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의 젊은 논리] 다수결이 다수의 횡포가 아니기 위해서는…

   
 
은 논리’의 필자는 이번에도 총리 서리의 불행을 먹고 살아야
할까보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지난 번 글과 연장선
상에서 이 두 번째 부결 사건에 대해서 무언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주위의 분위기 때문이다. 장대환 총리 서리 인준안이 부결되는 날, 하필 또 어느 술자리에 있었는데,
‘젊은 논리’ 첫 번째 글을 읽은 후배가 약간의 비아냥을 담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형,
여자는 부결되고 남자는 가결되었다면 가부장제의 최면 운운했던 형 얘기가 맞아떨어질 뻔 했는데, 남자 서리도
부결되었잖아요. 역시 총리 서리 부결 문제는 가부장제의 최면과는 관련이 없는 정치판의 정쟁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다음 날 <독자 의견>에도 어느 분이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 것을 보니,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있는 듯 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필자로서는 여전히 장상 서리 경우에
대한 지난 번의 의혹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론 총리 서리의 인준 문제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정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두 경우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지난 번 제기한 의혹을 철회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오히려 이런 차이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고려해야
할 요소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화해버리는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장상 총리 서리의 경우에는 자유 투표를 했지만, 장대환 총리 서리의 경우에는
다수당이 당론으로 부결을 정하고 표결에 임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부결은 표결 직전 이미
예측된 것이었고, 따라서 동요가 크지 않은 반면, 지난 번은 부결이란 결과에 대해서 투표한 본인들도 상당히
당황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보이는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가 주된 요소일
수 있지만, 지난 번은 자유 투표에서 빚어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였고,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중요한 주범 중 하나가 가부장제의 최면이 아닐까 필자의 의심은 아직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번째 부결 사태를 보면서 필자 머리 속에 떠오른 화두는
‘다수결’의 문제이다. 두 번의 부결 사태에 대하여 다수의 횡포라는 주장과 정당한 표결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수결이
과연 믿을만한 원리인지에 대한 의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물음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인정되어 있는 다수결 원리이지만 논리적으로는 ‘대중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다수결로 정할 문제와 다수결로 정해서는 안될 문제를 잘 구분해서 접근해야만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우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판단을 다수결에 의해 정하면
‘대중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환자가 말기 암을 앓고 있는지 아닌지를 다수의 의견으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다수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나 원하는 바에 대해서는 다수결로 정할 수 밖에 없다. 가족 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는
다수결로 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모두가 상식을 갖추고 있다는 전제에서만 다수결은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사실 17세기 이전의 정치철학자들은 민주주의를 어리석은
다수의 횡포를 낳는다는 점에서 비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리가 근대의 주된 원리로 확보된
데에는 ‘상식(common sense)’이란 개념이 확립된 탓이 크다. 근대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카르트는 그의
주저 『방법서설』의 첫머리를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을 가진다. 이 때 양식이란 이성적 판단력을
말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는 양식, 그것이 바로 상식이다. 신분제가 지배하던
중세에는 신분에 따라 상식을 가진 소수의 지배 계층과 상식이 없는 다수의 피지배 계층으로 나누었고, 따라서
다수결은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다수의 의견을 판단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다수가 전문가 집단일 경우에는 다수의 의견을 객관적 진리로 일단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질병과 관련해서는 전문가인 의사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회에서 벌어지는 인사 청문회가 대중에의 호소나 다수의 횡포를 범하지
않을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청문회가 총리가 될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한다기 보다는 과연 그 후보자가 국민들이
원하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경우다. 실제로 현재의 인사 청문회 분위기에 이런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개인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보다는 흠 없는 깨끗한 사람을 국민이 원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과연 이
전제가 실제 국민들의 바램가 일치하는지가 문제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표결자들이 상식이라는 필수조건을 제대로 발휘했는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부결의 당론을 결정한 과정에서 상식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판단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청문회를 후보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과정으로 볼 경우에는 국회의원들이 정부
관료의 능력과 소양을 평가하는 전문가로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자,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면서,
또 한 번 총리 서리 표결 문제를 거론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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