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제3강 문학치료의 두번째 사례_영화치료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원제: 피아노 치는 여자)로 영화치료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영화에 대한 지식을 내놓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영화치료가 문학치료 내에서 어떤 매체적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화는 우선 문학보다는 환각적 체험이나 구체적 심상, 구체적 행동이 있기 때문에 빨리 통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하여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반추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에리카는 비인에 있는 콘제르바토리움의 피아노 교수다. 그러나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늘 감시를 당한다. 어디를 갈 때도 피아노를 칠 때도 완벽한 어머니의 통제로 인해 그녀는 이성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 결국은 강박, 관음증, 가학-피학증의 노예가 된다. 에리카는 피아노 수업에 온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강박적으로 정확한 템포를 요구하며 자신의 어머니와 치고 받으며 싸우기도 한다. 급기야 자기를 좋아한다는 발터 클레머라는 청년과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사랑이 되지 않는다.
에리카처럼 심리적으로 불편할 경우, 우리는 그냥 있든지 상담을 받든지 심리진단을 받는다. 약물중독이다, 공격성이다, 우울증이다 하는 식으로 신경증의 상태, 질병의 종류를 진단 받는다. 심할 경우 약물을 복용해야 하지만 보통은 자아를 강화하는 상담으로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정신과에 간다면 사회가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란 생각 때문에 치료는 힘들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주인공 에리카를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본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정상적일 수 있는가? 필자도 에리카의 내면처럼 속속들이 밝힌다면 정상적인 것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반응(감정이입이나 거리감)을 말하거나 써봄으로써 관음증(사이버중독), 약물중독, 강박증, 가학-피학증, 우울증, 쇼핑중독을 진단할 수 있다. 과연 나는 어떤가?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얼마나 자신이 이 영화의 주인공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에리카의 행위가 아주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 의해 거세되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강요 받는 에리카는 왜곡되어 있다.

남자들처럼 섹스 샵에 들어가고 남의 섹스를 훔쳐보고 발터와의 자연스런 사랑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위하도록 해서 그것을 보고 흥분을 느낀다면 이미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그런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전이현상(쉽게 표현하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료사에게 투사하는 것)을 보이는데, 이는 나의 투사가 빚어낸 결과물이지 다른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전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다시 말하면 문학에서 말하는 미적 거리감을 통해 자신을 낯설게 하는 것이 좋다. 영화를 보면서 “저 여자는 싸이코야”라고 하면서 너무 거리감을 두거나 “나도 저 마음을 이해해”하고 너무 가까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스스로 가학증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고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할 때 손톱을 물어뜯는다든가, 성관계를 가질 때 어느 정도 애무를 가학적으로 (또는 피학적으로)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에리카처럼 감시와 억압이 심해질 경우 우리는 관음증이나 자신을 칼로 가해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끔찍한 장면을 다른 말로 번역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 속의 폭력적인 성을 그대로 이해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의 의미를 스스로 자신의 감정으로 번역하고 조절한다는 의미에서 영화보기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치료사를 만나 도움을 받으면 더 좋다.

에리카는 엄마를 감시하고 구타하는 동안 엄마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성이 싹튼다. 그러나 그녀에게 적개심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출구가 있어서 이런 문제를 키웠을 리가 없다. 그녀는 미워하면서도 또한 엄마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를 때리고 난 뒤 한없는 연민의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처럼 엄마에게 잘 해준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부부의 관계가 된다. 이것이 어쩌면 갈등관계, 즉 콤플렉스가 되기 때문에 정신병이나 가학-피학증적 노이로제가 된다.

어떨 때 정말 ‘엄마는/아빠는 죽이고 싶어요’, 라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그래도 엄마는 불쌍해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갈등상황이 있음을 말해준다. 갈등상황은 콤플렉스라 하는 것인데 어떤 불쾌한 일보다 정신 건강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바로 에리카가 갖고 있는 문제이자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다. 에리카를 관찰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1. 어릴 때 엄마가 에리카로 하여금 강제로 피아노를 치게 했는가? 잘못 칠 때, 자로 손을 맞았는가? 또는 억지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는가? (이런 유사한 문제-analogia entis 는 많다)
2. 화가 날 때 에리카처럼 자기의 국부를 칼로 찔러 피를 내는 것이 편할 수 있는가?
3. 에리카가 엄마를 때리고 동시에 엄마가 불쌍하다고 우는 것처럼 이런 양가감정에 빠져 있는가?
4. 에리카는 자기 학생들에게 매우 정확한 피아노 연주를 요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5. 에리카는 강박적으로 리듬을 지키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6. 에리카의 본성(person)과 에리카의 가면(persona)을 말해 보자.
7. 에리카가 발터의 자연스런 사랑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8. 에리카는 자신보다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학생? 좋은 아들? 좋은 직원?
9. 에리카는 왜 자기 제자의 주머니에 글래스를 깨어 넣었을까?
10. 나는 무엇이기를 강요 받았고 현재 또 무엇이기를 강요 받는가?
11. 매 5분마다 전화하는 엄마는 어떻게 치료 받을 수 있을까?
12. 진지하고 우울한 표정 뒤에는 어떤 에리카의 모습이 있을까?

그리고 감정 소산 연습으로 둘이서(원래는 치료사와) 다음과 같은 게임을 해본다.

베토벤이 틀리게 쓴 악보가 네가 정확하게 연주한 것보다 낫겠다. [웃기고 있네]
너는 옆집 아이 신발이나 들고 다녀라. [웃기고 있네]
네 공부하는 꼴을 보면 소가 누워서 꼴 먹는 것 같다. [웃기고 있네]
네 수학은 빵집 점원이 쓰는 산수다. [웃기고 있네]
음치 대회 같은 것 있으면 그랑프리는 네가 맡아놓았을 텐데. [웃기고 있네]
네 성적은 거꾸로 꼴찌에서 오는 쪽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 [웃기고 있네]
유리를 깨서 주머니에 넣는 대신 사탕을 넣어놓겠다. [당근이지]
피아노 치라고 윽박지를 때 엄마 죽었으면 좋겠지. [당근이지]
피아노 다 부서뜨리면 좋겠지 [당근이지]
피아노뿐 아니라 집에도 불지르고 싶지 [당근이지]
학교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 나가고 싶지 [당근이지]
아파트 옥상에 가서 뛰어 내리고 싶지 [당근이지]

그리고, 자기를 인정하고 또 자기를 부정하기 위해 가면 만들기를 해본다.

나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대학교수이다. [그러면 사랑하면 안되나]
나도 대학교수이며 어떤 부분에서 뛰어나다 [그래도 허튼 짓을 할 때가 있다]
누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감시 당하는 것이 편해서 그렇다]
엄마 없이 못 산다 [엄마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정확히 살아야 한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산다]
나는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니다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한다]
나는 에리카처럼 우울하다 [아니다 전혀 다르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이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에리카가 정말 불쌍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불쌍하다는 느낌은 누군가 부당하게 당하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에리카가 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 그것은 바로 에리카의 잘못이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료의 절정은 문제가 되어온 가학-피학, 억압의 기억, 적개심, 혹은 사건이 의식 속에서 재경험되면서 도달된다. 이것은 억압된 감정의 출구를 여는 일이기 때문에 격한 감정을 동반하지만 카타르시스의 평온함을 얻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이때 우리는 글쓰기를 하면 좋다.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 것은 상징적이다. 심리적으로 이것은 구도를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용서, 아버지에 대한 용서, 남편이나 아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용서가 일어날 수 있는 치료는 감정소산 작업 후, 글쓰기를 통한 변화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보자.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과 끔찍스러운 장면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 자신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부모님으로부터 완벽과 철저함, 도덕심 등을 강요 받은 것이 기억났다. 어린 시절 귀가 시간은 늘 제한을 받았고 이성의 친구를 사귀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난 부모님에게서 모범적인 딸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반발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러한 부모님의 생각에 종속되어갔다. 이성을 사귀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고 늘 자신을 억압하면서 살았다.

이러한 일들은 대학 생활 내내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어 불안과 강박적 행동을 유발하였던 것 같다. 이를테면 조금만 카리스마적인 강의를 들으면 나는 매우 큰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리포트를 쓸 때마다 그 불쾌감을 표시하곤 하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감정이 내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의 억압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인식을 하면서 영화의 끝 장면에서 에리카가 칼로 자신을 찌른 것을 보고는 아직 매우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에리카는 그래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용서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anamnesie)을 사면한다(amnestie)는 말이고 사면한다는 말은 망각한다(amnesie)는 말이다. 특히 유년기의 기억(초기기억)들은 당시의 인식 수준에서 해석되었기 때문에(에리카의 양가감정 또는 죄의식), 그리고 억압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의식에 떠오르면 다시 평가, 다시 해석해야 한다. 과거를 용서하기 위해서 그 의식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에리카가 섹스 샵에 가는 것이나 지나치게 자위행위를 하는 것, 포르노를 보면서 관음증을 느끼는 것, 알코올중독, 흡연, 강박은 어느 것도 자기로부터 시작된 문제는 없다.

치료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알지 못할 그 무엇에 의해 우리는 조종당하고 있다. 에리카를 보면서 우리는 증오심과 적개심이 내 맘에도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정신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로 이제는 유리가 아니라 사탕을 주머니에 넣어주는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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