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의 젊은 논리] 솔직함이 독창성의 어머니다

   
 
우려먹기에 일가견이 있는 젊은 논리의 필자는 토론이란 주제로 ‘삼탕’까지 우려먹으려 한다. 얼굴이 두껍다고? 음, 솔직히 그런 감은 든다. 그러나 원래 토론에서는 좀 얼굴이 두꺼워야 맹렬하게 밀려드는 공격에도 주눅들지 않고 버틸 수 있고, 더군다나 토론을 훈련하는 과정에서는 부드럽지만 절대로 뚫지 못할 신소재라도 있다면, 마치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처럼 그걸 얼굴에 깔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한다는 점을 목놓아 주장하면서 삼탕을 정당화 해볼 심산이다.
때로는 스스로가 느끼기에 좀 문제가 있는 주장이지만 끝까지 정당화해보는 과정에서 논증 능력이 키워지기도 하고, 그것이 토론 경쟁력을 높이는데 고갱이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겉으로는 ‘왕고집’을 부리면서도 내 주장의 문제를 내심 인정하는 냉정한 자기 반성의 은밀한 눈초리가 흐려지면 안되겠고, 그래서 토론을 마친 뒤 술자리에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이전 주장을 거리낌 없이 내던질 수 있는 용기 있는 뻔뻔함도 필수적이다.
 
핵심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마치 국수를 끝없이 뽑듯이 늘어놓아 토론 판을 지루하게 만드는 ‘국수공장형’, 또 핵심적인 주장을 빨리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고 별 쓸데없고 의미 없는 배경 설명만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무늬만 대하소설형’, 별 것 아닌 평범한 주장에 엄청난 의미를 실어 마치 예언자의 예언 수준이거나 인류 최대의 문제를 다루는 듯 호들갑떠는 ‘과장 사기형’, 멋진 경구나 쇼킹한 사건, 특이한 예를 통해 시선을 끌어보려는 ‘쇼맨십 과시형’등. 물론 이 모두 우리가 마음을 열고 토론 과정에서 껴안고 가야할 파트너들이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인격 수양의 기회로 생각하는 수밖에.
그 중 가장 짜증이 나는 스타일은 무언가 튀어보려고 너무 눈에 띄게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친구의 눈빛에는 ‘난 너희들과는 달라’ 라는 오묘한 색깔이 어른거리지만 입에서 나오는 주장들은 그런 눈빛을 받쳐주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친구들은 방향은 제대로 잡은 친구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토론이나 글을 쓰면서 계속 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독창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있던 얘기, 남들이 다 하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문제의 숨겨진 측면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독창성은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정보 사회에서 특히 그렇다. 정보 사회에는 이제 지식을 이해해서 암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곳곳에 잘 정리된 정보 시스템들이 입을 벌린 채 사용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판단력, 그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검색력, 찾아낸 정보를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회가 워낙 빨리 바뀌다 보니 이미 있는 정보만으로는 아무리 응용하더라도 주어진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 여백을 메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상상력, 창의력이고, 독창성은 바로 그런 능력을 극대화할 때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다. 따라서 ‘난 너희들과는 달라’라는 눈빛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튀고자 하는 친구들의 큰 문제점은 독창성을 기르고 발휘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창성의 핵심은 ‘남하고 다름’에 있다기보다 ‘내 것을 만들고 보여주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쓴 글을 보면서 “야, 참 독창적이다”라고 감격해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상태인가? 정답은 “심각한 치료를 요하는 상태”이다. 자기는 자기 이야기를 했을 따름인데 그것이 때에 따라서는 남들로부터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창성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넌센스다.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는 마음을 비우고 평가를 받으면 된다.
 
필자가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국”영”수 본고사가 있었다. 당시는 국어 시험 마지막에 작문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필자가 시험 칠 당시에는 ‘월매와 향단의 성격을 비교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여기서 ‘월매’와 ‘향단’은 ‘月梅’와 ‘香丹’이라는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었다. 월매와 향단 하면 춘향전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춘향전에서의 월매와 향단의 성격을 비교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문제를 보는 순간 춘향전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月梅’는 ‘달 빛 속에 피어난 매화’로 읽혀졌고, 이런 독해에 맞추다 보니 ‘香丹’도 조금 무리가 있긴 하지만 ‘향기로운 목단(牧丹), 즉 향내를 뿜어내는 모란’으로 읽혀졌다.
한 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용히 스스로 분석해보면 시험 보기 사흘 전부터 옛 시조들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생긴 판독 방식으로 추측된다. 여하튼 열심히 썼다. 남녀를 대비시켜 달 속에 핀 매화는 우리 고전적 여인상의 풍모고, 향기로운 모란의 선비와 지사의 풍모라는 식으로 한참 너스레를 떤 뒤 흐뭇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빠져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친구들이 하나같이 작문이 춘향전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때 필자의 심정이 어떠했겠나? 요즘 식으로 말하면 끝없는 번지점프를 하는 심정이었다. 친구들이 다가와서 위로한답시고 “재수는 필수잖아”라고 하면서 어깨를 두들기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합격했고, 나중에 기회가 있어서 보니 국어 성적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작문 때문이었다. 왜? 독창적이니까. 물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독창성…

신변 잡기를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은 평생 딱 한 번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경험이라 아직도 감격에 겨워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튀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한 마디 점잖게 꾸짖기 위함이다. 튀고자 한다면 우선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솔직함이 독창성을 위한 가장 기초 조건이라는 것을. 물론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왜 ‘예’일까? 정말 ‘예’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따져 묻는 근본적인 사고가 무엇보다도 꼭 필요하다. 그 얘긴 길게 할 수 없으니 그냥 결론만 정리해서 강조하며 끝내자. 의식적으로 튀고자 하는 ‘튀기’보다는 진지하고 솔직한 ‘삐따기’가 독창성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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