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 시인ㅣ전하지 못한 진심

넘치는 감성의 시대다. SNS 피드에 가득 차고 넘치는 감성들. 이렇듯 ‘갬성’에 빠져 있지만 스스로의 감정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SNS 식 ‘갬성’은 잠시 접어두고 내 마음 속 ‘감정’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시인을 만났다. ‘울기 위해’ 시를 쓰는 박소란 시인이다.

PART1.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Q. 박소란 시인에게 마음을 울리는, 혹은 움직이는 ‘심장에 가까운 말’은 무엇인가요?

‘심장에 가까운 말’은 제 첫 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심장에 가까운 말’ 자체가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셨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심장에 가까운 말’은 일상적인 말이어서, 이 말이 무겁지 않았으면 해요. 예를 들자면, “밥은 먹었어?”, “몸은 괜찮아?” 같은 일상적인 말들이 제 마음이 움직이는 심장에 가까운 말인 것 같아요.

Q.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에서 자취방이나 집과 같은 공간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박소란 시인에게, 자취방 혹은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자취방이나 집은 ‘숨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자취방과 집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나 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외로움을 주는 공간으로도 여길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외부라는 공간이 외롭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자취방과 집이라는 공간은 외로움을 덜어내고,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Q.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를 마주하는데요. 박소란 시인은 실패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망명’이라는 시에서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실패’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를 쓸 당시에는 주된 주제였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끝이 아닌 모든 게 실패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살아 있는 제 모습이 싫었고,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실패라고 여겼거든요.
이 시를 떠나서 좀 더 큰 의미에서 실패를 생각한다면, 실패는 ‘대체로 우리가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일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우리가 행하는 대부분의 일이 실패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 실패를 부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우리는 오늘도 실패하고 내일도 실패하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건데, 계속 ‘성공’이라는 허상 혹은 매끈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 기준치를 채우지 못한 실패나 실수를 두렵게 여기게 되죠. 그냥 실패는 우리 일상에 친근하게 올 수 있으니까, 혹은 소중한 내 일부니까, 실패를 좀 아껴줬으면 좋겠어요.

Q. 박소란 시인에게,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아름다움이 현실과는 조금 먼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의 현실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는 것 혹은 도달하지 못하는 미지의 것이죠. 그렇다고 당장 아름답지 않은 우리의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Q.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는 ‘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박소란 시인에게 ‘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앞에 놓인 문이 항상 새로운 문인 것처럼, 저는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등장하는 ‘문’이 각 시에서 개별적인 의미로 읽히기를 바라요. 그래도 하나로 특정한 정의를 내리자면, 문 저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문 이편의 나를 나눈 개념으로 보았어요.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개념이지만, 벽이 아닌 언제든 열릴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했어요.
조금 전 질문의 답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온전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 아래 문 이편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이 문을 닫힌 문으로 보시고, 화자의 마음이 닫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지만, 저는 그런 개념보다는 닫힌 문 저편의 존재로 인해 이편은 살아갈 수 있고, 문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의 개념으로 썼습니다.

Q. 박소란 시인에게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또 반대로 ‘죽어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 저 편에 있는 내게 없는 어떤 존재로 인해, 문 이편에 있는 내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 저편에 있는 존재는 저에게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떠나보낸 존재예요. 이 존재는 제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저를 살아갈 수 있게 하죠. 저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다르게 봐요. 지금 이 순간에 제가 좋아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현실에 없어요. 이미 죽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문 저편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죽어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과 같잖아요. 정말 정반대의 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같은 말이죠.

PART2. 20대, 시인에게 묻다

Q. 사실, 시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생활패턴을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시인분마다 생활패턴은 다르겠지만, 박소란 시인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제 하루는 여러분과 그리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부분의 시인과는 다르게 낮에 시를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낮에는 커피숍에서 시를 쓰고, 밤에는 프리랜서 일을 해요. 원래는 저는 직장인이었는데, 3년 전부터 그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하는 이 공간 ‘더숲’에서도 일의 일환으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에 참여 중이에요. 이외에도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하는 일 등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낮에 시를 쓰신다는 말씀에 깜짝 놀랐어요. 박소란 시인의 시들은 주로 ‘애()’에 집중되어 있어서 주로 밤에 쓰시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낮에 시를 쓰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 시를 읽고 저를 만나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저를 ‘말랑말랑’, ‘감성감성’한 성격일 거로 생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생각보다 평상시에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반대로 시를 쓸 때는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아마 평상시에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을 시를 쓰며 토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밤에 시를 쓰게 되면 감정을 조절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많은 분이 공감하시겠지만, 밤이나 새벽에 쓴 글은 아침에 다시 보면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요. 이런 이유로 주로 낮에 시를 쓰게 됐어요.

Q. 시를 쓰실 때, ‘꼭 이것만은 담아내겠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꼭 뭘 담아내겠다고 생각하면서 시를 쓰지는 않아요. 시를 쓸 때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거든요. 그래서 특정한 무언가를 시에 담아낸다고는 하기 힘들어요. 다만, 시를 쓸 때 염두에 두는 건 있어요. 시를 다 쓰고 나서 ‘이 시에 ’칼‘이든 ’바늘‘이든 뾰족한 것이 있는가?’를 따지고, 확인해요. 제가 기존의 다른 시들보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창출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 안에서 저만 줄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Q. 시인분마다 시의 소재를 찾는 방법은 다르기 마련인데, 박소란 시인만의 소재 선정 방법이 궁금합니다.

제 시를 보면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소재,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것들이 자주 등장하고는 해요. 상추, 비닐봉지, 깡통 같은 것들이 있죠. 이 소재들은 보통 평소에 해 놓은 메모를 통해 얻는 것 같아요. 주로 걸을 때 문득 드는 생각들을 메모해 놓거든요. 제가 노래나 영화를 자주 접하는 편이 아니어서 무언가 자극을 받을 수 있을 만한 경험이 그리 많지가 아니요. 그래서 걸을 때 많은 자극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제 시의 소재들은 외부환경을 통해 나온다기보다 저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Q. 박소란 시인의 20대는 어떤 20대였나요? 그 시절 꿈꾸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유사한가요?

저는 20대 때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특히, 시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슬프게도 저의 20대는 ‘아르바이트’와 ‘일’이었어요.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일을 바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을 하는 동안에는 독서도, 시도 엄두를 못 냈었죠.
그렇게 너무 일만 하다 보니까 헛헛했어요. ‘내가 아파서 쇠할 때까지 이 삶이 반복되겠구나’, ‘지금의 나는 불행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제가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니 헛헛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시를 다시 한번 써보자고 다짐하게 됐어요.

Q. 20대에게 시가 어떤 존재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렇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감정이 결여되기 쉬운 것 같아요. 모두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시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시를 읽는다고 해서 승진을 한다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시는 본인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죠. 문득 시의 어느 한 구절이 마음을 울려서 울게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시가 20대에게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존재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조금 진부하지만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질문을 드릴게요. 박소란 시인에게 ‘시’란?

저에게 시는 ‘전하지 못한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제 시가 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멋진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만 표현이 되네요.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평상시에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시에 더 많은 감정을 쏟아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는 전하지 못한 진심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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