은 안목을 갖고 밖으로 나가서 활동해야 해요. 만약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이 생겼다면, 가장 먼저 그곳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비싼 돈 들여 현지 스텝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키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전천후 인물이 되어야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건 진리예요.

서울예대 사진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수업시간 격의 없이 제자들과 어울리기로 잘 알려졌다. 이 시대의 청춘들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이기에 20대 젊은 친구들에게 갖는 진심 어린 마음 또한 남다르다.

대학생이라면 복수전공 하나씩은 꼭 하길 바랍니다. 사진을 놓고 본다면 이제는 사진을 찍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사회적 시각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어요. TV가 전쟁을 생중계하고, 누구나 디지털 시대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사진의 정의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이제는 카메라라는 기구에 옮겨 담을 기술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학문이 아닌 다른 영역을 배워야 해요. 역사도 배우고 사회적 시각도 기르고 다른 배경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디지털 시대에 DSLR은 대다수 일반인을 사진작가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잘 찍는 것일 뿐, 자신의 이미지를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은 살아 숨쉬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저 박제된 시간과 공간을 남길 뿐이라는 것. 남들과는 다른 사진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각을 길러야 하고, 그것은 비단 사진의 경우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되는 메시지임을 그는 강조했다.
앞으로도 여유가 생기면 새로운 소나무 사진을 찾아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닐 것이라는 배병우. 그의 ‘늙지 않는 젊음’은 아마도 어떤 한 가지에 마음이 끌려 그것에 몰두하고 모든 것을 바쳐 온 그의 진실한 삶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는지. ‘장인’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한 믿음, 그 단순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럽젠 독자를 향한 그의 사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직이 서 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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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려한 싸인이 그의 위트를 담아내는 것 같네요! 몰입의 힘으로 소나무의 진정한 미를 표현해낸 배병우 작가 존경합니당
  • 박보람

    와, 마지막 코멘트 이미지를 보니까, 귀엽고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이 두 감정이 섞일 수 있는지. ㅎㅎ
  • 으헣

    드디어 배병우님 올라왔군요.^^ 글 한 번이 상록수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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