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 자극의 바다 속 무자극 섬

‘햇볕을 받고 있는 벽돌입니다’.
어느 페이스북에 올려진 벽돌 사진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 풍경이 아닌가. 2천여 개의 ‘좋아요’와 수백 개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댓글의 반응 역시 예상 밖이다.
‘조금씩 색이 다른 벽돌들의 조화로움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원과 마름모의 공존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제 마음에도 한 줄기 햇볕이 새어들어 왔으면 좋겠군요.’
글을 올리는 사람도, 댓글을 다는 사람도 일상을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이곳. 페이스북 페이지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이하 ‘무컨연’)’다.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벽이 되기도 한다.

‘무컨연’은 어느새 자극적인 볼거리로 가득찬 페이스북에서 ‘자극 없는 청정 피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페이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일상 속 무자극(혹은 저자극)을 담은 사진을 소개하는 것. 우리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페이지가 활성화할 수 있을까? 그건 섣부른 의심이자 선입견이었다. 페이지 개설 이래 ‘무컨연’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성장해왔다. 지난 12월, 구독자들의 관심 속에서 페이지의 사진과 그림을 담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매서운 추위가 주춤하던 어느 겨울날,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1 무자극의 시작 _
연구소장과 ‘무컨연’의 언어들

팔로워가 5만 명이 넘는 큰 페이지이지만, 사실 ‘무컨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지난 6월 말부터 운영을 시작했으니, 이제 막 7개월을 넘긴 셈이다. 7개월 전 페이지를 처음 개설하던 그때, 연구소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엔 페이스북에 너무 자극적인, 그러니까 부정적으로 자극적인 게시물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낚시성 기사, 과장된 정보, 지나친 광고, 그리고 누가 봐도 분쟁을 유발하는 글,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그런 게시물들이 지나치게 많은 페이스북상에서 자극의 균형을 잡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이스북은 피드에 게시물이 일자로 쭉 뜨는 형식이잖아요. 자극적인 것들 사이에 자극이 없는 것을 끼워 넣으면 좀 균형이 맞겠다, 싶어서 페이지를 시작하게 되었죠.”


반응을 보라.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이 공감의 키워드가 되어 있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것들은 대개 일상 풍경이다. 너무 평범한 나머지,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물건들이다. 아무거나 찍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나름의 기준에 따라 걸러진 것들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찍었는데, 페이지가 커지면서 점점 불편한 요소가 없을 만한 것들을 찾아서 찍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너무 어지럽거나 특이한 물건은 잘 안 찍게 되었죠. 제 사진은 예뻐 보이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은 것들, 너무 꾸며지지 않은 것들이에요. 더불어 너무 눈이 안 가서 아무도 찍지 않는 것들이죠. 예를 들어 앞접시라든가, 구겨진 냅킨, 뭐 그런 것들요.”
이런 사진마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댓글 하나하나에 연구소장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등의 답글을 남긴다. 사진이 자극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댓글에는 꼭 그 이유를 묻고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요.’와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이처럼 일일이 답글을 다는 것은 구독자들의 관심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다.
“누군가 시간을 내서 찾아와 달아준 댓글에 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마치 누군가 말을 걸었을 때 대답하는 것처럼요. 그 형태가 조금 다를 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의 일종이니까요.”

주거니 받거니, ‘무컨연’은 늘 소통의 맥락 안에 있다.

게시글과 댓글에서 고수하는 ‘무자극체’ 역시 또 다른 묘미다. 사진을 설명하는 건 간단한 문장이다. ‘무컨연’ 페이지를 처음 개설하던 날, 제주도의 풍경 사진과 함께 ‘초저녁 제주도의 하늘입니다.’라고 게시한 그 느낌 그대로. 페이스북 속 범람하는 비속어나 유행어는 빠져 있다.
“사실 그냥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체인데, 어쩌다 보니 제 페이지만의 독특한 말투가 된 것 같아요. 원래 ‘ㅋㅋㅋ’나 이모티콘을 모두 빼면 그렇거든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 안 쓰면 좀 딱딱하게 느껴지나 봐요. 그래도 이제는 이런 말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맞춤법을 틀리지 않아서 심신이 안정된다는 분들도 있고, 존댓말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 연구소장, 그는 누구인가. 여전히 20대 후반, 남자라는 단서만을 남기고 있다. 실제로 ‘무컨연’ 내 그의 유일한 흔적은 가끔 사진에 등장하는 손이 전부다. 이번에도 역시 ‘그 이상으로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란 신비주의를 고집했다.

“신비주의라기보다는, 저는 어떤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 페이지 자체로만 인식되고 싶죠. 그냥 저라는 사람을 페이지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다 보면, 개인적인 의도가 섞이거나 사람들의 편견이 생길 수도 있죠. 물론 얼마 전 간담회에서 저를 완전히 드러내긴 했지만, 그건 좀 다른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페이지와는 조금 다른 또 하나의 활동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페이지 안에서는 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굳이 연구소장을 가늠하지 말 것. 그보다 중요한 건 페이지 안에 있다.

페이지만을 본 이들은 그를 30대나 40대 혹은 할아버지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때론 스님이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질문도 해온다. 또 다른 예상 밖이다.
“제가 50대라고 생각하고 페이지를 본다면, 그건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겠죠? 그래서 저에 대해서는 그냥 다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2 무자극의 꿈 _
종이 위의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그리고

‘언젠가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연구소장의 막연한 꿈. ‘무컨연’이 점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 막연했던 생각은 점점 형태를 갖춰갔다. 머지않아 독립출판을 위해 연구소장과 오랜 지인인 myang, 그리고 북디자이너 지현이 모여 팀을 이루었다. 연구소장과 myang은 책 속의 내용을 채우고, 출판 경험이 많은 디자이너 지현은 책은 물론 굿즈까지 손을 뻗치는 활약을 보였다. 부족한 자금은 한 달간의 펀딩을 통해 충당했다. 여러 숨은 손길까지 모인 ‘무컨연’의 첫 종이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디자이너 지현의 도움으로 ‘무컨연’만의 편안한 느낌이 종이 위에, 수건에, 그리고 양말에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책에 담을 사진을 고르는 것도 꽤 오래 걸렸지만, 사진을 담는 순서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낮, 밤을 나누어 사진을 담아 보자는 이야기도 했고, 일과처럼 배열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고민이 길어지다 보니까 자꾸 사진에 어떤 의미를 끼워 맞추게 되더라고요. 페이지가 원래 가진 자연스러움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결국 그냥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넣되, 그 안에 우리 나름의 조그만 디테일들을 넣기로 했죠.”

책에 실린 가장 첫 번째 사진과 마지막 사진. 마음이 내키는 순서였다.

책은 일상의 흐름을 담고, 닮았다. 책의 첫 번째 사진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다.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한 책은 어두운 느낌의 사진으로 이어지다가 내일 신을 양말을 준비하는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책 한 권이 하루를 시작해 마감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와 닮았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답한다.

“사실 이런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무런 의도도 없는 순서라고 느껴지는 것이 우리의 의도였으니까요.”

앞으로 같은 형식의 책을 낼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책을 아예 내지 않을지는 그들도 모른다. 독립 출판이라는 큰 산을 넘은 그들에게 ‘다음’이라는 단어는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지금처럼 꾸준히 운영을 해 나갈 거예요. 다음 오프라인에서는 무자극 사진 전시회를 계획 중이에요. 무자극 이모티콘도 만들어 보려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페이지만의 개성을 담은 캐릭터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굿즈샵을 차리고 싶다는 꿈도 있죠. ”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무컨연’은 앞으로도 자극적인 세상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는 말 속에 희망이 있다. 모쪼록 ‘무컨연’을 찾는 이들 모두에게 잠시나마 편안한 마음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 복작복작한 세상살이가 문득 지겨워질 때쯤, 잠시 앉아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이곳이 있어서 참 고맙다.

LG Social Challenger 151584
LG Social Challenger 조윤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문화기획자 작성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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